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의 ‘힘없는 피벗’엔 이유가 있다 [조은아의 유로노믹스]
세계 3위 경제권인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에서 6일(현지 시간) 기준금리가 전격 인하돼 주목을 받았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캐나다, 스위스, 스웨덴에 이어 선진국으로선 선제적으로 피벗(통화정책 전환)을 단행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다른 중앙은행들의 인하를 유도할 것으로 예상됐다.
● 금리 내리며 물가 전망치는 올려
ECB는 이날 기준금리를 약 5년 만에 0.25%포인트 내리면서도 “특정 금리 경로를 미리 정하지 않는다”며 “물가상승률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기간에 정책 금리를 충분히 제한적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가상승세가 심상치 않을 때는 금리를 내리기 힘들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이에 시장은 금리 방향을 알 수 없게 됐다며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라가르드 총재가 (그간 금리인하를 자주 시사했기 때문에) 마지못해 금리를 인하했다”며 “시장은 ECB의 통화정책 방향을 점점 더 의문시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어 내년 물가상승률이 상향된 점에 “더욱 놀라운 일”이라고 짚었다.
라가르드 총재는 10일엔 좀더 명확하게 말했다. 이날 유럽 언론사 4곳과의 인터뷰에서 “필요한 만큼 금리를 동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달에 기준금리를 인하하긴 했지만 인상을 하는 데도 적극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시장은 ECB가 일단 7월엔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라가르드, 실기론 피하려 선수 쳐”
ECB가 물가상승 전망치를 올렸음에도 이번엔 금리 인하를 택한 이유는 그만큼 유럽 경제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나홀로 성장’ 분위기인 반면 유럽 경제는 성장이 둔화돼 성장률을 끌어올릴 동력이 필요하다.
ECB는 금리를 내리면 주택시장과 기업, 소비자가 새로운 투자와 소비 활력을 찾을 것으로 봤을 것이다. 독일 은행 베렌베르크의 홀거 슈미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ECB가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가계와 기업의 관심을 끌고 투자 심리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ECB의 금리 인하 당일 “오늘 금리 인하의 가장 큰 혜택은 한 사람, 라가르드 총재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 나중에 (다른 중앙은행들이 인하하는 시기에) 지금의 상황에 대해 ‘인하가 옳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유럽 언론들은 금리 인하에 따른 경제 활력을 기대하는 반면 미국 언론들은 우려 섞인 분석을 내놓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라가르드 총재가 그간 금리인하를 재차 예고했기 때문에 그 신뢰를 깨지 않기 위해 마지못해 금리를 내렸다면서 “ECB는 장기적으로 미국과 다른 길을 택한 대가를 치러야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연준은 12일 기준금리 인하 횟수 전망을 기존 3회에서 1회로 수정하면서 예상보단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ECB만 인하를 거듭할 경우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는 등 경제에 부담을 안길 수 있다. 프랑스 은행 나티시스의 ECB 담당자인 더크 슈마허는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그들(ECB)은 궁지에 몰렸다”며 ECB가 금리 인하로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를 약화시켜 수입 비용을 높이고, 물가상승률을 더 자극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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