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두려워 유전 시추도 못한다면 후손들이 뭐라 하겠나 [핫이슈]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6. 1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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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이 있다는 브리핑을 하고 있다. . 2024.6.3 [이승환기자]
이명박(MB) 정부 시절, 지식경제부(현 산업자원통상부)를 출입할 때 자원외교 관련 발표가 많았다. 어떤 때는 이 전 대통령 순방 기간에 따낸 계약 성과를 소개하느라 일요일에 브리핑이 열리기도 했다. 그 중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중 하나는 2009년 10월 캐나다 석유기업 ‘하베스트’ 인수 건이다. 한국석유공사는 하베스트 지분 100%를 40억8000만달러(당시 환율로 약 5조2000억원)에 샀는데 이듬해부터 계속 손실을 냈다. 하베스트 정유 부문 자회사인 노스아틀랜틱리파이닝(NARL)까지 높은 가격에 매입한 것이 화근이었다. 석유공사는 2014년 NARL을 매각했지만 손실 규모는 1조7000억원에 달했다. 1년 뒤 강영원 석유공사 사장은 부실 인수 혐의로 구속까지 됐다.(그는 2020년 12월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베스트 부실 논란이 커지자 확인 검증도 못한 채 정부 발표만 믿고 따라 쓴 기자들은 자괴감이 컸다. 인수 발표 직후부터 하베스트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들이 캐나다 교민 사회에서 나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취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다들 있었다.

또다른 포인트는 당시 야당이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외국 회사 인수에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석유·가스 불모지인 한국이 해외에서 에너지를 확보해 자주개발률을 높이는데 대해 국민 모두가 흥겨워하는 분위기였다. 자주개발률은 석유·가스 소비량을 해당국이 국내외에서 확보한 생산량으로 나눈 비율로 MB 정부에 와서 두자릿 수를 처음 기록했다. 2007~2008년에는 국제유가 급등으로 자원 확보에 대한 국민 열망도 컸다. 무엇보다 평소엔 치고받는 정치권이라도 국가 안보와 에너지 주권 확보 문제 만큼은 국운이 달린 일로 보고 한마음이 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물론 하베스트를 비롯해 카자흐스탄 ‘잠빌’ 광구나 러시아 ‘서(西)캄차트카’ 유전 등에서 실패 사례가 속출하면서 자원 개발이 쉽지 않다는 점도 알게 됐다.

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에 최대 140억배럴 규모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 미국 액트지오(Act-Geo)의 비토르 아브레우(Vitor Abreu) 박사가 5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로 입국해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4.6.5 [한주형기자]
그런 부정적 경험들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그런지 최근 동해 영일만 ‘대왕고래’ 프로젝트 시행을 놓고 많은 이들이 반신반의한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의심 수준을 넘어 원색적으로 비난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십중팔구 실패할 사안에 국민 혈세를 투입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매장 가능성을 분석한 미국 액트지오사(社)가 사실상 1인 기업에다 체납 이력까지 있다며 진상 규명을 요구한다. 이게 안되면 국회 제1당 권력을 활용해 시추 예산을 승인해주지 않겠다고 윽박지른다.

특히 주무부처인 산자부가 사업을 강행할 경우 담당 공무원은 다음 정권에서 좋지 않은 일을 당할 것이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는 소문도 나돈다. 이러한 민주당 공세는 자기들 신념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석유·가스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으로 비친다. 매장 가능성 소식에 기쁜 마음으로 무엇부터 도와야 할지 논하기는커녕 꼬투리만 잡으려는 태도는 정상이 아니다. ‘에너지 갈증’이 컸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매우 작은 가능성이라도 힘을 합쳐 이뤄보려는 자세가 필요한데 지금 민주당한테는 당리당략적 이해가 먼저다.

국내 해저에서 나온 역대 최고의 매장 확률이지만 여전히 작은 숫자라서 무시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정부나 비토르 아브레우 박사(액트지오 고문) 모두 ‘말 못할’ 근거가 명확하다고 하니 믿어볼 일이다. 물론 정부나 아브레우 박사 모두 누구와 맺은 계약이길래 비밀조항 준수를 내세워 제대로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점은 아쉽다. 해외 유전 개발도 아니고 국내에서 우리가 돈을 대고 탐사한 광구를 누구와의 비밀계약 때문인지 얘기를 꺼리는 것은 불신을 키우는 측면이 있다.

에너지 개발은 모험이 수반되는 일이다. 하지만 하베스트 같은 기업을 비싼 값에 인수하는 것도 아니고 외국도 아닌 우리 영해에서 매장 가능성이 큰 곳을 정밀 진단해보자는 것이다. 시추공 하나를 뚫는데 드는 1000억원이 비쌀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이 그 정도 돈이 없어서 국가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일을 못할 수준은 아니지 않나. 지난해 저출생 예산에 쓰인 47조원 중 절반이 엉뚱한데 쓰였다는데 그에 비하면 5회 시추 비용 5000억원은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민주당이 계속 고집을 피워 예산 조달이 안되면 다른 정부 지출을 줄여서라도 승부를 봐야 한다. 그것도 안되면 국민성금이라도 모아 해볼 일이다.

20% 낮은 성공 가능성 때문에 실패 후폭풍이 두렵다면 정부는 여기서 멈추는 게 살 길이다. 실패 확률이 큰 게임에 정부가 판돈을 댔다며 비난하고 책임을 묻는다면 정부나 개인이 택할 가장 현명한 처신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국익 증가과 미래 번영을 위해 매진해야 할 정부 자세가 아니다. 정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야당은 까탈스런 조건을 내세워 시추공도 뚫지 못하게 막아선 안된다. 야당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면서 국가 미래가 걸린 일에 지출을 아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민주당이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대한민국 국익보다 정파적 이익에만 골몰하는 집단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지금은 시추 계획을 잘 짜서 석유·가스 발견 확률을 높이는데 집중할 때다. 그리고 매장이 확인됐을 때를 가정해 주변국들의 따가운 반응과 약탈적 수법에 어떻게 대응할지, 상업생산을 위해 어떤 계약조건으로 외국 메이저들과 협업할지 고민해두는 게 국익에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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