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유작 ‘소송’둘러싼 소송… 소설, 현실과 교차하다[북리뷰]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베냐민 발린트 지음│김정아 옮김│문학과지성사
카프카의 절친한 친구 브로트
세상 떠나며 비서에 유작 넘겨
이스라엘 도서관,반환소송 제기
개인-국가 간 법적 일화 담아내
소설가 타계 100년 맞아 출간
작품 바라보는 독자 시각 넓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이야기꾼이다. 대표작인 ‘변신’을 필두로 최근 타계 100주기를 맞아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책을 보면 그가 우리 시대에도 잊히지 않을 작가임이 분명해 보인다. 카프카가 생전보다 사후에 더 큰 명성을 얻었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제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편소설 ‘성’과 ‘소송’ 등은 모두 카프카가 세상을 떠난 후 발표됐고 그가 남긴 시와 그림까지 공개되면서 전 세계 독자들은 더 넓은 영역에서 천재 작가의 위대함을 확인했다.
그러나 카프카의 유고에 대한 소유권 소송이 지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약 9년에 걸쳐 진행됐다는 사실은 생소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작가인 베냐민 발린트의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은 그가 사망하고 80년이 지나 벌어진 소송을 다루면서 미공개 작품을 넘어 이제는 사후에 벌어진 사회적 사건까지 다루는, 타계 100주기의 종착점 같은 책이다.
“친애하는 막스, 마지막 부탁이네. 공책과 원고와 편지, 그리고 스케치 등등은, 읽지 말고 남김없이 불태워줘.”
이야기는 카프카가 사망하기 전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기록자를 자처했던 막스 브로트에게 남긴 마지막 부탁에서 출발한다. 정확히는 브로트가 절친의 마지막 부탁을 저버리면서다. 브로트가 불태우지 않은 원고는 카프카에게 명성을 가져다줬지만, 문제는 브로트가 사망한 지 40여 년이 흐른 후 발생했다. 2007년 이스라엘에서는 카프카와 혈연관계도 아니며 만난 적도 없던 73세 여성 에바 호페에게 카프카의 미완성 원고 ‘소송’을 반환하라는 소송이 제기된 것이다. 어째서 일면식도 없던 이 여성은 카프카의 원고를 손에 넣었던 것일까?
사실 이는 브로트가 프라하 난민 출신이자 에바의 어머니인 에스테르 호페를 비서로 고용하고 세상을 떠나면서 전 재산을 그에게 남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스테르는 그가 남겨준 카프카의 원본 원고 일부를 경매에 내놓아 큰돈을 버는가 하면 자신이 사망할 때 두 딸 에바와 루트에게 이를 다시 한 번 상속하려고 했다. 여기서 이야기는 꼬이게 된다. 상속 절차에 돌입하자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은 이들에게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고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까지 나서 브로트가 자신의 유산을 그곳에 두고 싶다고 전했다며 가세한다.
점입가경으로 진행됐던 소송의 결과는 마치 해당 원고 속 문장과 같다. “이런 소송에 휘말렸다는 것은 이미 패소했다는 뜻”이라는 소설 ‘소송’ 속 문장처럼 에바는 원고를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에 반환하게 됐고 소송으로부터 1년 후 8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단순한 해프닝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 이 사건은 카프카의 작품 세계와 겹쳐질 때 다채로운 의미를 갖는다. 카프카의 소설에는 법 앞에 무너지는 개인들이 주요하게 다뤄진다. ‘소송’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죄목을 알지 못한 채로 소송에 휘말려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결국 처형당한다. 소설 ‘유형지에서’는 죄수의 살갗에 해독할 수 없는 문자를 새겨 넣는 방식으로 처형하고 그 의미는 사형수가 죽는 순간에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이 때문에 문학 작품과 사건이 교차하는 진행 방식은 책의 가장 돋보이는 지점이다. 소송이 진행되고 두 국가와 한 개인이 법정에서 증거를 제출하는 과정과 카프카의 문학을 오가면서 저자는 “소송이 유한(권익)이 무한(문학)을 상대할 때 취하게 되는 불안한 역반응을 대표한다”고 말한다.
일련의 소송 과정에서 에바 호페와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 중 어느 편의 주장에 설득되어도 무방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문학 작품의 소유권이 갖는 의미, 개인과 국가 권력의 대립, 두 국가가 문화를 대하는 방식 등에 대해 여러 방면에서 고찰해볼 수 있다. 소설과 닮아 있는 하나의 사건을 보면서 깨닫게 된다. 위대한 이야기꾼은 그가 남기고 간 모든 것이 이야기가 된다. 396쪽, 2만4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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