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이 삶을 링 위에 눕혀도… 죽음에 지겠단 생각 안해”[M 인터뷰]
4년간 쓴 시 59편과 산문 엮어
‘사당3동별곡’ 산책길 소회담아
코로나때 고통겪은 노인 많아
삶의 애착 끊으니 더 즐거워
영생한다면 뭐가 그리 즐겁겠나
한번뿐인 삶 즐겨야 진짜 행복
K-문학 세계적 수준에 다다라
지금 인정 안돼도 결국 빛볼것
인터뷰 = 김인구 문화부장, 정리 = 장상민 기자
59편의 시보다 시집의 말미에 놓인 짤막한 에세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당3동 별곡’. 시인이 30년 가까이 거주해온 사당3동의 산책길에 대한 감상을 적은 글이었다. 집에서 국립현충원 서쪽의 서달산을 잇는 골목길은 시인의 단골 산책 코스. 지금은 과거의 정취가 많이 사라졌지만 시인은 걷기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걸으면서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고, 사색을 하게 됐다. 몇 년 전부터 걷기를 취미로 삼은 기자로서도 공감 100%. 몇 차례의 문자 교환 끝에 지난 7일 황동규(86) 시인을 만났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소설가 황순원의 장남이자, 한국 시단의 대표적인 거목. 66년의 시력(詩歷) 중에 18번째로 펴낸 시집 ‘봄비를 맞다’(문학과지성사)를 앞에 두고 노년의 삶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2년 뒤면 미수(米壽·88세)이십니다. 건강은 어떠신가요.
“작년부터 척추 협착이 심해져서 고생 중이죠. 병원에 갔더니 시술하기에도 늦었다고 하네요. 주사를 맞고 있어요. 제 허리는 네 군데가 휘어 있죠. 제가 걸을 때 속도도 늦고 많이 걷지 못하지만 이렇게 인터뷰하러 나올 정도는 되니까요. 지하철역에서 멀지만 않다면 어떤 술집이라도 갈 수 있어요. 하하.”
인터뷰 전에 문화일보 인근의 식당에서 돈가스로 함께 점심을 먹었다. 보통 성인 걸음으로 3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시인의 속도로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에 개의치 않고 기꺼이 인터뷰에 나설 만큼, 열정만은 청년의 그것에 못지않았다.
―‘사당3동 별곡’에 나왔던데 건강의 비결이 산책이었나 봅니다.
“걷기는 지금껏 건강을 지켜준 비결이랄까요. 산책은 재미나요. 보지 못했던 것을 새로 보게 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발견되죠. 철학자 장 자크 루소도 산책을 좋아했잖아요.”
―지인과의 모임에도 적극적이신 것 같아요.
“동네에 자주 가는 단골집이 세 군데 있어요. 만나는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죠. 여성들이 있을 땐 ‘경복궁’, 남자들끼리 있을 때는 ‘한울갈비’, 다른 하나는 해물집. 그리고 문학과지성사 지인들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한 잔씩 합니다. 김병익, 오생근 등이 참석해요. 김치수와도 참 가깝게 지냈는데… 생전에는 (한 달에) 두 번씩 만나고, 와인도 배웠고….”
문지(文知·문학과지성사)의 창립 멤버인 김치수는 한국 문학의 1세대 평론가이자 황 시인의 평생의 지기(知己)로 지난 2014년 별세했다. 이번 시집 중 ‘코로나 파편들’에는 김치수에 얽힌 일화가 나온다. “8년 전 세상을 뜬 친구 김치수, 꿈에 나타났다/나 그 글 읽었어/마음에 들지 않다는 거냐?/대답 대신 지공다스 한 병 내밀었다/마스크 없이”. 지공다스는 김치수가 유학한 프랑스 론 지방 특산 와인이다. 황 시인은 “가성비가 좋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황 시인은 1978년부터 시인선을 낸 문지의 1호 작가다. 문지는 지난 4월 시인선 600호를 돌파했다. 황 시인의 이번 시집은 604호. 코로나19 위기가 심화되던 2020년부터 지난 4년간 쓴 글을 모은 것이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 마주한 무시무시한 역병(疫病)에 대한 시인의 우려와 의지가 잘 반영돼 있다.
―시인의 말에서 “4년 전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를 상재할 때 앞으로는 좀 건성건성 살아도 되겠구나 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늙음이 코로나 글러브를 끼고 삶을 링 위에 눕혀버린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초창기에는 금방 끝날 줄 알았어요. 팔십 넘은 사람은 네 사람당 한 명꼴로 죽었죠. 그나마 남은 셋 중 둘 정도는 또 엄청난 고통을 겪었어요. 그래서 제 친구들도 모든 약속을 파기한 거죠. 저는 죽으면 죽는다고 생각했기에 제가 직접 파기하지는 않았어요. 하하.”
―그래서인지 코로나19의 절박한 위협 속에서도 시인의 삶에 대한 태도에선 위트가 느껴집니다.
“친척 중에는 아직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한 경우도 있어요. 죽는 것보다 고통도 크죠. 죽음에 대해서는 이미 시집 ‘풍장’ 때부터 고민해왔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적었던 게 코로나19를 견디고 시를 쓰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75세까지는 병이 없었는데요. 그다음부터는 눈도 귀도 망가져 가요. 그래서 삶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끊고 살죠. 그게 더 즐거워요.”
‘그날 저녁’에는 시인의 이 같은 삶의 자세가 매우 관조적(觀照的)으로 그려져 있다. “세상 뜰 때/아내에게 오래 같이 살아줘 고맙다 하고∼걸으리,/가다 서다 하는 내 걸음 참고 함께 간다/길이 이제 그만 바닥을 지울 때까지.” 시인은 “죽음에 대한 간접 체험, 슬픔도 기쁨도 없이 담담하게 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따라 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나는 이렇게 산다는 거죠. 결국 죽음에 지게 되겠지만 죽음에 지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겠다는 거죠”라고 강조했다.
―그럼 노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타인의 늙음은 모르겠고요. 몸이 좀 불편하더라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해야 하고요. 타인에 대한 사랑을 넓혀야 해요. 예를 들어 어제보다 오늘이 허리가 더 불편하지만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요. 같이 늙어가는 사람들에게도 편안함을 따지지 말고 할 수 있는 거라면 해라! 좋아하는 건 난관이 있어도 해라! 얘기하고 싶어요.”
표제작 ‘봄비를 맞다’의 “이것 봐라. 죽은 나무가 산 잎을 내미네,/풍성하진 않지만 정갈한 잎을∼그래 맞다. 이 세상에/다 써버린 목숨 같은 건 없다!”에서도 시인의 의지가 또 한 번 읽힌다.
―그런데 요즘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들은 파이어(Fire·조기은퇴)족을 꿈꾸는 것 같습니다.
“빨리 끝내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자신을 알아야죠. 독일도 불란서도 안 되는데 우리나라가 금방 그렇게 되겠어요? 일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야죠.”
황 시인의 나이를 무릅쓴 열정은 ‘사당3동 별곡’에서 다시 드러난다. 그는 이 산문에서 두 가지를 특별히 강조했다. 하나는 “우연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세상 사는 즐거움의 80∼90%를 잃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는 기쁨을 제대로 맛보려면, 혹시 영생을 믿는 사람일지라도, 1회밖에 주어지지 않는 진짜 꽃의 삶을 살아보기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
“우주의 운동은 타원 운동이고 원은 타원 중 특별하죠. 그처럼 필연은 우연의 특별한 형태. 우연을 필연이 아니라고 무시하면 즐거움이 없어요. 그리고 살면서 한 번뿐이라고 생각해야 진짜 기쁨이죠. 친구랑 술을 마시더라도 한 번뿐이라고 생각해야 즐겁지, 영원하다고 생각하면 뭐가 재미있어요. 이 두 가지는 늙음과 젊음에 상관없이 유효한 이야기라고 봐요. 유일하다고 할 때 확 다가오는 느낌이 있죠.”
―이쯤에서 한국문학의 딜레마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3년 연속 부커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 진출 등 요즘 전 세계적으로 K-문학이 뜬다고 하는데 또 한편으론 대형 작가의 부재라는 말도 나옵니다.
“세계적으로 문학 자체가 모더니즘과 초현실주의 쇠퇴 이후 어떤 조류가 없어요. 삶을 작품으로 형상화한 것뿐이죠. 제 시도 그렇고요. 그게 유일한 조류죠. 상당히 많은 젊은이가 자기만 느껴요. 재미난 생각, 느낌이 있지만 전체까지는 생각하지 못하죠. 황석영의 부커상 불발이 그의 잘못도, 부커의 잘못도, 세계의 잘못도 아니죠. 우리나라 문학 수준은 결코 떨어지지 않아요. 근 10년간 노벨상 후보 수상작이 별 볼 일 없어요. 미국 여류시인 책 읽어봤더니 별것 아니에요. 오죽하면 밥 딜런이 받았겠어요. 하지만 늘 높낮이의 순환이 있듯이 지금은 최상이 아닌 작품들이 (나중에) 떠오를 수 있죠.”
―경기 양평에 있는 황순원문학관이 요즘 인기입니다. 소나기를 연출한 물 폭탄 분수 때문에… 혹시 부친과 지역적 인연이 있나요.
“아버지가 좋아했던 보신탕집이 거기 있었고… 하하. 소설 ‘소나기’의 마지막에 양평이 등장하죠.”
―시인은 왜 아버지의 소설 대신 시를 선택하셨나요.
“음악가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음악과 제일 가까운 게 제겐 시였어요.”
황 시인은 원래 음악가를 꿈꿨다. 고1 때는 음대 진학을 결심하고 한동안 클래식에 빠져 있었다. 일주일에 나흘은 종로1가 르네상스에 가서 우동 한 그릇을 먹고 온종일 음악을 듣다 집에 돌아갔다. 가장 아끼는 LP판도 실은 ‘돈 조반니’다.
“나는 모차르트를 좋아했어요. 고1 때는 반년 동안 음대를 꿈꾸기도 했었죠. 중3 때 부산에서 서울에 올라오니 폐허였어요. 명동엔 똥이 쌓여 있을 정도로 엉망이었죠. 눈의 즐거움은 없으니 청각적 즐거움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휘파람을 잘 못 불어요. 약간의 음치인 거죠. 하지만 성악가만 아니면 귀가 정확하면 되거든요. 그러나 그때는 그걸 몰랐죠. 어떻게 보면 음악가가 안 된 게 좋을지 몰라요. 현대음악은 12음 기법인데 제가 좋아한 건 바그너와 브람스예요. 그 사람들은 12음에 맞지 않거든요. 음대 갔어도 다시 문리대로 돌아왔을 거예요. 하하.”
―얼마 전 신경림 시인이 타계했습니다만….
“신 시인과는 문학적 교류만 있었죠. 민요를 수집해서 그런지 리듬이 참 좋았어요. 공주 지방 강연 뒤풀이에서 지인이 ‘선생님은 문지 사람입니다. 창비 사람 중에서는 누가 제일 좋겠습니까’ 해서 신경림이라고 했어요. 신경림은 제대로 술을 마셔본 적도 없지만 문학적으로 잘 통했다고 생각해요.”
시인은 2시간 가까운 인터뷰 동안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는 게 불편했을 법한데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비록 걸음걸이는 느려졌고, 귀는 어두워졌지만 매 질문에 웃으며 화답했다. 며칠 후 기자도 시인이 즐겨 찾는다는 사당3동 산책길을 찾았다. 한번 걸어 보면 시인의 마음속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듯했다. 시인이 고3 때 써서 미당의 추천을 받은 절창인 첫사랑의 시 ‘즐거운 편지’가 스쳤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황동규 시인 프로필
- 1938년 평안남도 숙천 출생이나 마음의 고향은 서울. 86세. 황순원의 장남
- 서울고, 서울대 영문과, 동대학원 졸업. 영국 에든버러대 유학
- 195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작품 활동 시작
- 1968년 서울대 영문과 교수 부임 후 30여 년간 재직
- 주요 작품: ‘즐거운 편지’ ‘풍장’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사는 기쁨’ ‘오늘 하루만이라도’ ‘봄비를 맞다’ 등
- 수상경력: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미당문학상, 은관문화훈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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