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휴진’ 균열조짐…병원 내부 “휴진 불참”·전공의 “합의 없었다”

2024. 6. 1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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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분만·마취병원 등 휴진 불참 선언
간호사·병원 직원 등도 “일정 변경 불가”
정부 “의사 불법행위, 노쇼에 엄정 대응”
전공의 대표 vs 의협 대표 갈등 격화도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중증아토피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등 환자 단체 회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의료계 집단휴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오는 17일 이후 벌어지는 병원 ‘셧다운’을 앞두고 의료계 내 균열 조짐이 노골화 하고 있다. 아동병원과 분만병원들은 “환자를 두고 떠날 수 없다”라며 휴진 불참을 선언 했고, 병원 내부에서는 “일정 변경을 교수들이 직접하라”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휴진 불참 방침을 밝힌 의료인에 대한 공개 비판에 나섰지만, 전공의 대표는 임 회장에 대해 ‘뭐하는 사람이냐’고 비판했다. 가뜩이나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는 ‘의정 갈등’에 ‘의료계 내분’까지 겹치며 사태 해결에 보다 많은 시일이 걸릴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아동병원과 분만병원들은 대한의사협회가 주도하는 오는 18일 집단 휴진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은 “병원마다 대형 병원에서 이송된 중증·입원 환자가 많다”라며 “아픈 아이들을 두고 현실적으로 떠날 수 없다”고 했다. 대한아동병원협회에는 분만병원 130여 곳이 속해 있다.

분만병원 140여 곳이 소속된 오상윤 대한분만병의원협회 사무총장 역시 “의협 주장에 동의하지만 예정된 분만과 진료를 취소할 순 없다”며 “양수가 터지는 등 응급 분만 상황도 있을 수 있어 18일 정상 근무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마취과 의사들도 병원에서 자리를 지키겠다는 성명을 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이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의대정원 증원사태 대응방안 논의를 위한 제4차 비공개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

임 회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들 비판에 나섰다. 임 회장은 “세계 어디도 없는 폐렴끼란 병을 만든 사람들”이라며 “멀쩡한 애를 입원시키면 (정부에서) 인센티브를 주기도 한다”며 불쾌감을 표현했다.

의협과 함께 집단 휴진을 주도한 서울대병원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이 보이고 있다. 서울대병원 간호본부와 행정 직원들은 내부 회의에서 “수술과 진료 일정을 바꾸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병원장도 최근 교수들의 전면 휴진은 불허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무기한 휴진을 하려면 수백에서 수천건의 일정이 바뀌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소리”라고 말했다.

무기한 휴진을 예고한 다른 ‘빅5’ 병원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전해진다. 한 대학병원 직원은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교수들이 휴진을 선언하는 순간 병원은 진짜 ‘셧다운’”이라며 “현실적으로 간부들이 이를 허락할 수 없다. 휴진이 이뤄지면 병원 줄도산은 순식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원의들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서울 강동구 지역 개원의는 “하루만 문 닫아도 손해가 큰 동네 병원에서 하루 문 닫기가 쉽지 않다”라며 “행정명령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집단 휴진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연세의료원 산하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세 곳에 소속된 교수들이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발해 오는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들의 대기시간이 안내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정부는 앞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동네병원 3만여 곳을 대상으로 진료명령과 휴진 신고명령을 내렸다. 오는 18일 집단휴진 당일 모든 의원급 의료기관에 오전, 오후 모두 진료상황을 점검할 예정이다. 반차 사용을 통한 업무개시명령 회피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개원의들의 움직임에는 촉각을 세우면서, 의대 교수들에 대해서는 협상안을 마련하고 있다. 또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유화책을 내놓는다. 정부는 의대 교수들의 집단 휴진에 대해 즉각적인 업무개시명령이나 진료유지명령은 내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교육부는 이날 긴급 브리핑을 통해 ‘집단 휴학’을 이어가고 있는 의대생들의 복귀 대책을 발표한다.

정부는 “이미 예약이 된 환자에게 환자의 동의와 구체적인 치료 계획 변경 없이 일방적으로 진료 예약을 취소하는 것은 의료법이 금지하는 진료 거부가 될 수 있다”며 “의사의 불법행위, 노쇼(예약 후 잠적)엔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의협은 전날 대학병원 교수 단체 등과 만난 후 기자회견을 열고 “주말까지 정부가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꿔 의협과 대화에 나서면 18일 집단 휴진을 취소할 수 있다”고 했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정부의 입장 변화에 대해 “의협을 단일 창구로 그동안 의료계가 요구했던 것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구체적인 요구안은 늦어도 14일까지 발표하겠다”고 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페이스북 갈무리.

의협의 13일 연석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의협 vs 전공의’ 갈등 양상도 전면화 되고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이 의협 회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다.

박 위원장은 “임 회장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이제 말이 아니라 일을 해야 하지 않을지. 단일 대화 창구? 통일된 요구안? 임 회장과 합의한 적 없다”는 글을 SNS에 올리며 의협을 비판했다.

박 비대위장의 이번 SNS 메시지는 전날 오후 의협이 ‘정부 태도 변화 시 전면 휴진 재검토 발표’와 ‘의협이 단일 대화 창구’라는 입장 표명 직후 1시간여 만에 나왔다. 박 비대위장이 의협 측에 대한 불만을 노골화한 부분은 ‘의협이 단일 대화 창구’라는 의협 측의 주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의료 공백을 주도해온 것은 전공의들인데, 의협이 정작 전공의와는 협의과정을 생략하고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전날 의협 연석회의에는 대한의학회,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서울의대 비대위 대표자 등이 참석했는데,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전공의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의협 측도 여러 의료단체들과 연석회의에 전공의들이 왜 빠졌냐는 질문에 즉답은 피했다.

한편 의협은 구체적인 대정부 요구안을 이날 오전 공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의협 측의 대정부 요구안이 ‘의료계의 통일 요구안’이 될 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의협을 많은 의료계 단체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brunc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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