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티켓 사주면 돈 드려요!" 부업 사기의 실체 [視리즈]

이혁기 기자, 홍승주 기자 2024. 6. 1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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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신종 피싱 부업 사기를 아십니까➊
횡행하는 부업 피싱 사기
고수익 아르바이트로 유인
돈 입금해야 한다며 돌변
정교한 홈페이지까지 제작
부업을 권유하는 피싱 사기가 최근 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최근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자를 받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재택으로 몇시간만 일하면 고수익을 얻게 해주겠다." 지갑 사정이 좋지 않은 이라면 귀가 솔깃해질 만한 제안입니다. 영화표 예매, 쇼핑몰 후기 등 부업 내용도 어렵지 않습니다. 마다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 하지만 이는 부업을 미끼로 삼은 일종의 '피싱(Phishing) 사기'입니다. "요즘 누가 그런 사기에 걸리느냐"고 코웃음 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 사기꾼은 홈페이지까지 준비해 놓고 치밀하게 범죄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부업 사기', 더스쿠프가 파헤쳐봤습니다. 더스쿠프 視리즈 '신종 피싱 부업 사기를 아십니까' 1편입니다.

대학 생활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대학생 김은하(22·가명)씨.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은하씨에게 어느날 솔깃한 내용의 문자 한통이 날아왔습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부업으로 일하면서 하루에 적게는 3만원부터 최고 20만원까지 벌 수 있다."

은하씨는 문자에 있는 카카오톡 아이디를 등록한 다음 전화를 걸었습니다. "네, 상담사 ○○○입니다." "부업 문자를 받고 연락드렸습니다." 그러자 상담사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어갔습니다. "개봉 후 성적이 저조한 영화의 관객 수와 평점을 올리는 작업을 하는 거예요. 표를 구매하면 건당 보상금을 지급해 드립니다." 다시 말해 영화 티켓 판매량을 올려주는 대가로 돈을 주겠단 거였죠.

"표만 구매하면 끝이라고?" 호기심이 발동한 은하씨는 곧장 참여 방법을 물었습니다. 상담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가입하면 20만 포인트를 선지급해요. 이 포인트로 영화를 구매하면 건당 보상금을 집계해 드립니다."

은하씨는 상담사가 알려준 홈페이지에 들어갔습니다. '사기 아닐까'란 생각이 스치긴 했지만 세련된 디자인으로 꾸며놓은 홈페이지를 보자마자 의심을 풀었습니다. '범죄도시4' '퓨리오사-매드맥스 사가' 등 유명한 영화들이 가득한 데다, 영화명 하단엔 예매율도 표기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영화를 클릭하면 감독과 주연배우 목록은 물론, 개봉 일자·스토리·스틸컷까지 줄줄이 나왔습니다. 홈페이지 최하단엔 사업자등록증과 사무실 주소에 대표 이름까지 있었죠.

상담사가 은하씨에게 알려준 사이트.[사진=더스쿠프 포토]

은하씨는 상담사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혹시 사기 아니에요?" 그러자 그는 "법인 사업자로서 영화 홍보사로부터 업무를 위탁받고 있다"며 "정식 절차를 밟아 계약서를 쓰고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단 생각에 은하씨는 상담사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홈페이지에 상담사가 알려준 추천인 코드를 입력하고 회원가입을 하자 포인트 20만원이 계정으로 들어왔습니다. 상담사는 업무를 배정하겠다면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영화: 미지수
극장: 서울·건대입구
날짜: 6월 4일
시간: 19시35분
구매티켓: 7장
좌석: C1~C7

지시대로 홈페이지에서 해당 영화를 검색하자, 실제 영화관 사이트와 흡사한 예매창이 화면에 떴습니다. 극장과 날짜·시간 등을 차례대로 입력해 예매에 성공하니 계정에 있던 20만 포인트 중 7만점이 차감되고 수익금 7000원이 계정에 들어왔습니다.

상담사는 비슷한 미션을 2차례 더 시켰습니다. 30분이 지나자 계정에는 총 5만원의 수익금이 쌓였습니다.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시급 10만원짜리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한 셈이었죠. 짧은 시간에 큰돈을 벌어서일까요? 쏠쏠한 재미가 밀려왔습니다.

마지막 미션을 끝으로 상담사는 "오늘의 영화 티켓 구매 업무는 완료했다"면서 "포인트 출금 업무를 진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출금 업무는 영화 티켓 구매를 통해 매출을 올리고 수익을 내는 작업입니다. 회원님이 선불로 예매권을 구입하시면 10~30%를 원금과 함께 지급해 드립니다."

그러면서 상담자는 3만·8만·12만원 등 총 3가지 선택권을 옵션으로 내걸었습니다. 가령, 12만원을 입금해 예매권을 구입하면 원금에 30%를 더해 15만6000원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많은 돈을 입금해야 수익률이 높아지는 구조였습니다. 상담자는 "이 출금 미션을 완료해야 아까 작업해서 받은 수익금도 출금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은하씨는 돈을 넣어야만 알바비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예매 작업에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상영관을 고르지 않았고, 실제로 좌석을 구매했는지를 확인할 방법도 없었죠.

은하씨는 사실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제가 구매한 티켓이 CGV인가요, 롯데시네마인가요?" 그러자 '○○시네마'란 답이 왔습니다. 인터넷에 나오지 않는 '그림자 같은' 영화관이었죠. '극장이 검색되지 않는다'고 말하자 상담자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습니다. 은하씨가 '상담사님!'을 여러 차례 입력했지만, 카톡의 '숫자 1'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이게 바로 은하씨가 경험한 '영화 예매 부업'의 민낯입니다. 이 부업엔 무엇 하나 정상적인 게 없었습니다. 일단 관객 수를 조작한다는 것부터가 위법입니다.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죄'에 따르면, 전자기기를 사용해 관객 수 집계 같은 정보처리장치에 허위 정보를 입력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습니다.

돈 놓고 돈 먹는 '수상한 부업'

그럴싸했던 홈페이지도 자세히 보니 수상한 점이 한두개가 아니었습니다. 예매 시 영화관을 선택할 수 없는 것도 그렇고, 날짜와 상영시간을 아무렇게나 고를 수 있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가령, 날짜를 내년인 '2025년'으로 선택해도 예매가 문제없이 진행됐죠.

'영화 홍보사로부터 위탁받아 부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말도 사실일 리 없었습니다. 국내 영화 관객 수 통계는 영화진흥위원회 산하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서 엄격하게 집계하고 있습니다. 국내 영화관 3사도 아닌 일개 홍보 대행업체가 전산망 숫자를 조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화관 업체들도 "이런 부업을 처음 들어본다"는 반응을 내비쳤습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관객 수를 조작하는 건 처음 들어본다"고 말했습니다. 메가박스와 CGV 관계자의 반응도 비슷했습니다.

사실 부업 알바의 위법성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습니다. 상담사가 솔깃한 멘트를 날리면서 입금을 유도했다는 점입니다. 상담자는 계속해서 은하씨에게 돈을 내고 예매권을 구매하는 '출금 미션'을 성공해야지만 수익금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왜 알바생이 돈을 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꼭 필요한 절차"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이는 '피싱(Phishing) 사기'의 일종으로 보입니다. 은하씨가 상담자의 말대로 돈을 입금했다면 돈만 받고 그대로 잠적했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와 비슷한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이 남긴 경험담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 3일 '문자로 영화 티켓 구매 부업을 권유받았다'는 내용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A씨는 "이들은 실시간 티켓 연동도 돼 있지 않고, 결제 대행 시스템도 갖추지 않은 가짜 사이트를 내걸고 있었다"면서 "입금해야 하는 이유를 계속 따지자 '미션을 원치 않으면 그만둬라'는 답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A씨가 이용했던 사이트의 주소는 은하씨가 봤던 사이트와 동일했습니다.

문제는 이들 사기꾼의 수법이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입니다. 수십명을 모을 수 있는 오픈 채팅방을 동원하고, 필요하다면 유명 업체를 사칭하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 때문인지 소액을 넘어 수천만원까지 잃는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많은 돈을 입금할수록 수익이 커진다는 유혹을 버티지 못하고 피해자들은 사기꾼이 달라는 대로 돈을 입금했습니다. 하지만 목표액에 다다르자 사기꾼들은 곧바로 잠적해 버렸죠. '신종 피싱 부업 사기를 아십니까' 2편에서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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