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훈련으로 사람 죽여놓고 '애국 열사'라고? 독재의 치부 드러나다 [스프]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2024. 6. 1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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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의 N코리아 정식] 북한 공수부대 훈련 참사와 그 이후

 
지난 3월 15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북한군 '항공육전병'들의 훈련을 참관했습니다. 우리로 치면 공수부대가 낙하해 적진에 침투하는 훈련을 참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훈련 도중 북한군 10여 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훈련 도중 대참사가 발생한 것입니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이 훈련 도중 사망하거나 부상한 군인들에게 국가수훈을 내리고 가족들도 배려해 주라는 김정은의 특별 지시가 지난달 22일 내려왔다고 보도했습니다. 사고를 당한 부소대장, 분대장, 부분대장, 대원 등 전사자들에게는 김정일청년영예상을 수여하고, 노동당에 입당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입당을 시켜주며, 유가족들에게 애국열사증을 수여하고 그들의 고향에서 성대한 수여 행사를 진행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데일리NK는 또, 열사 가족의 모범을 따라 배우도록 하는 사상선전 사업도 진행하라는 지시가 하달됐다고 전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길래

3월 15일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되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정은이 항공육전병들의 훈련을 참관했던 이날 상공에는 매우 센 바람이 불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매체들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북한 공수부대원들이 수송기에서 낙하하자마자 센 바람 때문에 낙하산이 거의 수평으로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센 바람에다 기류가 불안정했을 테니 낙하산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던 것 같은데,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자세히 보면 낙하산들이 엉켜서 군인들이 분리되지 못한 채 떨어지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낙하산들이 제대로 펴지지 못한 채 지상으로 떨어지다 보니 사망하거나 부상한 사람들이 속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북한군 지휘부는 이렇게 좋지 않은 날씨에도 왜 무리하게 훈련을 강행했을까요?

3월 15일 김정은은 두 가지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하나는 앞서 설명한 공수부대 훈련 참관이었고, 다른 하나는 평양 외곽에 건설된 강동종합온실 준공식에 참석한 것이었습니다. 북한 매체들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15일 오전에 공수부대 훈련을 참관하고 오후부터 밤까지 강동종합온실을 둘러본 것으로 보입니다.

이날 행사에는 김정은의 딸 김주애도 동행했습니다. 김주애는 알다시피 김정은의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날 행사 보도에서는 김주애의 후계자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먼저, 공수부대 훈련에서 북한 매체들은 김주애가 망원경으로 훈련을 참관하는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북한군 장성들 한가운데에서 망원경으로 훈련을 참관하는 것은 김정은과 같은 최고지도자가 행해왔던 일입니다. 김주애가 김정은 바로 옆에서 망원경으로 훈련을 참관하고 이 모습을 북한 매체들이 공개했다는 것은 김주애의 후계자 이미지를 한 단계 높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습니다.
 

 
또, 북한 매체들은 강동종합온실 준공식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김주애에게 중요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김정은 부녀를 '향도의 위대한 분들'이라고 지칭하면서 김주애에게까지 '향도'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향도'란 '길을 인도한다'는 뜻으로, 다시 말해 북한을 이끌어간다는 의미입니다. 통일부는 "향도라는 표현은 최고지도자나 조선노동당에만 썼던 표현"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향도'를 김주애에게까지 썼다는 것은 이날의 행사 보도를 통해 김주애의 후계자 위상을 한 단계 높이는 선전선동을 북한이 기획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정은과 함께 강동종합온실을 참관하는 김주애

 
북한은 이외에도 이날의 행사에 중요한 의미를 두는 이벤트를 추가했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선물 받은 최고급 리무진 '아우루스'를 김정은이 처음 이용한 것입니다. 북한은 김여정 담화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공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날 김정은이 이용한 '아우루스'의 번호판은 '7 27 1953'으로 북한의 이른바 '전승절'을 의미하는 숫자였습니다. 북한은 6.25 전쟁의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을 미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의미로 '전승절'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푸틴에게 선물받은 승용차 번호판에 반미의 상징적인 숫자를 사용한 것입니다. 러시아와의 연대를 부각하며 미국과 맞서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일 텐데, 이러한 의미를 담은 승용차를 김정은이 처음 이용했다는 점에서 3월 15일의 행사는 북한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인명 피해 발생하자 북한도 당황

3월 15일의 행사들이 이렇게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만큼, 아무리 날씨가 좋지 않았다고 해도 북한군 지휘부가 훈련을 취소하자는 얘기를 감히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 보면 김정은과 김주애의 정치적 이벤트를 위해 애꿎은 목숨들만 허무하게 사라진 것입니다.

하지만, 훈련 도중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북한도 당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명 피해도 피해지만, 이러한 사실이 소문으로 퍼져갈 경우 김정은의 지도력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은 훈련 참사가 발생한 뒤 이어진 군부대 현지 지도에서 침실과 식당 등 장병들의 생활 여건을 살펴보며 군심을 달래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3월 24일 제105탱크사단 직속 제1탱크장갑보병연대 시찰 당시 군인들에게는 고봉밥과 고기, 과일 등의 특식이 제공됐는데, 김정은은 군인들의 식사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기와 채소 등의 부식물을 제때 보장하라"고 지시했습니다. 4월 10일 김정일군정대학 현지 지도 때에는 아예 직접 마련해 간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차려주었는데, 식당 테이블 위에 불판과 고기, 과일 등이 놓여있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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