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SK 대출한도 2조 ↑

김우보 기자 2024. 6. 14.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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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본 20% → 25% 상향 추진
대기업 대출 여력 늘려
[서울경제]

KDB산업은행이 SK그룹 등 ‘동일 계열 기업군(그룹)’에 대한 대출 한도를 현재보다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반도체와 2차전지 등의 분야에서 글로벌 패권 경쟁에 나서고 있는 우리 기업의 투자 여력을 늘리기 위해서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은 ‘동일 차주 여신 한도’ 관련 내부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산업은행법상 동일 차주 여신 한도는 자기자본(43조 5000억 원)의 25%(10조 8750억 원)로 규정돼 있지만 현재 산은은 내규를 통해 한도를 20%로 강화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 산은은 이를 바꿔 여신 한도를 법정 한도인 25%까지 높이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한도 확대 대상 그룹은 대출 규모가 현재 기준(20%)에 도달한 곳 중 반도체·2차전지 등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는 기업이다. 한도가 조정되면 대출 대상의 한도는 지금보다 2조 1750억 원가량 더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동일 차주 여신 한도는 은행이 그룹 계열사에 내줄 수 있는 전체 대출 규모를 정해놓은 것으로 특정 그룹에 대출이 쏠려 은행이 리스크에 취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다.

특히 이번 개정은 SK그룹을 염두에 둔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SK그룹의 여신 규모가 한도까지 찬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최근 발표한 반도체 기업 지원 계획과 앞으로 SK하이닉스의 자금 수요를 감안하면 선제적으로 한도를 늘려놓아야 한다고 산은은 보고 있다. 앞서 정부는 국내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산은을 통해 17조 원 규모의 대출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향후 2~3년간 2조 원 이상의 정책자금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정책자금 투입 시 한도 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사전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산은, 대기업 대출한도 증액

반도체 생태계 지원방안 뒷받침

SK그룹 대출 2.5조로 늘어

"늘어난 한도만큼 지원 늘려야"

KDB산업은행이 ‘동일 차주 여신 한도’ 규정을 손보려는 것은 반도체 패권을 쥐기 위해 각국이 ‘쩐의 전쟁’을 벌이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현재 미국은 물론 유럽·일본·대만까지 천문학적 규모의 보조금을 쏟아부으며 자국 내에 반도체 생산 설비를 확보하기 위한 속도전에 나서고 있다. 우리 기업의 투자를 경쟁국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선제적으로 나설 필요가 커진 것이다.

산은의 동일 차주 여신 한도 확대 조치는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반도체 생태계 종합 지원 방안’을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앞서 정부는 산은을 통해 우리 기업에 17조 원을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산은의 여신 한도 수준이 조정되지 않으면 기업 지원 시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대표적으로 SK그룹이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SK그룹 대출 한도는 4조 원가량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신 한도가 그룹 전체 계열사의 대출을 포괄해 산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SK하이닉스(000660)가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은 이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기업의 특성이 전과 달라진 만큼 여신 한도를 지나치게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가 덜하다는 시각도 있다. 산은법에 동일차주에 대한 여신 제한이 명시된 것은 2000년이다. 과거와 달리 주요 기업들이 순환출자 고리를 정리해 기업 간 리스크 전이 위험이 전보다 줄어든 만큼 보다 완화된 규정을 적용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도가 조정되면 SK그룹의 대출 한도는 지금보다 2조 1750억 원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산은에 대한 추가 출자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한도는 확대될 수 있다. 가령 1조 5000억 원 수준으로 정부 출자가 이뤄지면 산은의 자본금은 45조 원까지 늘고 이와 맞물려 대출 한도는 2조 5500억 원으로 증가한다.

관건은 실제 대출이 얼마나 이뤄질지다. 산은은 일단 대출 한도를 늘린 뒤 시장 상황을 지켜보고 자금 투입 규모를 판단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자금 수요가 점증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정책자금을 일거에 쏟아 붓기보다는 투자 시점에 맞춰 자금을 지원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경쟁국에 뒤지지 않으려면 적어도 늘어난 한도에 걸맞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보조금 경쟁에 불을 당긴 미국의 경우를 보면 자국 반도체 기업인 인텔에 200억 달러(약 27조 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정부 지원 규모에 따라 원가경쟁력이 좌우되는 만큼 보다 경쟁국과 지원 격차를 가능한 좁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과 한국신용평가 자료 등을 분석해 발표한 '반도체 공급역량 및 원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설비투자 보조금 30%가 지급될 경우 원가경쟁력은 최대 10%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결국 반도체 산업의 핵심은 생산능력과 원가경쟁력"이라며 "설비투자 보조금 지급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조기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전했다.

재계 관계자는 “그간 미국 기업의 원가경쟁력은 우리나라에 비해 한 단계 아래였는데 천문학적 보조금이 살포되면 우열이 뒤바뀔 수 있다”면서 “비교 우위를 유지하려면 보다 과감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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