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씨가 불시에 온다 해도 자신 있습니다” [강홍민의 굿잡]
1972년 6월 완공된 충정로 서소문아파트는 서울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곳 중 하나다. 50여 년 전 주상복합이라는 신식개념의 건축물에 정치인, 연예인, 언론인 등 내로라하는 인물들의 거주지로도 유명했다. 특히 이 곳은 일반 아파트와 달리 길게 늘어선 건물이 아치형으로 휘어져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故이선균 씨의 대사에서도 나오듯 이 아파트 건물 밑은 하천이었다. 물길 따라 지어진 이 아파트를 끝에서 바라보면 아치형으로 휘어져 건물의 외관이 오랜 세월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지천명’이 넘은 오래된 이 건물에 지난해 새로이 들어 선 치킨집이 있다. 유명 프랜차이즈가 아닌 로컬 치킨가게인 ‘로쉬치킨’은 서소문아파트의 막내이지만 그곳 노포들과 꽤나 잘 어울린다.
그 이유는 가게를 들어서면 알 수 있다. 로쉬치킨의 사장인 김임희(65) 씨는 마포, 서울역 등에서 20여 년간 닭을 튀겨 온 베테랑이다. 푸근한 인상너머 빠릿한 몸짓은 베테랑이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는 바이브다. 노포의 매력과도 잘 어울리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바로 그의 남편이자 동업자인 김창태(65) 씨다. 30여 년 넘게 이어 온 직장을 은퇴하고 지난해 본격적으로 자영업의 길로 뛰어든 김 씨 역시 짓궂은 손님도 단골로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은퇴 후 치킨가게로 인생 2막을 준비 중인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치킨집은 몇 년이나 하셨어요.
“한 20년 정도 했지요. 마포에서 장사를 오래하다가 사정이 생겨 이곳으로 온지 한 8개월 정도 됐지 아마··· 그 전까진 아내가 장사를 맡아했었고, 난 직장생활을 30년 넘게 했지요. 그러다 작년에 은퇴하고 9월에 가게에 합류하게 됐죠.”
직장생활은 어디서 하셨어요.
“직장생활도 하고, 그전에는 사업도 조그맣게 하고··· 개인택시를 해보려고 준비도 했었어요. 근데 개인택시를 하려면 회사택시 경력이 있어야 하더라고. 그래서 회사택시를 했는데, 못 해먹겠더라고. 뭐라 그럴까. 일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만뒀지.”
수십 년 간 다른 일을 하다가 치킨집은 또 생소하셨겠네요.
“직장 다닐 때도 퇴근하고 저녁에 가게 일을 도와줘서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충 알죠. 근데 막상 오픈부터 마감까지 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우리는 알바를 안 쓰고 둘이서 하니까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어.(웃음)”
막상 해보니 뭐가 가장 힘들던가요.
“암만해도 체력적으로 힘들죠. 장사는 저녁 6시부터 하지만 출근은 오후 2시쯤 해요. 그때부터 닭 손질부터 메뉴 준비, 가게 안팎으로 청소하고 장사 준비를 하는 거죠. 그리고 밤 12시쯤 마무리하고 퇴근하는데 나이 60이 넘어서 그런지 힘에 부치죠.”
부부가 함께 장사를 하다보면 부딪히는 일도 많을 것 같아요.
“처음엔 많이 싸웠죠. 싸웠다기보다 많이 혼이 났지. 빨리빨리 (음식이)나가야 되는데 빨리 안 나가냐고 잔소리 듣고, 손님이 갑자기 몰리면 깜빡할 수도 있단 말이에요. 그럼 그거 안했다고 또 잔소리, 첨엔 엄청 혼났죠.(웃음)”
보통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본사에서 식재료를 공급해주는데, 여기는 어떻게 하시나요.
“고춧가루나 마늘 같은 부자재는 강원도에서 직배송으로 주문하는 곳이 있어요. 닭이나 건어물도 좋은 물건으로 주문하는 곳이 있고요.”
"저녁 6시 오픈 위해 오후 2시 출근… 닭 손질, 청소 등 장사 준비
생닭 오면 직접 손질해 48시간 숙성, 기름도 자주 바꿔 신선함 유지"
장사를 오래하셨으니 노하우가 있으시겠네요.
“당연히 있지요. 생닭이 배달 오면 아내가 직접 칼집을 내 다듬어요. 그리고 염장을 해서 냉장고에 48시간 숙성을 해둡니다. 그러면 닭에 간이 배어서 양념장에 안 찍어도 맛납니다. 그리고 치킨은 뭐니 뭐니 해도 기름이 제일 중요한데, 기름을 자주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첫 기름에 닭을 튀기기 전에 뭘 먼저 하는 게 있어요. 우리만의 방식이에요.”
그게 뭔가요.
“원래 첫 기름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첫 기름에 튀기면 기름 특유의 비릿한 향이 닭에 그대로 배어 버리거든요. 그래서 대파, 양파, 파뿌리를 한 움큼해서 먼저 기름에 튀겨요. 그럼 잡내가 없어지거든.”
음식에 자부심이 있으시군요.(웃음)
“암만 해도 그렇죠. 몇 년을 했는데···. 언젠가 손님 한 분이 골뱅이 통을 좀 보자고 하더군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보여드렸죠. 속으론 뭔 트집을 잡으려나 하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대뜸 ‘이 큰 통(골뱅이 캔)을 이 가격에 내면 남는 게 있어요?’라고 묻더군요. 알고 보니, 그 손님이 골뱅이 유통업을 하는 분이었어요.”
그땐 좀 기분이 좋으셨겠네요.
“알아봐주니 어깨가 좀 으쓱했지요.(웃음) 손님들이 우리 집 맥주가 맛있다고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매일 필터를 청소하거든요. 그게 당연한 거지만 그렇게 안하는 집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손님상에 내놓는 거잖아요. 좋은 것만 내놓고 깨끗하게 해 놓으려고 합니다. 요새 백종원 씨 방송 많이 하던데···우리 집에 불시에 온다 해도 난 자신 있어요.(웃음)”
"코로나19 전후로 회식문화 달라져…밤 11시만 돼도 거리에 사람 없어
간단하게 먹는 분위기 바뀌면서 테이블 단가도 낮아져"
여기는 주로 어떤 부류의 손님들이 많이 오나요.
“이 동네는 회사가 많아서 대부분이 직장인이에요. 예전엔 직장인들이 바글바글했는데 요샌 예전만 못해요. 코로나19 전만해도 11시만 넘어가면 거리에 술 취해 널 부러져 있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요즘에는 한 명도 찾아볼 수가 없어. 그만큼 문화가 많이 바뀌었지.”
회식이나 술자리를 많이 안 하나 보군요.
“그렇지요. 우리 가게 메인메뉴가 치킨, 골뱅이, 노가리예요. 예전만 해도 3~4명이 오면 한 테이블에 10~15만 원 정도 나왔는데, 요즘엔 그 절반도 안 돼. 테이블 단가가 많이 낮아졌어요. 2차, 3차도 안 가고 간단하게 먹고 집에 가요. 사람들이 술을 많이 안 먹어요.”
왜 그렇게 바뀌었다고 보세요.
“물가가 많이 올라서 그렇지. 우리도 웬만하면 가격을 안 올리려고 하는데 닭이나 건어물 가격이 원체 올라서 안 올릴 수가 없어요. 메뉴 가격 올리면 비싸다고 항의하는 손님들도 있다니까요.”
그래도 장사가 잘되는 날이나 시즌이 있을 텐데요.
“요새는 월요일, 목요일 그나마 장사가 좀 돼요. 옛날엔 불금이라고 했는데, 요즘 금요일은 불이 꺼졌어요. 직장인들 대상이니까 주말에는 한산해서 우리도 문을 안 열거든. 계절로 보면 여름이 성수기예요. 야외 테이블을 깔 수 있거든. 그래서 겨울이랑은 매출이 거의 두 배 정도 차이나요.”
하루 매출은 평균 어느 정도예요.
“요일마다, 계절마다 다른데, 요새는 보통 100만원이에요. 테이블 회전이 좀 된다 싶으면 백 일이십만원 정돈데, 그것도 힘들어서 더는 못해요.”
그럼 순수입은 어느 정도 됩니까.
“하도 원재료 값이 올라서 얼마 되지도 않아요. 한 달에 한 200~300만 원 정도 될까. 지난달(5월)에는 세금이랑 재료값이랑 내니까 우리 둘 인건비가 안 나오더라고요.”
손님이 없는 날은 불안하지 않으세요.
“아까 하루 평균 매출이 100만원이라고 했지만 하루에 20~30만원 파는 날도 많아요. 다른 가게는 북적이는데 우리만 손님 없으면 불안하지. 근데 또 시간이 되면 한꺼번에 몰려와. 그것도 힘들어.(웃음) 자영업이라는 게 내 맘 같지 않을 때가 많아요.”
"일일 평균 매출 100만원, 안될때는 하루 20~30만원 매출나올때도 많아…
'맛있다'는 손님 반응에 뿌듯함 느껴"
요즘에 자영업, 특히 치킨집 창업 준비하는 분들 많은데, 로컬 치킨집 창업 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뭔가요.
“맛 그리고 서비스지요. 일단 뭘 팔든 맛이 있어야지요. 맛없는 음식 파는 곳에 아무리 싸도 안가고 싶잖아요. 맛있고 깔끔하게 파는 게 중요하죠. 그리고 손님 대할 때 친절하게 해야지요. 바쁘다고, 짜증난다고 그걸 손님한테 내비치면 안돼요. 그럼 안 와요.”
치킨집 창업 준비 전에 꼭 해야 할 것들이 있나요.
“치킨집이든 뭐든 어떻게 장사하는지를 경험해 봐야 압니다. 알바를 하든, 그게 안 되면 돈을 안 받겠노라 하더라도 일을 배워봐야죠. ‘자존심 때문에 못 한다?’ 그럼 자기 장사도 못해요. 그리고 초기 창업하실 분들은 3년 견뎌낼 자금 없으면 시작하면 안돼요.”
진상손님 대처법은 있습니까.
“요새는 진상도 많이 없어졌는데···예전에 한 손님이 가격이 비싸다고 하도 잔소리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드셔보시고 가격이 좀 비싸다, 맛이 없다 생각이 드시면 돈 안 받겠습니다’라고 했지요. 먹으면서도 투덜대더니 다 먹고 나서는 ‘돈 더 받아도 되겠네’하고 가시더군요.(웃음)”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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