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중국萬窓] 매운 요리와 인재의 고향 쓰촨, `적벽부`의 소동파를 낳다
중국 서부 내륙 지방에 자리잡은 쓰촨(사천·四川)성은 우리에겐 삼국지의 유비가 세운 촉한 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항우에 밀려 중원에서 쫓겨온 유방이 권토중래를 위해 힘을 비축하던 곳이기도 하다. 면적은 남한의 거의 다섯배에 달하고, 성도(城都)는 청두(성도·成都)다. 촉(蜀)은 접시꽃 위에 사는 애벌레라는 뜻으로, 쓰촨은 중국에서 비단을 처음 만든 곳이기도 하다. 청두에는 제갈량(제갈공명)을 모시는 무후사(武侯祠), 노자를 기리는 청양궁(靑羊宮), 두보가 머문 두보초당(杜甫草堂) 등이 있다. 유비를 도와 삼국 정립을 이룬 제갈량이 촉한 건흥 5년(227년) 조조의 위를 징벌하려고 출병하면서 유비의 아들 후주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는 중국 역대 산문 중 명문으로 꼽힌다. 출사표는 전(前)출사표와 후(後)출사표가 있는데, 후출사표의 여덟 글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나라를 위하여 힘껏 싸우다 죽은 후에야 그만 둘 따름입니다"(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췌 死而後已)는 지금도 회자되는 불후의 명언이다.
촉으로 가는 길은 예부터 험난했다. 이백은 '촉도난'(蜀道難·촉으로 가는 길의 험난함)이란 시에서 "아, 높고도 높도다, 촉으로 가는 길 험난함이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더 어려워라"(희우희 위호고재 촉도지난 난어상청천·噫우噫 危乎高哉 蜀道之難 難於上靑天)라고 노래했다.
분지 형태인 쓰촨성은 천부(天府·천자의 창고)의 땅이라 불릴 만큼 물자가 풍부하다. '천하의 인재는 모두 쓰촨으로 들어간다'(천하재인개입촉·天下才人皆入蜀)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재의 고향이기도 하다. 청두는 이백, 두보의 도시로 불린다. 곽말약(郭沫若·궈모루), 파금(巴金·바진) 등 중국 현대문학 대가와 주덕(朱德·주더)과 등소평(鄧小平·덩샤오핑) 등 중국 공산혁명 지도자들의 이곳 쓰촨 출신이다. 쓰촨은 얇게 썬 고기나 해산물, 채소 등을 끓는 밑국물에 넣어 살짝 익혀 소스에 찍어 먹는 중국식 샤부샤부인 훠궈의 고향이다. 라자오, 하이자오로 불리는 쓰촨 고추는 매운 맛을 자랑한다. 유네스코는 지난 2010년 청두를 '미식의 도시'(美食之都)로 지정하기도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얼굴의 가면을 바꿔 쓰는 변검도 쓰촨의 전통 기예다.
대문장가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소식(蘇軾·소동파)이 태어난 곳은 청두 남쪽 메이산(미산·眉山)이다. 도교와 불교의 성산으로 유명한 어메이산(아미산·峨眉山)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어메이산은 무협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미파의 본산이기도 하다. 메이산에는 소식과 그의 부친 소순(蘇洵), 그리고 동생 소철(蘇轍) 등 이른 바 삼소(三蘇) 동상이 있다. 이들 삼부자는 당과 송 나라때 가장 글을 잘 쓴 당송팔대가에 모두 포함된다. 소식은 자가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東坡)다. 과거를 준비하던 선비들은 하루에 천리를 가듯 호방하고, 떠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처럼 자유로운 그의 문장을 모범으로 삼았다. 그래서 "소식의 글을 익히면 양고기를 먹을 수 있고, 모르면 풀죽 밖에 못먹는다"는 말조차 나올 정도였다. 시 약 2400수, 사(詞·산문) 300수가 지금까지 남겨져 내려온다. 소동파는 서예에도 조예가 깊어 채양 황정견 미불 등과 함께 송대 4대 서예가로 꼽힌다. '구문소자'(歐文蘇字)는 구양수의 문장과 소동파의 글씨라는 말로, 진주가 한데 꿰이고 옥이 한데 모인 것 같은 작품을 의미한다.
소동파의 대표작은 동파가 후베이성(호북성·湖北省) 우한(무한·武漢)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 거리인 황광(黃岡)시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지은 '적벽부'(赤壁賦)다. 황강의 적벽은 삼국시대 '적벽대전'이 일어난 후베이성 가어현(嘉魚縣) 북동 양자강(陽子江) 남안과는 다르다. 조정에서 잘 나가던 동파는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하다가 하루아침에 미관말직으로 좌천돼 황주에 유배됐다. 심신이 피폐해진 그에게 황주의 뛰어난 자연풍광은 안정을 되찾게 했다. 동파라는 호는 유배 시절 황주 동쪽 언덕에 있는 황무지(동파·東坡)를 개간해 호구지책으로 삼은 데서 연유했다. 도가적 분위기를 풍기는 적벽부는 전(前)적벽부와 후(後)적벽부 두편으로 나뉘는데, 적벽 아래 배를 띄워 뱃놀이를 하면서 궁벽한 삶속에서도 욕심없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신선 같은' 삶의 경지를 노래했다.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차부천지지간 물각유주·대저 천지지간에 모든 사물은 각기 주인이 있으니)
苟非吾之所有 (구비오지소유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雖一毫而莫取 (수일호이막취·비록 털 하나라도 함부로 취하지 않네)
惟江上之淸風 (유강상지청풍·오로지 강위의 맑은 바람과)
與山間之明月 (여산간지명월·산간의 밝은 달은)
耳得之而爲聲 (이득지이위성 ·귀로 들으면 아름다운 음악이 되고)
目遇之而成色 (목우지이성색 ·눈으로 보면 그림을 이루네)
取之無禁 用之不竭 (취지무금 용지불갈 ·취해도 막지 않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是造物者之無盡藏也 (시조물자지무진장야 ·이것이 조물주의 무궁한 보물로)
而吾與子之所共適 (이오여자지소공적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길 것이다)
적벽부의 한 구절이다. 소동파는 적벽부에서 청풍과 명월을 벗 삼은 신선같은 삶을 노래했다. 이런 삶의 자세는 해남도 귀양지에서 유배를 끝내고 가족 품으로 돌아가던 중 한 화가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 그림에 쓴 '금산에서 그려준 내 초상화에 시를 쓰다'(자제금산화상·自題金山畵像)라는 시에서 "마음은 이미 재가 된 나무, 몸은 매이지 않은 배"(심사이회지목 신여불계지주·心似已灰之木 身如不系之舟)라는 구절에도 드러난다. 정치와 인생의 풍파를 겪으면서도 삶의 욕망에서 벗어난 매이지 않으려는 몸이 동파의 지향점이었던 것이다.
비록 고려를 오랑캐라며 그토록 싫어했던 동파이지만 그는 서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서민들을 위한 청백리였다. 황주 유배살이동안 만든 요리가 동파육이다. 동파육은 물을 조금 붓고 불에 올려놓은 후 몇 시간동안 뭉근하게 삶아서 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된다. 그가 쓴 시 '식저육'(食猪肉·돼지고기를 먹으며)은 동파육을 만든 배경과 만드는 방법을 노래한 것이다. 동파는 이 시에서 "돼지고기는 값이 저렴하지만 부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난한 사람들은 요리법을 모른다"며 서민들을 위해 동파육을 만든 것임을 설명한다.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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