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 알뜰 소비 확산에 꽃·수산물까지 ‘못난이’ 열풍
평소 길가에 핀 꽃을 보면 바로 스마트폰에서 품종을 검색해볼 정도로 꽃을 좋아하는 장모 씨는 최근 자신의 생일을 맞아 크라우드펀딩 온라인 쇼핑몰에서 '못난이 꽃'을 샀다. 못난이 꽃은 흠집이 있거나 색이 균일하지 않은 탓에 경매에서 유찰돼 버려지는 꽃을 말한다. 꽃 10송이가 든 일반 꽃다발 하나를 사려면 4만 원은 줘야 하지만, 최근 시중에 풀리기 시작한 못난이 꽃은 15송이에 1만 원꼴로 저렴하다. 장 씨는 못난이 꽃을 주문한 후 너무 시들시들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포장지를 열어보고 아주 만족스러웠다. 줄기와 꽃이 깨끗했고, 유심히 뜯어보지 않으면 흠집이 있는 줄도 모를 정도였기 때문이다. 평소 식물을 좋아하는 장 씨조차 처음 보는 꽃이 있을 만큼 품종 또한 다양했다.
못난이 꽃, 품질 좋고 품종 다양
이런 수요에 발맞춰 '임팩트 커머스' 카카오메이커스는 지난해 10월부터 '제가버치' 프로그램을 통해 못난이 꽃을 판매하고 있다. 꽃 경매가 열리는 날 오전 영남화훼농협에서 경매 유찰된 꽃을 선별해 온라인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다. 카카오메이커스의 못난이 꽃 판매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17차례 진행돼 28만 송이가 전량 팔렸다. 카카오메이커스에서 못난이 꽃을 산 소비자들은 일반 꽃과 품질에 큰 차이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못난이 꽃 소비자인 40대 오모 씨는 "택배 배송 중 살짝 시든 겉 꽃잎만 제거하면 못난이 꽃인 줄 모르겠다"고 말했다.
불경기에 못난이 농산물 수요도 크게 늘고 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1~5월 못난이 제품인 '상생 농산물'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50% 증가했다. 홈플러스의 '맛난이' 대표 품목인 사과 매출도 4월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30% 늘었다.
6월 5일 오전 기자가 찾은 서울 중구 롯데마트에서도 못난이 사과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반 사과 매대는 상품이 꽉 차 있었지만, 못난이 사과는 평일임에도 벌써 바닥을 드러냈다. 이날 일반 사과 가격은 4~6개 1만3500원, 같은 개수의 못난이 사과는 1만1000원이었다. 일견 가격 차이가 적은 듯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티끌 모아 태산 격으로 조금씩 소비를 줄여 가계에 보태야 한다"는 반응이었다. 40대 워킹맘 정모 씨는 "물건 하나만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품목마다 조금씩 아끼면 계산할 때 결과적으로 1만 원 정도 장바구니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품질에 큰 차이가 없는 한 못난이 농산물로 알뜰하게 사려 한다"고 말했다.
‘못난이 상품'이 A급보다 인기
이런 점 때문에 못난이 수산물 판매는 파품이라도 위생에 문제가 없는 품목 위주로 이뤄진다. 가령 꽃게는 다리가 없어도 게장 등으로 활용할 수 있고, 명란은 난막이 터져도 젓갈로 담그는 데 지장이 없어 온라인 쇼핑몰에서 인기다. 홍모 씨(29)는 최근 다리가 약간 잘리거나 손상된 게로 만든 '몽당 게장'을 구매했다. 가격은 일반 게장 대비 20~30% 저렴하다. "게장 다리는 살이 적어 원래도 잘 먹지 않는다. 다리 없는 몽당 게장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서 맛있게 먹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홍 씨가 구매한 '몽당 게장' 구매 후기는 2600건에 달하지만, 같은 사이트에서 팔리는 손질된 A급 게장은 리뷰가 50개 정도에 불과했다. 명란젓으로 유명한 또 다른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못난이 상품 리뷰가 A급에 비해 7배 이상 많았다.전문가들은 최근 고물가로 소비자의 구매 선택 동기가 다양해졌다고 설명한다. 황진주 가톨릭대 공간디자인·소비자학과 겸임교수는 "이제 소비자의 구매 선택 기준에서 품질이 1순위라고 보긴 어려우며, 품질보다 가격 대비 혜택, 심미적 가치 등이 중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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