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역사 바꿀 '19세 클로저' 김택연의 등장, '2022년 9위 악몽? 두산엔 축복이 됐다'
김택연(19)은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홈경기에서 팀이 9-6으로 쫓긴 9회초 2사 1루에 등판, 삼진을 잡아내며 세이브를 올렸다.
시즌 3번째 세이브지만 이날은 특별했다. 정철원(25), 홍건희(32) 두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당당히 두산의 공식 클로저로 거듭난 날이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초반 두산의 마무리는 정철원이었다. 홍건희가 부상으로 뒤늦게 합류한 탓도 있지만 지난해 시즌 중후반 흔들리며 마무리 자리를 정철원에게 내줬던 터였다.
그러나 정철원은 6세이브를 기록하고도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블론세이브는 하나에 불과했지만 안정감이 크게 떨어졌다. 개막전 패배를 제외하면 패전은 없었으나 평균자책점(ERA) 5.91을 기록한 채 2군에서 5월을 보냈다.
결국 홍건희가 역할을 넘겨받았다. 안정적인 활약으로 5월에만 8세이브를 수확했지만 이달 들어 다소 흔들렸다. 5경기에서 1승 1패 ERA 4.50으로 흔들렸고 마무리를 맡아 블론세이브 4회를 기록했다. 이닝당 출루허용(WHIP)는 1.40까지 치솟았다. 1승 1패 9세이브 ERA 2.10으로 여전히 수치는 준수했지만 이승엽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시작은 좋지 않았다. 개막전부터 1이닝 2피안타 3사사구 2실점하며 흔들렸고 3월 3경기에서 ERA 7.71로 부진해 결국 2군에 다녀왔다.
이후 김택연은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다시 자신감을 찾았다. 13일 경기 전 만난 이승엽 감독은 "개막전에서 실패하면서 위축됐던 것 같다"면서도 "맞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다보니 스스로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볼이 많아졌는데 2군에 다녀와 결과를 내다보니 자신감도 굉장히 붙고 잘 이겨냈다"고 설명했다.
이날 전까지 30경기에서 30⅔이닝을 소화하며 2승 4홀드 2세이브를 기록했고 이닝보다 많은 삼진 35개를 잡아냈다. WHIP도 1.21, 피안타율도 0.193으로 가장 준수했다. 이승엽 감독이 새 마무리로 낙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승엽 감독은 "(마무리 고민을) 많이 했다. 지난해도 그렇고 올 시즌 초에도 (마무리가) 두 번 바뀌었는데 한 시즌에도 두 번 바뀐다는 거는 조금 그렇다"면서도 "아무래도 우리 팀이 분위기가 다운되는 것도 있고 마지막에 이렇게 경기를 내주게 되면 그 여파가 크다. 본인도 아마 심적인 부담이 있을 것이다. 분위기를 바꾸는 차원에서 (홍)건희도, 팀도 살리기 위해서 변화를 주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 감독은 "전체적으로 내용을 보면 택연이가 올라갈 때 스트라이크-볼 비율, 사사구 비율, 사사구와 삼진 비율 등 모든 걸 봤을 때 택연이가 상대팀에게 줄 수 있는 압박감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주자가 있을 때,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1번이 택연이었고 올라가면 무조건 두산이 이긴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투수이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고 직접 이야기를 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홍건희와 김택연을 동시에 불러 이야기를 전했다. "택연이한테 '오늘부터 더 중요한 상황에 올라가줘야 되겠다'고 하고 '김택연이 올라가면 두산이 이겼다'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페이스 관리를 잘해서 준비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적어도 이날은 김택연이 등판할 기회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타선이 초반부터 힘을 냈고 5회까지 8-0으로 낙승이 예상됐다. 6회 3점을 내줬지만 8회 한 점을 더 달아나며 9회를 9-3으로 앞선 상황에서 맞았다.
그러나 두산의 불펜이 흔들렸고 3점을 더 내줬다. 결국 승리까지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둔 상황에서 세이브 상황이 만들어졌고 두산 벤치가 움직였다. 마운드에 '마무리 김택연'이 올라섰고 두산 홈팬들은 뜨거운 환호로 그를 맞이했다.
3점 차이긴 하지만 두산의 공식 마무리 투수로서 처음 등판하는 상황. 긴장이 될 수밖에 없을 상황. 그러나 김택연은 평범한 투수가 아니었다.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돌직구 대신 초구를 슬라이더로 택했다. 허를 찔린 김태연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구는 존 바깥쪽으로 향한 포심 패스트볼. 김태연이 파울로 걷어냈다. 볼카운트 1-2에서 다시 한 번 슬라이더로 승부수를 띄웠다. 속구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김태연의 방망이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허공을 갈랐다. 경기 종료. 김택연의 시즌 3번째이자 공식 마무리로서 첫 세이브가 완성됐다.
이승엽 감독은 경기 후 많은 점수를 뽑아낸 하위 타선을 칭찬하면서도 김택연에 대한 평가도 잊지 않았다. 그는 "김택연은 아무래도 부담이 있었을 텐데 기대대로 경기를 잘 마무리해줬다"고 흐뭇해했다.
'무심투구'를 펼쳤다. "마무리 투수로 올라간 것이기에 다른 점도 있었지만 원래 던지던 것처럼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던진 게 좋은 결과로 나온 것 같다"며 "3점 차여서 '큰 것 한 방을 맞아도 1점이 남아있다', 2아웃이니까 맞더라도 초구를 과감하게 던지자는 생각으로 던졌다"고 설명했다.
"김택연이 올라오면 무조건 두산이 이긴다는 생각이 들게끔 해달라"는 감독의 당부가 부담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만큼 저를 믿고 마무리를 맡겨주신 것이니까 책임감을 갖고 던지라는 메시지도 받았다"며 "그래서 매 경기 마무리로 올라가면 책임감을 갖되 투구 자체는 원래 하던 대로,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던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고졸 루키가 첫 시즌에 마무리 자리를 꿰차는 일은 흔치 않다. 그렇기에 420세이브의 전설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이 오버랩 된다. 선배들도 후배를 독려했다. 김택연은 "(선배들이) 축하한다고도 해주시고 (홍)건희 선배님께서 얘기도 많이 해주셨다"며 "미안해하지 말고 자신 있게 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편하게 물어보기로 했고 건희 선배님도 다 알려주셔서 문제는 없었다"고 전했다.
전날 8회 등판해 삼진 2개를 잡아냈을 때 결정구는 모두 빠른공이었지만 이날은 달랐다. 김택연은 "어제도 변화구를 던졌었다. (김)기연 형과 호흡이 좋고 (양)의지 선배님과도 호흡이 좋은데 기연이 형이 사인을 주는 대로 가려고 했고 슬라이더 사인을 냈다. 던지면 안 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해서 가운데 보고 던졌다"며 "제가 직구 구사가 높기 때문에 직구를 노리고 나올 것 같았고 그런 카운트 싸움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2015년부터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쾌거를 썼지만 그 결과로 신인 드래프트에선 늘 후순위로 밀렸다. '화수분 야구'로 불렸지만 어느새 화수분이 말랐다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그러한 여파 속 2022년 9위까지 추락하며 힘든 시간을 겪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전화위복이 됐다. 그로 인해 전체 2순위 지명권을 얻었고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동막초-상인천중-인천고를 거친 투수 김택연을 데려올 수 있었다. 타팀 팬들은 '7년을 잘하다가 한 번 못했는데 어떻게 그때 뽑은 투수가 김택연이냐'고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두산의 미래를 짊어질 보배다. 꾸준히 마무리로서 활약한다면 올 시즌 프로 5년 차에 최연소 100세이브 기록을 달성한 정해영(KIA 타이거즈)의 기록도 경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승엽 감독은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 프로야구에 대단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며 "그만큼 관리도 필요하고 부상 당하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경기해 나가야 되기 때문에 몸 관리가 중요할 것 같다. 우선은 길게 보기보다는 올 시즌부터, 당장 오늘부터 경기를 치르면서 자신과 팀 모두를 위해 승리를 해야 한다. 승리를 해야 세이브도 더 많아지기 때문에 그건 잘 관리하면서 이기는 경기에서 택연이를 되도록이면 많이 등판시킬 수 있도록 타자들이 도와줘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두산 팬들의 김택연 사랑은 대단하다. 혹여나 무리한 등판 일정으로 몸에 부담이 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런 면에서 마무리 변신은 김택연을 더욱 건강히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변화다. 이 감독도 "아무래도 그럴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1이닝이고 항상 7회, 8회가 아니고 9회에 나간다"며 "9회 한 이닝을 책임져달라는 게 마무리이기 때문에 관리도 잘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잠실=안호근 기자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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