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있어야 다음이 있다”는 최준호, 1군 말소 후 그가 그릴 더 큰 다음
심진용 기자 2024. 6. 14. 11:31
5월 이후 선두 싸움에 가세할 만큼 강력해진 두산 최근 상승세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는 투수 최준호(20)의 활약이었다. 4월 말 첫 선발 등판해 꾸준히 로테이션을 돌았다. 5월 한 달 동안 5차례 선발 등판해 25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3.60을 기록했다. 최준호가 한 축을 맡아준 덕에 두산은 기존 선발들의 부상 공백과 그로 인한 불펜 부담을 최소한으로 억제할 수 있었다.
홈런 맞은 상대, 같은 공으로 다시 승부··· 벤치 사로잡은 최준호의 배짱
최준호의 프로 첫 등판은 4월 17일 대구 삼성전이었다. 2회초 2사 2루에 구원 등판해 구자욱과 데이비드 맥키넌에게 바로 홈런을 맞았다. 프로 데뷔를 백투백 홈런으로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최준호는 주눅 들지 않았다. 4회 다시 만난 구자욱과 맥키넌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직구를 던져 홈런을 맞았던 구자욱에게 초구부터 다시 직구를 던졌다. 슬라이더로 홈런을 맞았던 맥키넌 상대로는 초구 슬라이더를 던졌다. 최준호가 이승엽 감독 등 두산 벤치를 사로잡은 순간이었다.
최준호는 일주일 뒤인 23일 프로 첫 선발 기회를 잡았다. NC를 상대로 잠실 홈 경기에 등판했다. 2회 박건우에게 초구 직구를 던졌다가 홈런을 맞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겁먹지 않았다. 4회 다시 만난 박건우를 상대로 홈런 맞은 직구만 연속해서 3개를 던졌고, 4구째 포크볼로 투수 앞 땅볼을 유도했다. 최준호는 “잘 던졌고, 실투가 하나 들어갔는데 박건우 선배가 놓치지 않고 잘 쳤던 거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잘 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나는 실수만 안 하면 된다. 설사 실수를 해도 타자들이 무조건 친다는 경우도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천안북일고 출신 최준호는 2023 KBO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9순위로 두산의 지명을 받았다. 프로 입단 직후 구단 메디컬테스트에서 피로골절 진단을 받았다. 본인은 통증이 없는데, 당분간은 던질 수가 없다고 하니 적잖이 답답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손에 공을 쥐지 못했던 몇 달 동안 열심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프로에서 통할 수 있는 몸을 만들었다. 근육이 붙고, 밸런스가 잡히면서 구속이 올랐다. 고교 시절 최준호는 147㎞를 던졌다. 150㎞ 이상 던지는 선수들이 워낙 많아 구속 면에서는 그리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이미 그런 시대가 됐다. 하지만 최준호는 부상 기간 몸을 만들면서 최고 150㎞가 넘는 공을 만들었다.
‘질문왕’ 최준호, 배울 수 있는 건 뭐든 배운다
선배복도 많다. 올해 1군으로 올라와 곽빈의 원정 룸메이트가 됐다. 최준호는 무엇 하나도 놓치지 않고 에이스의 모든 걸 흡수하려 했다. 그래서 질문이 많다. 다음 선발 등판을 준비하는 루틴부터, 팬들에게 받은 선물을 어디에 놔둬야 할지까지 매일같이 질문 공세를 펼쳤다. 곽빈이 “질문은 하루에 하나만 하라”고 했고, “내가 3년 동안 만든 루틴을 그대로 가져갔으니 1000만원 내놔라”고 할 만큼 선배를 괴롭혔다. 물론 곽빈 역시 말이 그럴 뿐 뭐든 배우려고 하는 후배가 예뻐 보일 수밖에 없다. 지난달 29일 잠실 KT전, 최준호는 3.2이닝 3실점으로 부진했다. 곽빈은 그런 최준호에게 “아프지 않고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2018년 데뷔 시즌 토미존 수술을 받아야 했던 곽빈이기에 할 수 있는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공교롭게도 시즌 초반 승운이 따르지 않아 고생했던 곽빈도 최준호와 같은 방을 쓴 이후 기록이 좋다. 5월 한 달 동안 4승 무패에 평균자책점 1.48로 월간 MVP까지 수상했다. 최준호는 “제가 오고 나서 빈이 형도 계속 승리를 올리고 하더라”고 웃었다. 일종의 ‘승리 토템’이 됐던 셈. 최준호는 “결과가 좋게 나오니까 좋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쉬움 속 1군 말소, 최준호가 그리는 더 큰 다음
최준호는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이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첫 선발 등판이었던 4월 NC전, 5이닝 1실점 호투에도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을 때 그렇게 말했다. 지난달 23일 SSG전 5이닝 2실점으로 시즌 2승째를 올렸을 때도 “더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해 아쉽다”며 “아쉬움이 있어야 또 다른 발전이 있다”고 했다. 지난 9일 KIA전, 최준호는 4이닝 4실점으로 부진했다. KIA전 바로 다음 날 최준호는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어쩌면 올 시즌 최준호가 느낄 가장 아쉬운 순간이 바로 지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령탑의 신뢰는 여전하다. 이승엽 감독은 최근 취재진과 만나 최준호의 말소를 알리며 “생각 이상으로 좋은 능력을 가진 투수”라며 “한 번 쉬어가는 게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쉬고 나와서 팀을 위해 또 열심히 던져주면 좋은 퍼포먼스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피로 회복 추이를 봐야 하겠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1군 선발로 다시 투입할 계획이라는 설명이다. 호투 후 일시 휴식을 맞은 20세 신인, 최준호가 더 큰 다음을 그리고 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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