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청년 가계부 분석해보니…"1년 전보다 는 건 식비 뿐"

CBS노컷뉴스 주영민 기자 2024. 6. 14.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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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덮친 사람들④]
40대 1인 가구 청년 가계부 1년치 분석
"식당 대신 도시락, 취미·과일 포기… 줄지 않는 지출"
고물가에 취업난·저소득·사회적 고립 심화
취업난·저소득·사회적 고립 심화…"장기·통합적 지원을"
편집자 주
'유리지갑'은 물가에 뒤쳐진 지 오래다. 발길 끊긴 가게 문을 여는 '나홀로' 사장님들도, 헐값이 된 폐지를 구하러 나선 노인들도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불황은 늘 약자들에 더 가혹하다. CBS노컷뉴스는 통계 속에 가려진 그들의 삶을 통해 2024년 대한민국 불황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인천의 한 카페에서 작곡가 김민국(가명·41)씨가 이야기하는 모습. 주영민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불황 앞에 장사 없다"…사장님에서 직원이 된 사람들
②'경제 생태계 변화'에 베테랑 자영업자들도 쓰러진다
③"밥값 만원인데"…폐지값 '반토막'에 휘청이는 노인들
④'1인 가구' 청년 가계부 분석해보니…"1년 전보다 는 건 식비 뿐" 
(끝)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고물가 시대를 살고 있는 저소득 청년의 삶은 날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저축을 하며 허리띠를 졸랐지만 '내일의 희망'은 상상하기 어렵다. 40대 1인 가구 청년의 가계부를 통해 팍팍한 저소득 청년의 삶을 들여다봤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뉴에이지 음악 작곡가 김민국(가명·41)씨는 인천의 한 오피스텔 건물 소방안전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음악활동 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편의점 아르바이트, 잡지사 기자 등 다양한 부업을 한 그는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1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숙소를 제공한다는 조건에 이끌려 지금의 직장을 선택했다. 월급은 100만원으로 적지만 주거비와 출퇴근 비용을 아낄 수 있고, 무엇보다 개인 시간도 많아 음악 작업에 집중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식당 대신 도시락…취미·과일도 포기했지만 줄지 않는 지출"


고정 수입이 적다보니 씀씀이가 줄었다. 그는 껌종이, 피규어 등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지만 모두 그만뒀다. 피규어는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모두 팔았다. 20㎡ 남짓한 그의 숙소는 그를 더욱 '미니멀족'으로 만들었다. 틈틈이 일일 아르바이트도 했다. 지난해부터 가계부를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저축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올해 물가가 빠르게 오르면서 형편은 또다시 어려워졌다. 김씨는 더욱 지출을 줄였다. 그는 지난 1년간 옷이나 신발을 산 적이 없다. 머리도 넉 달에 한 번 깎았다. 전기료와 TV수신료를 아끼기 위해 TV도 반납했다. 휴대전화도 알뜰폰 최소요금만 사용했다.

그의 가계부를 보면 그렇게 지출을 줄였지만 지난해 5월과 지난달 지출액은 전혀 줄지 않았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식비였다. 지난해 5월 식비로 42만원을 지출했지만, 지난달에는 74만원으로 1년새 2배 가까이 늘었다.

<표> 지난해 5월과 올해 5월 김씨가 지출한 항목별 금액. 주영민 기자

​식비 지출이 늘어난 만큼 먹을거리의 질도 좋아졌을까. 김씨의 대답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올해 들어 끼니 수를 줄이거나 질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식당은 1만원이 넘지 않는 보다 저렴한 곳만 찾아 이용했다. 실제로 식사는 거의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웠다. 게다가 편의점 도시락을 구입할 때는 항상 편의점 업체가 제공하는 할인쿠폰을 이용해 가성비를 높였다. 김씨는 편의점 업체가 고객들에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판매하는 '할인 쿠폰' 정기구독을 적극 이용했다. 매달에 정기구독료 몇 천원만 내면 20~30개의 도시락을 30~5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반찬가게나 마트를 가는 일은 급격히 줄었다. 물가가 오르면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1만 원이면 네 종류의 반찬을 구입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그보다 2천 원 이상 더 줘야 했다. 마트에서 기본적으로 샀던 식재료의 가격도 대폭 올랐다. 어쩔 수 없이 반찬을 해 먹는 것보다 편의점 도시락에 더 손이 갈 수밖에 없었다.

올해 들어 과일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김씨는 "식당 음식이나 편의점 도시락에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은 많지만 섬유질은 거의 없다"며 "이를 보충하기 위해 지난해에는 과일을 사서 먹었는데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편의점 업체나 유통사들이 운영하는 모바일 앱몰(App Mall)의 이용빈도도 급격히 늘었다. 특정 시간대 음료나 간식 등을 20~50% 할인하는 '타임세일'을 적극 이용했다.

인간관계 역시 좁아졌다. 직장과 거주지가 똑같은 데다 지출을 줄이면서 친구나 지인은 거의 만나지 않는다. 지난달 그가 지출한 교통비는 9천 원에 불과했다.

김씨는 적은 급여 때문에 이직도 생각해봤지만 20년 가까이 다양한 일을 하면서 지금보다 '더 좋은 고용주'를 만난 적이 없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비록 부업이라고 하더라도 지각을 하거나 불성실하게 일을 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금을 제때 주지 않는 사장, 폭언을 일삼는 고용주 등을 만난 기억이 많았다.

김씨가 지난해와 올해 지출한 식비의 항목별 비중. 주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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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저소득·사회적 고립 심화 떠안은 청년들…"장기·통합적 지원을"


고물가와 불황은 김씨와 같은 저소득 청년에게 '그저 살아남는 것'만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의 근원적 위기를 드러낸다. 저소득 노년층에게 불황이 생존의 위기라면 청년층에게 불황은 '희망의 부재'다.

청년 1인 가구의 고된 삶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종식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취업난을 겪고 있으며, 이는 곧 경제적 빈곤, 사회적 고립감로 이어졌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4분기 임금근로 일자리 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월 기준 전체 임금근로 일자리는 2074만개로 전년 동기 대비 29만개가량 늘었다. 연령별로 보면 20대 이하의 일자리는 9만7천 개 줄었고, 40대 역시 2만4천 개 감소했다. 반면 50대와 60대 이상의 일자리는 각각 11만3천 개, 24만9천 개 늘었다. 30대 일자리는 5만2천 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통계청이 지난해 말 발간한 '통계로 보는 1인가구' 자료를 보면 2022년말 기준 1인가구의 평균 연 소득은 3천10만 원으로 전체 가구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들의 절반 이상은 40㎡(12.1평) 이하에 거주했다. 주택 소유율은 30%에 그쳐 전체 평균보다 25.3%p 낮았다.

소득이 적으니 여가활동도 주로 '공짜'를 선택했다. 지난해 1인가구의 주말 여가활동은 '동영상 콘텐츠 시청'이 77.9%로 가장 많았고, 휴식 73.4%, 컴퓨터 게임 또는 인터넷 검색 23.7% 등이 뒤를 이었다.

20㎡ 남짓한 김씨의 숙소. 주영민 기자

정신건강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에게 제출한 '우울증 진료인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말 기준 우울증 진단 환자 100만 명 가운데 20대가 18만5천 명으로 가장 많았고, 30대 16만명이 뒤를 이었다. 1인 가구 특성상 우울증의 심화는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는데 지난해 말 기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추산한 국내 19~39세 고립·은둔 청년의 수는 54만명에 이른다.

인천평화복지연대 이광호 사무처장은 "저소득 청년 1인 가구의 증가는 취업난·사회적 고립·저출산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며 "특히 이 문제는 청년에서 중장년, 노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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