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실험 약물 20개 중 최종 승인 '1건'...대체법 마련해야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 개발 실험의 첫 단계는 '전임상'으로 불리는 동물실험이다. 보통 쥐나 돼지, 영장류 등이 활용된다. 화장품 독성 테스트에도 동물실험이 이뤄진다. 동물실험을 거친 뒤 실제 인간에게 사용이 승인되는 사례가 20건 중 1건에 불과하다는 분석결과가 제시됐다. 현재 동물실험 설계가 완벽하지 않고 결함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과학자들은 불필요한 동물 희생을 줄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동물을 활용하지 않는 동물대체시험법을 활성화하기 위한 연구도 활발하다. 동물실험을 궁극적으로 전면 폐지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 동물실험 약물 중 5%만 인간 사용 승인
동물실험은 질병 극복을 위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신약 개발 길을 열어준다는 당위성으로 기초연구에 꾸준히 활용돼왔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전 동물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효과를 확인한다.
베냐민 이나이헨 스위스 취리히대 재생과학센터 연구그룹장 연구팀은 신약 개발을 위한 동물실험 20건 중 1건만 인간 사용을 위한 규제당국 승인으로 이어진다는 분석 결과를 14일 국제학술지 ‘PLOS 생물학’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을 평가한 122편의 문헌을 메타분석해 동물과 인간 대상 연구 결과의 일관성, 임상시험 및 사용 승인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치료법을 테스트하는 동물실험 367건 중 50%가 실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로 전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 대상 약물 사용 승인으로 결론이 난 것은 5%에 불과했다.
연구팀은 최종 사용 승인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크게 줄어든 것은 동물실험 설계의 결함 때문일 것으로 분석했다. 동물실험을 보다 견고하게 설계하고 동물실험에서 보인 약물의 효과가 인간에게도 일관되게 나타날 가능성인 ‘일반화 가능성’을 개선해야 승인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 국내서도 한해 500만 마리 사용...오가노이드 등 대안 검토
국내에서도 동물실험을 위한 동물들이 적지 않게 활용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에서 한해 실험에 사용된 동물은 약 499만 마리였다. 전 세계적으로는 한 해에 약 2억 마리의 동물이 실험에 사용될 것으로 추정된다.
실험에 쓰이는 쥐, 돼지, 영장류 등도 고통을 인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과학적인 측면에서도 한계는 분명하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동물과 사람은 유전적·생물학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동물실험을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인간 대상 임상에서 다른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부지기수다.
이같은 이유로 의약품이나 화장품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국가 늘고 있다.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동물대체시험법 개발도 활발하다. 일례로 미국은 2036년 동물실험을 전면 금지할 예정이다. 오정화 안전성평가연구소 예측독성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은 “유럽에서는 2013년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이 발효됐고 미국에선 2022년 동물실험 없이 의약품 허가를 신청할 수 있는 식품의약국(FDA) 현대화법2.0 이 통과됐다”며 “한국도 동물대체시험 활성화법이 발의됐고 연구계와 제약계가 동물대체시험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대체시험법으로는 인체 장기·조직을 모사한 오가노이드(인공 장기) 모델 활용, 물벼룩·제브라피쉬 등을 활용한 대체독성 연구가 꼽힌다. 성체줄기세포, 배아줄기세포 등 인간 유래물을 기반으로 한 오가노이드는 인간 장기를 재현한다.
오 책임연구원은 “인체약물대사 능력을 모사한 간 오가노이드와 심장의 전기생리학적 특성을 평가하는 심장 오가노이드 제작 기술로 신약 및 환경유해물질에 대한 간 독성, 심장 독성 평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런 연구는 동물실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정확히 인체 독성영향 등을 예측할 수 있어 안전하고 효과적인 신물질 개발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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