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헌법 84조’ 논쟁으로 ‘피고인 이재명’에 선제공격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자기 범죄로 재판받던 형사피고인이 대통령이 된 경우, 그 형사재판이 중단되는 걸까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6월8일 자신의 SNS를 통해 던진 이 질문이 정치권과 법조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흔히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이라 불리는 헌법 제84조('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해석과 관련한 이 논쟁은 각종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특히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6월7일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1심 재판에서 징역 9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게 도화선이 됐다. 법원은 쌍방울그룹의 대북 송금이 도지사의 방북을 위한 대납이었다고 봤다.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대표에 대해 검찰은 6월12일 이 사건 관련 공범으로 추가 기소했다.
민주당 "재판은 당연히 정지된다…한동훈 주장은 해괴한 논리"
정치권에서는 한 전 위원장이 헌법 84조 논쟁을 꺼내든 것은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출마를 위한 포석이자 차기 대권의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인 이재명 대표에게 선제공격을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 전 위원장으로서는 '이재명 대 한동훈'의 대결 구도가 일찍이 펼쳐지는 게 나쁠 게 없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의 또 다른 당권 주자 후보군인 나경원 의원도 참전했다. 다만 나 의원의 의견은 한 전 위원장과 결이 다르다. 나 의원은 "이 대표 본인, 그리고 '이재명의 민주당'이 지금까지 보여준 행각들을 보면, (한 전 위원장의) 기대와 예상은 허망하다"고 했다.
민주당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 논쟁을 애써 피하려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의원은 "형사사건에 대한 재판은 정지되는 게 당연한데 자기들끼리 (재판이 계속돼야 한다는) 해괴한 주장을 하고 있다"며 "논쟁할 가치도 없다"고 했다.
현재 민주당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 대표가 만일 형사재판의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헌법 84조 논쟁은 현실화된다. 논쟁의 핵심은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할 때 대통령 당선 전 기소돼 진행 중이던 재판도 해당하느냐다. 일반적으로 '소추(訴追)'란 '형사사건에 관하여 소를 제기'하는 것으로 기소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전 기소돼 진행 중인 형사재판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규정이나 헌법재판소·법원 등의 판단도 찾아볼 수 없다.
정치권에서 이 같은 논쟁이 벌어진 게 처음은 아니다. 2017년 19대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의 홍준표 후보(현 대구시장)가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홍 후보는 당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대법원 상고심 판결을 남겨놨던 상황이었다. 경쟁자들은 홍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법원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고, 홍 후보 측은 헌법 84조를 들어 방어했다. 결국 홍 후보가 낙선하고 이후 대법원에서도 무죄 판결을 확정받으면서 논쟁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끝났다.
다시 떠오른 논란에 헌법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먼저 '소추'의 의미를 좁게 봐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헌법학계 원로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헌법 84조에 대해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에게 특권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소추는 수사부터 기소까지를 뜻한다는 것은 사법 절차의 기초적인 상식"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자유민주국가에서 헌법 해석의 일반원칙은 통치권의 기본권 기속성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기본권은 되도록 넓게, 통치기관의 특권과 권한은 가능한 한 좁게 해석하는 것"이라며 "재판 중인 형사피고인이 대통령이 되는 때에도 재판은 당연히 계속돼야 하고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으면 대통령직을 상실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 문제를 처음 꺼낸 한동훈 전 위원장 역시 같은 주장을 폈다. 한 전 위원장은 "헌법은 탄핵소추와 탄핵심판을 따로 규정하고 있고, 대법원도 형사소추와 형사소송을 용어상 구분해서 쓰고 있으므로 헌법 제84조에서 말하는 소추란 소송의 제기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며 "형사피고인이 대통령이 된 다음에 실형도 아니고 집행유예만 확정돼도 대통령직이 상실된다. 선거를 다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해당 조항의 취지를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다. 헌법학자인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국가원수이자 집행부 수반인 대통령이 형사 법정에 계속 불려 다니게 되면 국가의 위신에도 문제가 생기고 공권력 자체에 대한 불신도 생겨날 수 있다. 헌법 84조는 이러한 고려 때문에 대통령에 대해 형사소추에 대한 특권을 인정한 것"이라며 "형사소추와 형사소송이 구별되는 의미이기는 하나 조항의 취지에 충실해 해석하면 대통령을 형사 법정에 세우지 않게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봤다.
다만 차 교수는 "헌법 제정자가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는 못한 것 같다"며 "지금과 같은 논란 자체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고 헌법학자로서 굉장히 서글픈 상황"이라고 했다. 허영 교수도 "우리 헌법 제정자들도 지금의 반(反)법치적인 정치 상황이 생길 것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며 "범죄 피고인에게 도피처를 마련해 주는 헌법 규정을 만든다는 것은 헌법 원리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美 의회 난입 사태 같은 극단적 상황 벌어질 수도"
정치권에선 이러한 논쟁이 현실화됐을 경우 발생할 혼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시사저널에 "실제로 그러한 극단적 상황이 될 경우 국민들은 심리적 내전 상태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며 "결론이 없고, 반반으로 팽팽한데 거기다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면 학문의 영역이 끝나게 된다. 힘과 힘이 부딪치게 되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 때 의회 난입 사건과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란 속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지연 논란이 있는 이 대표의 형사재판들에 대해 법원의 신속한 판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판사 출신이자 감사원장을 지낸 최재형 전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적인 대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이나 위증교사 같은 비교적 간단한 범죄사실뿐 아니라 대장동 등 배임·뇌물 사건도 대선 전에 대법원 판결이 나와야 한다"며 "(만일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대표가 당선된다면) 결국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판단을 하게 될 텐데, 국가원수의 자격이 선거가 아닌 사법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은 어느 모로 보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차진아 교수도 "법원의 역할이 막중하다"며 "법원에서 더 이상 (이 대표의 형사재판을) 지연시키지 말고 조속히 진행시켜 더 이상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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