앵두[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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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 개봉된 영화 '밀수'를 보다 보면 현란한 그룹사운드 반주에 약간 쉰 듯하면서도 매력이 넘치는 '뽕짝'이 나온다.
1976년에 최헌이 부른 '앵두'인데 믿어도 될지 의심스러운 그 입술이 나오는.
앵두 같은 입술은 그렇다 쳐도 왜 동네 처녀가 앵두나무 우물가에서 바람이 나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믿을 수 없는 것은 그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말이지 그 입술, 혹은 그것을 연상시키는 앵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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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 개봉된 영화 ‘밀수’를 보다 보면 현란한 그룹사운드 반주에 약간 쉰 듯하면서도 매력이 넘치는 ‘뽕짝’이 나온다. 1976년에 최헌이 부른 ‘앵두’인데 믿어도 될지 의심스러운 그 입술이 나오는. 6월의 어느 날 후드득 듣는 비에 말끔히 씻기는, 그리고 비 갠 후의 햇빛에 찬란히 빛나는 이 열매를 본 사람이라면 이 가사가 바로 가슴에 꽂힌다. 흔한 비유지만 왜 ‘앵두 같은 입술’이 쓰이는지도 알 수 있다.
앵두는 한자로는 ‘櫻桃’로 쓰니 본래는 한자의 발음대로라면 ‘앵도’가 되어야 한다. 한자 ‘櫻(앵두나무 앵)’은 벚나무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비록 ‘桃(복숭아 도)’가 함께 쓰였더라도 생김새는 체리와 가깝다. 붉게 잘 익은 앵두를 따서 씹으면 새콤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과육을 맛볼 수 있지만 이 열매는 역시 눈으로 봐야 멋지다. 어떤 립스틱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붉은색과 도톰한 입술을 닮은 모습 때문이다.
노래나 시에서 과일을 여성과 관련짓는 것은 꽤나 흔하다. 앵두 같은 입술은 그렇다 쳐도 왜 동네 처녀가 앵두나무 우물가에서 바람이 나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이란 구절이 포함된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는 요즘에 발표되었다면 봉변을 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열매를 따다’는 결실을 거둔다는 의미인데 ‘따먹다’는 그 목적어에 따라 지극히 추한 은어로 쓰인다.
모든 열매는 식물이 일생을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과일은 맛, 향, 빛깔을 좋게 해서 따먹힌 후 멀리멀리 씨를 퍼뜨리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니 모든 열매와 과일은 믿어도 된다. 붉은 입술을 연상시키는 앵두도 물론이다. 믿을 수 없는 것은 그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말이지 그 입술, 혹은 그것을 연상시키는 앵두가 아니다. 비 갠 6월의 어느 날 앵두가 보이면 믿고 먹어도 좋다. 그 입술로 거짓말을 하지 않을 맹세를 할 수 있다면.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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