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기’를 택한 인류… 유목민이 일궈낸 ‘문명의 번성’[북리뷰]

장상민 기자 2024. 6. 1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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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껏 배우고 읽어 온 인류의 역사는 반쪽짜리 역사다.

런던과 이집트를 오가며 유랑 생활을 계속하는 저자는 현장과 사람들, 정착민이 남긴 기록을 종합해 1만2000년에 달하는 유목민의 역사를 '노마드'에 묶어냈다.

저자는 인류 최초의 농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상부 '괴베클리 테페'에서 유목민 역사 여정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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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노마드│앤서니 새틴 지음│이순호 옮김│까치

우리가 지금껏 배우고 읽어 온 인류의 역사는 반쪽짜리 역사다. 그것은 한곳에 모여 나라를 이루고 역사를 기록해 유지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만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끝없이 이동하며 언제 어디서나 존재했던 유목민(Nomad)의 역사는 역사서 속 모든 글자의 자간과 행간의 바탕을 이루고 있음에도 기억되지 못했다.

그러나 역사는 글자가 아닌 시간이고 글자 밖의 모든 바탕을 찾아내 알아내는 것이 오히려 역사 이해의 본질이다. 런던과 이집트를 오가며 유랑 생활을 계속하는 저자는 현장과 사람들, 정착민이 남긴 기록을 종합해 1만2000년에 달하는 유목민의 역사를 ‘노마드’에 묶어냈다.

저자는 유목민과 정착민을 나누기 이전 인류는 모두 ‘수렵채집인’이었다는 사실을 짚으며 책을 시작한다. 이와 같은 생활상이 녹아들어 성경 속 태초의 땅 ‘에덴’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에덴동산의 풍요는 인구 증가를 가져왔고 먹거리가 부족해지자 인류는 생존을 위한 두 가지 선택지에 내몰렸다. 하나는 경작이며 다른 하나는 유목이다.

저자는 인류 최초의 농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상부 ‘괴베클리 테페’에서 유목민 역사 여정을 시작한다. 피라미드, 스톤헨지보다 7000년이나 앞섰던 그곳의 거석 구조물로부터 상호 협력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많은 역사가들이 괴베클리 테페를 농업과 함께 ‘정착’의 거점으로 보지만 저자는 정착 생활 증명을 위해 필요한 한 톨의 쓰레기조차 발견되지 않았다며 유목민들이 정례적으로 모이는 제사 공간을 규정한다. 결국 유목민의 협력이 거대한 돌을 들어 올려 구조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집트, 로마 시대를 거치며 형성된 ‘외침’ 세력, ‘야만인’이라는 프레임도 비판한다. 유목민들의 이동을 주체와 대상으로 분리해 ‘외침’으로 보는 것은 정착민들의 편향된 시선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집트 문명도 유목민족인 스키타이족 통치기가 반복됐고 그 시기 동안 여러 지역의 문명을 흡수한 유목민으로 인해 문화 융성을 이뤘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은 나아가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동양문화의 전래도 유목민족의 대이동으로 인해 촉발됐다는 것에 이른다.

한편 저자는 역사가 글자 속에 남아 있지 않고 개개인의 몸 안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특유의 산만함으로 대표되는 ‘유목민 유전자’가 노마드의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유목민 유전자’는 기후 위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지금의 터전을 떠나 살게 될 날이 머지않은 미래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유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64쪽, 2만2000원.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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