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에게 투영된 ‘대리 나르시시즘’… 맹목적 숭배 부르다[북리뷰]
이졸데 카림 지음
신동화 옮김│민음사
정치인 등 추종하는 ‘팬덤세계’
사회에서 요구하는 이상적 인물
닮고 싶은 자아로 만들며 벌어져
나르시시즘 반영 인물에게 복종
법·윤리 등은 바라지 않으면서
분열·갈등 끊임없이 생산하기도
‘우쭈쭈 민주주의’는 현대 정치의 특징적 현상이다. 자신이 추종하는 정치가를 무조건 추종하고 숭배하면서 그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사회를 내전 상태로 내몰지라도 지지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처럼 범죄를 저질렀을 때조차 열광적 지지를 보내기도 한다.
정치에서만 이런 일이 있는 게 아니다. 김호중 사태가 보여주듯, 아이돌 같은 대중문화 스타를 좇는 팬들에게도 비슷한 증세가 나타난다. 묻지 않고, 따지지 않고, 무작정 충성하고, 자발적으로 지지하는 일 말이다. 사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겨난다. 열심히 일하거나 자기 향상에 애쓰는 건 좋은 삶을 위해서인데, 생기를 모두 빼앗겨 쓰러질 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바람에 소진 증후군에 빠지곤 한다.
‘나르시시즘의 고통’에서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졸데 카림은 정보가 넘쳐나고 지식이 흔해진 계몽의 시대에 벌어지는 이 역설적 퇴행 현상에 관해 비판적 질문을 던진다. ‘대다수 시민이 왜 한 사람의 폭군에게 복종하는가? 정치나 연예에서 숭배적 팬덤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자신을 착취하면서 성공을 갈망하는 일이 어째서 가능한가?’ 한마디로 사람들이 그들의 권력이나 권위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목표는 언제나 사람들 행동을 바꾸는 일이다. 폭력(규제·법)에 의존해서 강제하든, 그럴듯한 이유를 앞세워 설득하든, 정치는 결국 타인의 협조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협조를 끌어내는 가장 나은 방법은 자발적 참여다. 정치가든, 아이돌이든, 자기 계발 구루든, 사람들이 권위를 우상화하고, 그들의 부름을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로 받아들여 스스로 행동하게 만드는 일이다. 스피노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마치 자기 구원을 위한 것인 양 자기 예속을 위해 투쟁한다.” 일단 자발적 복종이 실현되면, 사람들은 권위에 대해 강력한 애착을 느끼면서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자발적 복종 양식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꾸준히 달라진다. 중세 유럽에선 신의 부름에 응답하는 신앙이 대표적 복종 양식이었다. 국가나 민족, 자유나 평등 같은 관념, 제도나 의례 등의 부름에 응답하는 모든 이데올로기 형식이 자발적 복종 양식이 될 수 있다. 카림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 시대를 지배하는 복종 양식은 나르시시즘, 특히 자아 이상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자아 이상이란 개인의 가장 내밀한 곳에 자리 잡은 사회적 이상을 말한다. 사람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자아상을 받아들여 자신의 이상적 자아로 삼는다. 과거의 나르시시즘은 주관적이었다. 스스로 연출한 자아를 이상화하고, 그 실현을 방해하는 사회적 규율을 위반할 때 죄책감과 함께 쾌락을 얻었다. 그러나 요즘 나르시시즘은 객관적이다. 사람들은 외부에서 받아들인 이상적 자아에 집착하고, 거기에 도달하려 부단히 애쓰며,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때 열등감에 빠진다. 현대 사회의 무한경쟁 시스템이 그 원인이다.
나르시시즘의 핵심엔 교환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자아의 존재가 있다.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현재의 부족한 나를 넘어 이상적 자아에 도달할 때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다. 자기 혁신을 통한 자아실현과 경쟁 탈출이라는 신화에 포획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은 본래 달성할 수 없다. 나르시시즘의 목소리에 따라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갖은 힘을 다하지만, 이상적 자아는 절대 실현되지 않는다. 이상이란 항상 ‘한 걸음 더’를 요구하는 까닭이다.
모든 것에 평점과 순위를 매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더더욱 그렇다. 숫자와 순위를 통해 자아 상태를 측정하는 소셜미디어, 인공지능을 통한 자아 추적 및 측정 기술은 이를 극단적으로 강화한다. 삶이란 내가 사는 것이고, 좋고 나쁨도 내가 느끼는 것이다. 이를 숫자로 객관화해 줄 세우는 순간, 외부의 이상이 삶의 목표로 제시되면서 경쟁과 각축이 생겨난다. 그러나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거나 ‘1등’이 되면,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나르시시즘의 약속은 허황할 뿐이다. 모든 숫자엔 항상 더 큰 숫자가 존재하니까 말이다.
이로부터 이상적 자아에 대한 끝없는 접근과 반복적 실패, 즉 자기 계발의 일상화, 자기 착취의 범람, 자아 소진이란 비극이 생겨난다. 나르시시즘 실현을 통해 경쟁에서 벗어나려는 우리 노력이 능력주의를 강화하고, 상호 비교와 평가로 이루어진 영구적 경쟁 과정에서 우리를 자발적으로 얽어맨다. 나르시시즘의 고통이 자아를 지배하고 사회를 작동하는 연료가 되는 것이다.
정치인이든, 아이돌이든, 스타는 우리의 좌절된 나르시시즘을 대리 보충한다. 사람들은 스타에게서 나르시시즘의 완벽한 현현을 본다. 그러나 전통 지도자와 달리, 스타는 팬들에게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다. 공동체 전체가 함께 따라야 할 법도, 명령도 제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르시시즘이 지배하는 팬덤 사회에선 분열이 끝없이 가속한다.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규칙이나 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공동체 연대를 고민하기보다 나르시시즘의 퇴행에 빠져서 경쟁에 지친 자아를 내려놓고 그저 황홀해 할 뿐이다. 나르시시즘을 통한 자발적 복종, 즉 반사회적 행태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296쪽, 1만8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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