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고 싶지 않은 기자의 투병기 [사람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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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현직 기자다.
베이징 특파원으로도 5년간 일했다.
기자 일을 시작한 이후에는 그야말로 '워커홀릭'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기자 일이라는 게 '편하려면 아주 편하고, 힘들려면 아주 힘든데' 그는 후자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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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현직 기자다. 베이징 특파원으로도 5년간 일했다. 먹는 것을 좋아해 특파원을 하면서 중국 음식 문화에 대한 책을 펴냈다. 특파원을 마치고 지난해 고향인 전북 전주로 돌아와 연합뉴스 새만금 잼버리 취재팀장을 맡았다. 잼버리 사태를 취재하던 중 극심한 허리통증이 찾아왔다. 동네 병원 의사는 악성종양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림프종 3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마흔을 갓 넘긴 나이, 연합뉴스 전북본부 김진방 기자(41)에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암 진단을 받은 뒤 매일 아침 일기를 썼다. 일기를 쓰면서 자기 안에 숨어 있던 ‘우울’을 발견했다. 회사에서는 중견 기자로, 지역에서는 마당발로, 가정에서는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로, 그동안 ‘슈퍼맨 콤플렉스’에 빠져 살았음을 깨닫게 됐다. 투병이 시작되고서야 그는 비로소 자신을 옥죄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의 일기는 가족과 주변을 향해 쓴 ‘독립선언문’이었다. 가족과 지인이 보면 자칫 상처받을 수 있는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썼다. 이 기록이 모여서 〈죽음이 다가와도 괜찮아〉라는 책이 되었다.
일기는 늘 ‘어젯밤에는 잠을 몇 시간 잤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잠이 부족한 삶이었다. IMF 외환위기로 아버지가 실직한 후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가정을 돌봐야 했다. 대학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벌었고, 상근예비역으로 군복무를 하는 와중에도 날마다 퇴근 후 새벽 1시까지 학원 강의와 과외를 했다.
기자 일을 시작한 이후에는 그야말로 ‘워커홀릭’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기자 일이라는 게 ‘편하려면 아주 편하고, 힘들려면 아주 힘든데’ 그는 후자를 택했다. 베이징 특파원 때도 그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방중하면 24시간 잠 한숨 못 자고 동행취재를 했고, 미·중 무역전쟁 때는 낮에 중국을 취재하고 밤에 (낮이 된) 미국을 취재했다. 코로나19 때는 숙소에 격리돼 43일 동안 집 안에 갇혀 있었다. 그 와중에도 중국 관련 책을 네 권이나 썼다.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암 진단 이전 통풍과 삼차신경통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몸이 보내는 경고였다.
지난 3월 말, 그는 6차 항암 치료를 마쳤다. 지금은 암의 경과를 추적관찰 중이다. 얼굴에 부기가 가라앉고, 빠졌던 머리카락도 다시 나기 시작했다. 언뜻 보면 환자 같지 않다. 건강에 좋을 리 없는 기자 일을 관둘까 했지만, 몇 개월 뒤 복직하기로 했다. 치료비와 생활비 때문이다. 책에서 ‘더 이상 슈퍼맨의 삶을 살지 않겠다’고 공언한 그에게 어떤 인생이 펼쳐질까. 5월26일 열린 북토크 자리에는 ‘암 환자 김진방’의 새로운 인생을 응원하는 이들이 여럿 참석했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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