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성폭력 생존자의 20년

손고운 기자 2024. 6. 14.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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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죽고 싶을 때도 있고, 우울증이 심하게 와 미친 사람처럼 울 때도 있고, 멍하니 누워만 있을 때도 자주 있지만 이겨내보도록 노력하겠다. 얼굴도 안 봤지만 힘내라는 댓글과 응원에 조금은 힘이 나는 거 같다."

'밀양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2024년 6월13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활동가 대독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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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큐레이터]

2024년 6월13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밀양 성폭력 사건 관련 기자간담회. 손고운 기자

“가끔 죽고 싶을 때도 있고, 우울증이 심하게 와 미친 사람처럼 울 때도 있고, 멍하니 누워만 있을 때도 자주 있지만 이겨내보도록 노력하겠다. 얼굴도 안 봤지만 힘내라는 댓글과 응원에 조금은 힘이 나는 거 같다.”

‘밀양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2024년 6월13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활동가 대독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유튜브 채널 <나락보관소>가 밀양 성폭력 사건 가해자 신상공개 영상을 올리고, 유튜버 ‘판슥’이 피해자의 음성을 변조하지 않은 채 인터넷에 게재하면서 사건이 재조명되자 밝힌 입장이다. 피해자는 “이 사건이 잠깐 타올랐다가 금방 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찰·검찰에 2차 가해를 겪는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길 바란다”면서도 “앞으로 유튜버의 피해자 동의 없는 이름 노출,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동은 삼가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피해자와 가족들 모두 동의한 바 없다고 직접 유튜버(나락보관소)에게 삭제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튜버 판슥은 삭제해달라는 피해자 쪽의 지속적인 요청에도) 즉시 수정하거나 삭제하지 않고 15시간 이후 변경했으며 피해자 이름을 묵음 처리하면서도 입 모양을 살려 부르며 인터넷 방송을 이어갔다”고 비판했다.

2004년부터 피해자를 지원해온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에 따르면, 피해자는 20년이 흐른 현재 주거환경도, 사회적 네트워크도, 심리적·육체적 건강도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 이사는 “정식 취업이 어려워 아르바이트와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며 “때로 넘어질 수 있지만 털고 일어설 수 있는 정신적 힘과 물리적 기반을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 일상회복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를 후원하고 싶다는 요청이 이어지자 이날 ‘한국성폭력상담소 누리집’에 기부금 모금 페이지 (https://box.donus.org/box/ksvrc/donate-milyang)를 열었다. 모금액은 실시간으로 규모가 공개되며, 100% 피해자 생계비로 활용된다.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해 기부자들이 투명하게 모금액 관련 자료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2024년 6월13일 밀양 성폭력 기자간담회에는 피해자를 돕는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했다. 손고운 기자

문제는 2004년 언론과 경찰이 피해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왜곡된 형태로 사건을 확산했던 상황이, 2024년 유튜버로 문제의 주체가 바뀌었을 뿐 그대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사건 발생 당시 피해자는 15살에 불과했는데, 경찰은 수사를 시작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피해자의 이름·나이·거주지까지 적힌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언론은 내용을 왜곡해 보도했다. 당시 피해자를 도왔던 김옥수 전 울산생명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은 “상담자가 보호자를 대신해 각 언론사에 항의했으나 정정보도를 올리고 사과한 곳은 시비에스(CBS) 한 곳뿐이었다”고 말했다.

김혜정 소장은 “미디어나 유튜브에 ‘밀양 성폭행’이란 단어가 올라오면 일단 피해자 심장은 떨리기 시작한다.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콘텐츠가 생산돼서 올라가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인데, 이것이 피해자 처지를 이해하고 위로하기 위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하루하루 긴장하면서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20년이 지나도 밀양 성폭행 사건이 계속 재조명되는 이유에 대해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는 “가해자들의 진심 어린 반성, 자신이 저질렀던 일에 대한 인정이 있었는가라는 질문”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피해자 지원”이라며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할 수 없는 사회적 여건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뉴스 큐레이터는 <한겨레21> 기자들이 이주의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뉴스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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