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테크 뜬다]③ 도축 없이 고기 먹는 시대…배양육 강점은 '안전성'
[편집자주] 삶의 질이 향상되고 소비자의 지식수준은 높아졌습니다. 여기에 인간 수명까지 늘어나면서 건강을 개선하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개인 맞춤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자원 낭비는 줄이고 식품 폐기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먹거리 산업도 주목됩니다. 식품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조리 및 외식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도 각광받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이 모든 것을 현실화하는 ‘푸드테크’를 유형별로 살펴보고 푸드테크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한국이 푸드테크 선진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혜안을 모색해 봅니다.
살아있는 동물을 도살하지 않아도 육류를 섭취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육류 섭취를 중단하기란 현실성이 없다. 앞으로는 실험실에서 생산한 ‘배양육’으로 동물 복지 및 식량 안보 등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실험실에서 세포를 키워 동식물 식재료를 만들 수 있는 푸드테크 기술이 등장했다. 세포배양식품은 식물, 동물, 미생물 등의 세포를 배양해 만든 식품이다. 주로 동물 세포를 배양하는 ‘배양육’이 주를 이루고 있다. 동물성 식품은 가축 도살, 축산업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등의 문제와 직결된 만큼 세포배양식품으로 상용화가 가장 절실하다.
배양육 산업 성장의 당위성이 거론되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월 세포배양식품 원료를 한시적으로 인정하는 ‘식품등의 한시적 기준 및 규격 인정 기준’ 개정안을 고시했다. 세포배양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자체 기술로 생산한 원료를 식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 국내에선 세포 지탱하는 ‘지지체’ 연구 활발
국내에서는 배양육 연구 중 특히 지지체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홍진기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지난 2월 국제학술지 ‘매터’에 쌀과 소의 세포를 합친 ‘소고기 쌀’을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동물세포를 쌀알에 통합해 새로운 맛과 풍미를 내는 배양육을 만들었다.
연구팀은 소의 근아세포와 지방유래 중간엽 줄기세포를 쌀알에 심었는데 쌀 알갱이의 조직화된 구조가 동물 유래 세포를 수용할 수 있는 지지체 역할을 했다. ‘스캐폴드’라고 불리는 지지체는 세포가 부착돼 증식·분화할 수 있는 공간이다.
소고기 쌀은 기존 쌀보다 단백질 함량 8%, 지방 함량은 7% 증가해 탄수화물 대비 다른 영양 성분이 부족했던 쌀에 영양가를 더했다. 이 연구를 통해 쌀은 배양 세포를 키우기 적절한 지지체라는 점이 확인됐다.
홍 교수는 “식품 가치와 가격 경쟁력 등을 위해 연구자들은 배양육 스캐폴드 연구를 하고 있다”며 “우리 연구팀은 식품으로 섭취할 수 있는 곡식 알갱이를 세포 배양 지지체로 활용해 곡식 알갱이 중 하나인 쌀이 세포를 키우기에 적절한 지지체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국내 연구팀이 발표한 또 다른 배양육 연구 역시 지지체 개발로 주목을 받았다. 도정태 건국대 줄기세포재생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샐러리에 닭 근육세포를 배양한 결과를 4월 2일 미국화학회저널 ‘ACS 바이오소재 사이언스 & 엔지니어링’에 발표했다.
도 교수는 ”일반적으로 세포 부착을 위해서 세포외기질과 유사한 하이드로젤을 세포와 섞은 후 3D 프린팅을 이용해 입체적인 형태의 배양육을 형성한다“며 ”하지만 이 방법은 근육세포 배양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세포를 대량으로 배양하려면 많은 양의 하이드로젤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고가인 하이드로젤 지지체는 가격 면에서 비효율적“이라며 ”지지체를 이용한 3D 배양 기법으로 배양육을 생산하는 가장 저비용의 적합한 방법은 식물성 지지체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배양육 최고 장점은 ‘안전성’...식감은 부분 성공
배양육의 풍미와 식감은 가공육 기준으로 실제와 상당히 근접한 상태에 이르렀다. 홍 교수는 “소고기 스테이크 기준으로는 식감과 풍미가 많이 부족해 보이지만 다짐육이나 너비아니 같은 가공육은 상당히 유사하게 개발할 수 있다”며 “스테이크처럼 있는 그대로의 고기를 구현하려면 기술이 더 진일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험실 배양이다보니 막연하게 거부감을 갖거나 안전성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축전염병 위험이 없고 위생적이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안전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홍 교수는 “실험실 배양에 불안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안전성은 배양육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며 “안전성에 대해 제어가 가능하기 때문인데 세포, 지지체, 배양육에 대해 적절한 규제가 나오면 더욱 안전한 가이드 내에서 건강에 좋은 식량을 지속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성을 제어할 수 있다는 의미는 배양육 생산 환경과 과정에 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의미다. 홍 교수는 ”예를 들어 우리는 소고기를 먹을 때 원산지는 알지만 그 소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랐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고 말했다.
또 ”엄청난 항생제를 맞으면서 지저분한 환경에서 자랐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런 환경이 인간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며 "알츠하이머, 암 등 이유를 아직 알지 못하는 질병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실험실 배양을 불안해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실험실은 생산 환경과 배양 과정 등이 보다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것이다.
도 교수 역시 ”사실상 안전성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무균실에서 세포를 배양하기 때문에 일반고기보다 훨씬 깨끗한 상태“라고 말했다. 단 세포 배양을 위한 배양액이 섭취용으로 허가가 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배양육용 배양액 개발이 시급하다고 보았다.
● 비용 부담, 법적 규제는 상용화 진입장벽
배양육을 만드는 덴 아직 비용이 많이 든다. 실험실 단계를 넘어 상품화하려면 저비용 배양육용 배양액, 고비용 소태아혈청 대체 첨가물, 저비용 지지체 등에 대한 개발이 필요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대량 생산을 통한 단가 조정이 필요하다. 배양육 스타트업인 스페이스에프 관계자는 ”배양육 생산을 위한 원천기술 고도화는 충분히 이뤄졌다고 생각한다“며 ”단가를 현실화해 본격적으로 상용화를 하려면 생산시설 대규모화, 대량배양 공정의 자동화 등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용화를 위해서는 안전 확보를 위한 항생제 대체재, 무한 증식 가능한 세포를 이용한 배양육 생산 기술 등도 필요하다. 배양육 생산에 많이 활용되는 성체줄기세포인 근육줄기세포는 도축, 생검 등으로 인한 동물 희생이 뒤따르고 증식 과정에서 노화가 일어난다는 문제가 있다. 노화를 억제해 세포 수명을 늘린 불멸화세포주는 동물 희생은 없지만 유전적 안정성이 낮다. 배아줄기세포주는 동물 희생이 따르지 않고 유전적 안정성이 높아 이를 이용한 배양육 연구개발이 진행 중이다.
법적 규제의 단계적 완화도 필요하다. 도 교수는 ”배양육은 기술력 면에서는 국내와 해외가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법적 규제와 상용화 문턱 때문에 상품화에 있어 많이 뒤처지고 있다“며 ”싱가포르에서는 배양육 음식이 판매되고 있고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배양육 공장을 짓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일반식품처럼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았을 땐 판매·소비를 할 수 있도록 점차 규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란 설명이다. 홍 교수는 ”식품 종류에 맞춰서 정책과 규제를 준비하면 좋을 것“이라며 ”동물성 배양육 원료로 조미료를 만드는 건 스테이크를 만드는 것에 비해 여러모로 수월하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부터 차례대로 규제를 풀면 전체적인 배양육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양육을 식품으로 처음 승인한 건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2020년 미국 배양육 기업 ‘잇저스트’의 배양육 닭고기 생산 및 판매를 허락했다. 싱가포르식품청은 배양육 닭고기의 제조 공정 등을 엄격하게 평가해 영양 및 안전성 등에서 식용 가능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지난해 9월에는 미국도 배양육 판매를 승인했다. 이로 인해 국내 배양육 스타트업들은 싱가포르와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스페이스에프, 셀미트, 씨위드 등 배양육 스타트업뿐 아니라 CJ제일제당, 풀무원 등 대기업들도 배양육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한 배양육 기업 관계자는 ”배양육은 유망한 미래 산업으로 이제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 얼마든 미래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며 ”세포 배양부터 배양육 가공까지 고도화된 기술력을 확보하고 상용화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규제 완화 및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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