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에 취하다…술과 음악
◆ 술과 음악가
바흐의 마테수난곡 원본에는 머그잔 자국이 있다. 많은 이들은 바흐가 술을 마셨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는데, 라이프치히에 있는 그의 집 방 두 곳이 와인과 증류주를 보관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베토벤도 식사 때마다 와인을 한 병씩 마셨다고 알려져 있으며, 슈만의 스승이자 아내 클라라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비크(Friedrich Wieck)는 슈만이 항상 술에 취해 논리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안 된다며 딸의 결혼을 반대하였다.
피아노의 황제 프란츠 리스트도 꼬냑과 브랜디를 항상 손에 들고 있었다고 한다. 일리야 레핀의 무소르그스키 초상화는 선연한 눈빛과 대조적으로 빨간 코의 무소르그스키 모습을 통해 그가 술과 가까웠음을 보여주고 있다.
19세기말 미국 내셔널 음악원의 원장으로 부임한 드보르작 또한 타지생활의 고독과 허전함을 독한 술로 채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말년에 작곡을 거의 안 한 시벨리우스는 그의 술 문제가 작곡활동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외에도 모차르트, 베를리오즈,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글라주노프, 에릭 사티 등 수많은 유명예술가들과 술은 그들의 예술세계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듯하다. 그렇다고 열거된 위대한 작곡가들이 술 없이는 예술활동을 할 수 없었다고 억측해서는 안 된다.
이토록 예술가들과 가까운 술은 음악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음악과 술은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고 고양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프랑스 브르타뉴 대학의 니콜라스 게강(Nicolas Gueguen)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음악소리가 클수록 술의 소비량이 늘어난다고 하며 과음을 피하고 싶다면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곳이 좋다고 한다.
영국의 에이드리언 노스(Ardian North) 교수팀은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실 경우 음주량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술의 맛도 60%이상 높여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실 경우 음악이 뇌의 특정한 부분을 자극해 다른 감각을 인식하는데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술과 음악은 생리학적으로도 여러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술과 음악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하였으며 둘 사이의 공통점들은 무엇일까.
◆ 술과 음악의 유래
술과 음악은 우리의 내부(default mode network)를 들여다 보는 동시에 외부와 소통(Task Positive Network)을 유연하게 해주는 매개체다.
모두 우리의 감정기재에 본능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 점에서 둘의 기원이 진화론적으로 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인간에게 축적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평론가인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고 하였다.
알타미라와 라스코 동굴의 선사시대 유적을 당시 사람들은 미술작품이라고 볼 수 있었을까? 그것을 그린 이들을 현재의 우리가 미술가라고 지칭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구석기시대 인들에게 동굴의 황소그림은 작품보다는 미신과 기원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음악 역시 우리가 어떠한 소리를 음악이라고 지칭하기 이전에는 음악가만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음악의 유래는 여러 측면의 기원설이 제기되고 있다. 몇몇 학자들은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음악을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동물 울음소리 등을 모방하려다가 발전된 것으로 보고 있고, 어떤 학자는 노동을 쉽게 하기 위해 리듬을 붙이다가 발전하였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주장은 언어를 강조하기 위해 음높이를 조절하다가 발전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사실 음악의 유래는 어떤 한가지 사실로 설명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음악은 우리의 어머니들이 뱃속의 아기에게 사랑스럽게 흥얼거리던 소리들이 우리 DNA에 각인되면서부터 시작했을 수 있다.
술의 기원 또한 하나의 사실로 설명되기 힘들다. 먼저 술이 되려면 미생물인 효모가 당분을 분해하고 알코올로 발효돼야 하는데 그런 환경이 자연에서 우연히 일어나 인류에게 발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수렵채집생활을 하던 인류가 썩어가는 과일이 모여있는 곳의 액체 또는 발효된 꿀을 맛보았고 알코올이 함유된 그 액체들의 매력에 빠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음악과 술의 기원은 이렇듯 우연과 필연이 섞여있으며 약간 모호하기도 하지만 둘 다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되는 감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많은 공통점들이 있다.
별을 보며 안녕을 기원하던 그 시절, 인류에게는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고 종교의 발생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후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온 종교는 제의적 행사를 통해 부족의 번영과 안전을 기원하였으며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 두 가지는 바로 술과 음악이었다.
◆ 종교
술과 음악은 종교와 함께 발전했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특히 종교 탄생의 배경에 술이 한몫했다는 주장도 있다.
자연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발효된 과실 알코올음료를 맛본 인간은 환상과 쾌감, 환각 등의 증세를 보였을 것이고 그것이 신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것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술을 신과 만나는 매개체로 종교행사에 사용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인간이 술을 빚은 역사는 1만 2000년 전 선사시대 유적에서도 발견되었으니 그 역사가 꽤 깊다 할 수 있다.
중동지역의 원시종교는 술에다 물을 타서 신께 바쳤다고 기록돼 있는데, 이후 기독교 문명에서 수도원은 양조장 역할을 함께 하기도 했다. 이는 죽음을 각오하며 십자군 원정을 떠나는 귀족과 성주들이 수도원에 포도밭과 땅을 기부하고 떠난 영향도 있다.
지역과 기후에 따라 포도재배가 용이한 곳은 와인을, 보리재배가 수월한 곳은 맥주(에일)를 수도사들이 직접 만들었다. 한마디로 술은 종교적이며 신성한 것이었다.
음악 역시 종교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기원전 3500년전의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은 제례음악에 류트나 리라, 하프 등을 사용한 기록이 남아있다. 이는 당시 벽화나 도자기, 고대 이집트의 오래된 사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세시대에는 성가가 교회음악에 큰 역할을 하였는데 이후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마드리갈(Madrigal-세속 성악곡) 등으로의 발전하여 서양음악의 기초를 만들었다.
바로크 시기에 이르러서는 악기의 발전과 더불어 성대한 미사음악과 종교음악들(칸타타, 오라토리오)이 음악의 발전을 이끌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J.S.Bach)는 교회의 칸토르(Kantor) 즉 예배음악의 지휘자였으며 모차르트도 한때 짤스부르크의 교회에 봉직하였고, 사계로 유명한 비발디 또한 교회의 사제였다.
이렇듯 술과 음악은 종교를 통해 발전하였으며 지금도 계속 진보하고 다양화 되어가고 있다. 한편 이런 술과 음악은 종교 이전 고대 축제형식으로도 기록되어 있는데, 술과 음악의 신 디오니소스 축제가 바로 그것이다.
◆ 디오니소스 축제
고대 트라키아의 민간신앙으로부터 출발한 디오니소스 신앙은 이후 그리스로 흘러 들어가 대규모 축제형식으로 발전되었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의 12신들 중 하나이며 로마신화에서는 바쿠스(Bacchus)로 불리는 술과 음악의 신이다. 아폴론도 음악의 신이지만 성향은 다르다.
아폴론이 조형적이며 이성적인 음악의 신이라면 디오니소스는 본능적이고 감성적인 음악의 신이라 할 수 있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기원전 13세기경 디오니소스 신앙의 숭배의식으로 광란적이며 극단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기원전 7,8세기경부터는 대 디오니시아(Great Dionysia), 즉 공식화된 디오니소스 축제가 되면서 점차 순화되기 시작하였다.
고대 아테네의 황금시대에 디오니소스 축제는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합창과 연극 등 다양한 공연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는 철학적인 행사가 되었다.
오늘날 연극공연의 기원을 이 디오니소스 축제로 보기도 하며, 크게 보면 연극과 음악이 결합한 오페라의 등장도 디오니소스 축제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술을 통해 광란의 장이었던 축제가 세월이 지나면서 현대예술의 시초가 된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부활의 신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 앞 철자 디오(Dio)는 ‘다시’라는 뜻으로 인간 어머니 세멜레(Semele)의 뱃속에 있다가 다시 아버지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태어나고, 헤라 여신의 질투로 죽었다가 다시 제우스의 어머니 레아(Rhea)에 의해 부활한 기구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부활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술과 음악 그리고 예술을 통해 새로운 시작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디오니소스 축제가 우리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술의 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주량을 조절하여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더욱 강해지기를 원했다. 술과 음악은 적당하면 에너지를 얻지만 지나지면 중독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과유불급과 중용의 덕목 또한 중요하다. 적당한 술과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탈무드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술 마시는 시간을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시간에 당신의 마음은 쉬고 있으니까.”
☞ 추천음반
술과 관련된 음악은 기악곡보다는 주로 가곡과 오페라 축제나 무도회 장면에 등장한다.
주당이었던 영국의 작곡가 헨리 퍼셀(Henry Purcell)의 <I gave her cakes and I gave her ale>이라는 노래는 1690년경쯤 작곡된 다소 장난스러운 술자리를 묘사한 작품이다.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오페라 <La Perichole>의 웨딩씬에 나오는 <Ah! Quel diner>도 여인이 술에 취한모습을 노래하는 장면이다. 조안 서덜랜드(Joan Sutherland)의 목소리가 실감난다.
모차르트의 <돈 지오바니(Don Giovanni)>에도 <Finch’han dal vino(샴페인의 노래)>라는 곡이 있다. 베르디 라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brindisi)>는 대중적으로 유명하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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