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작곡가, 아들’…벼랑 끝 유재환이 만나야 할 ‘진짜 두려움’
어눌한 말투와 80만원짜리 티셔츠, 10억 코인 투자 실패와 오락가락하는 작곡비 변제 약속…그리고 ‘인생 하차’. 작곡가 겸 가수 유재환(34)이 우리 앞에 던져놓은 것들이다.
인간의 삶을 달에 비유하자면, 유재환의 삶은 이지러질대로 이지러져 원래의 형상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됐다. 그가 말하는 자신의 인생이 종잡을 수 없어질수록, 보는 이들에게는 사기에 가까운 ‘무료 작곡 쇼’만이 남는다. 성희롱 및 성추행 의혹은 본인이 강력 부인하고 있지만, 170명이 넘는 이들에게 작곡비 명목으로 돈(인당 130만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 중 최소 6~70명에 달하는 이들이 7~8000만원에 달하는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와중에 그는 ‘인생 하차’를 선언했다. ‘무한도전 가요제’에 등장했던 순박한 음악청년은 이제 남의 돈을 함부로 쓴 것도 모자라 무책임하게 달아난다는 오명(汚名)을 쓸 위기에 처했다.
지난 10일 유재환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생을 하차하려 한다’는 유서 형식의 메모를 공개해 충격을 안겼다. 유재환의 모친이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미디어’에 전한 바에 따르면 유재환은 생을 마감하려 시도했다가 중환자실로 실려가는 등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서도 그는 산소호흡기 등을 떼려 시도하며 비명을 지르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혼이 무산되고 전국민적인 질타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 그가 심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너무 무서웠어요.” 죽음으로부터 살아돌아온 청년은 달아나려 한 이유에 대해 그렇게 되뇌었다.
하지만 피해 구제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 없이 삶으로부터 도망치는 모습은 여론을 더욱 싸늘하게 만들었다. 중환자실에서 사투하고 있는 아들에 대해 설명하는 그의 어머니마저 ‘목소리가 너무 차분하고 평온하다’,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받게 됐다. 무엇보다 대중의 날카로운 시선은 아직 병상에 있을 유재환의 흐릿한 정신을 향해 있다. ‘어머니에게까지 몹쓸 짓 하지 말고 어서 일어나라’는 ‘포기하지 말고 뭐라도 해서 피해자들 돈을 갚으라’는 한결같은 목소리에는 우려와 질책, 응원이 함께 녹아들어 있다.
유재환은 뭐가 그렇게 두려웠을까? ‘어쩌다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졌는지’라는 유서 속 질문은 그 자신만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무한도전’ 속 순박하면서도 영민했던 청년이 어쩌다가? 혹시 돈 때문에? 유명세로 큰 돈이 들어오자 눈에 뵈는 게 없어진 걸까? 80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티셔츠를 입고 ‘코인으로 10억을 날렸다’고 말하는 유재환의 어눌한 말투와 표정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자의 그것이었다. 그동안 그는 작곡비 변제 의지를 드러내면서도 ‘돈 돌려받을 생각 하지 말라’며 고소 협박을 하는 등(피해자들이 자신을 조롱했다는 이유였다)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진정한 반성이 있었다면 나오기 어려운 태도다. 한꺼번에 여러 명의 작곡 의뢰를 제대로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그는 유서를 통해 ‘모든 이가 음원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만은 진심이었다’는 말을 남겼다.
“여유는 없었지만, ‘코인으로 파산해서 이 프로젝트(무료 작곡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논리가 생기는 게 싫었다.”
본인이 내키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자처한 현실이 다른 것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는 코인으로 파산했고, 무료 작곡 프로젝트로 다른 이들의 돈을 갈취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여성들이 성희롱을 겪었다고 주장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 사실을 직면하기엔, 유재환은 이미 무너질대로 무너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럴수록 그에게 답은 하나 뿐이다.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인간으로서, 어른으로서, 아들로서 그가 맞닥뜨려야 할 현실은 점점 더 무거워지기만 할 터. ‘비겁한 사기꾼’이라는 오명을 쓴 그는 지금 <삶을 가벼이 여기는 태도>를 고통 받는 많은 이들 앞에 전시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하루라도 빨리 그가 맞닥뜨려야 할 현실은 하나뿐이다. 이름이 알려진 작곡가이자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며 한 사람의 소중한 인간인 유재환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 바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마음’이다.
서다은 온라인 뉴스 기자 dad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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