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나이 들어 하는 공부의 즐거움
이른 아침,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대학 캠퍼스로 출근하는 것은 교수 생활을 해 온 나의 고유한 즐거움이다. 아침 등굣길, 젊은 학생들 사이로 배낭을 메고 활기차게 걸어가는 나이 지긋한 분들의 모습이 눈에 띄면, '정년을 앞둔 교수님들이 아침 일찍부터 수업 준비를 하시려고 일찍 출근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저절로 흐뭇해진다. 그런데 며칠 후 교내 행사에 참여하니 학생 대표석에 (교수라고 착각했던)그분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이후 사석에서 그 분에게 만학의 이유를 물으니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자신의 딸을 조금 더 정성스럽게 보살펴주기 위해 대학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껴 입학하게 되었고, 지금은 공부가 재밌고 행복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과 교수들이 수업시간, 시험 등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어린 학생들에게 모범이 된다는 말을 전해 들으며 새삼 마음이 따뜻해졌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목표를 위해 공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은퇴 후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 또 다른 모델이 필자 주변에 있다. 연구소에서 평생 연구직으로 종사하며 나름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아온 분이 은퇴즈음, 평소 소망이었던 아일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원문소설을 읽고 소화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고, 60대에 영문학과에 편입하여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대학 생활 동안 젊은 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었고 졸업 후 대학원까지 진학하였다.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면서 직접 아일랜드에 가보고, 소설의 배경이었던 더블린을 방문하여 작가의 하숙집, 애용하던 카페, 서점에 가서 작가와 시간을 초월한 공감대를 느끼는 경험을 통해 생애 최고의 성취감과 행복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본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재취업, 고령자 창업, 재교육 등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퇴직자 스스로 은퇴 이후를 새롭게 개척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추세다. 우리나라 역시 기대수명은 점점 증가하는 반면, 퇴직연령은 평균 50세 머물러있어 은퇴 후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일상에 치여 못했던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런 사회변화를 고려하면 (지역)대학이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위해 해야 하는 역할은 분명하다. 은퇴 후 공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구체화시키고 지원하는 역할을 지역 교육기관(대학)이 수행해 나가야한다.
우선은, 본인이 꿈꾸고 진짜로 해보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려는 도전이 필요하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공부를 시작해 보려는 도전과 '할 수 있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미 젊은 학생들이 있는 밝고 활기찬 캠퍼스에 발을 디뎌 성공적인 대학 생활을 하고 본보기가 되고 있는 분들처럼 본인의 목표를 향해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늦은 나이에 공부하려는 분들이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지역대학, 고등교육기관, 지자체 등에서 좀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평생교육 체계 내에서 조금 더 나아가 마이크로디그리(Micro Degree) 형태의 성인학습자 교육을 통한 소단위 이수 등 수요자의 요구에 맞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퇴직자들의 전문적인 경험과 노하우를 학생, 지역주민들에게 환원하고 봉사할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서로가 함께 공부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필자도 젊지 않은 나이에 변화를 위해 용기를 내고 실천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100세 시대, 인생 절반 이상을 살아온 시점에서 조용히 내 마음의 소리를 한 번 들어봐도 좋을 것이다. 떠밀려 주변의 잣대와 의무로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을 마무리하고 진짜 하고 싶었던 나만의 공부를 찾아서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이 들어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만끽하다 보면 생이 주는 또 다른 행복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새로운 꿈을 찾아 캠퍼스를 누비는 만학도를 만나면 가장 따뜻하고 반가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싶다.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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