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빅5 간호사 “휴진하려면 교수가 직접 진료일정 바꿔라”
의료계 내부, 휴진 놓고 균열
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주도하는 병·의원 전면 휴진 전선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의료계 내에선 “총파업 역풍 조짐”이란 지적도 나온다.
1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대병원 간호본부는 최근 내부 간부 회의에서 “17일 교수 총파업으로 인한 수술·진료 일정 변경 업무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병원 행정 직원들도 같은 입장을 교수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서울대병원장도 최근 교수들의 전면 휴진은 불허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휴진을 하려는 교수들이 직접 예약 환자들에게 휴진 사실과 새 일정을 공지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서울대병원은 하루 외래 환자만 9000명 정도다. 서울대병원 내에서도 “휴진이 한 달 정도 이어지면 교수 일인당 많게는 수천 건의 예약을 변경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얘기가 나온다.
오는 27일부터 무기한 전면 휴진을 예고한 세브란스병원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병원 수뇌부는 교수들의 전면 휴진을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간호사·직원들도 일정 변경 업무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의료계 인사들은 “두 병원을 포함해 ‘빅5′ 중 나머지 세 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의 노조도 조만간 ‘진료 변경 업무 불가’ 입장을 낼 것”이라고 했다.
개원가(街)도 비슷하다. 분만 병·의원 140곳이 최근 의협 주도의 18일 총파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전국 130곳 아동 병원도 13일 정상 진료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아동 병원은 한 곳당 하루 200~1000명의 아이를 진료한다.
정부는 이날 “이미 예약이 된 환자에게 환자의 동의와 구체적인 치료 계획 변경 없이 일방적으로 진료 예약을 취소하는 것은 의료법이 금지하는 진료 거부가 될 수 있다”며 “의사의 불법행위, 노쇼(예약 후 잠적)엔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의협은 13일 “의대 증원 원점 재논의 등 정부의 전향적 입장 변화가 있다면 휴진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병원 등 ‘빅5′의 간호사·직원들이 교수들의 총파업을 반대하고 나서고, 개원의들도 속속 파업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은 그간 쌓인 의료계 내부 갈등의 분출로 보는 시각이 많다.
지난 2월 말 전공의 이탈로 진료 공백이 100일 넘게 이어지면서 대형 병원의 간호사와 행정 직원들은 불만이 큰 상황이다. 서울 대형 병원의 한 간호사는 “병원을 이탈한 것은 의사인데, 병원을 지킨 우리가 무급 휴직·휴가 압박을 받으며 피해를 보고 있다”며 “피해가 우리에게 돌아올 게 뻔한 교수들의 휴진을 돕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 ‘빅5′ 병원의 행정 직원은 “파업으로 병원이 망해도 의사 면허가 있는 교수, 전공의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 돈을 많이 벌 수 있지만 우리는 아니다”라고 했다.
‘빅5′ 병원의 교수 비대위는 모두 전면 파업 혹은 부분 파업을 선언했다. 간호사·직원들이 일정 변경을 도와주지 않으면 환자들에게 휴진을 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연기되는 수술 일정을 환자들에게 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훨씬 더 어렵다고 한다. “교수 사정 등에 맞춰 새 일정을 짜는 건 병원의 인력이 대거 투입돼야 가능한 일”(서울대병원 직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수들이 ‘휴진 통보’만 하고 다음 일정을 고지하지 않으면 향후 법적 문제가 생길 때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다. 의료법에는 의사는 정당한 이유 없이 진료 거부를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단체 행동이 금지된 공무원 신분의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연기된 진료 일정도 알리지 않고 단체 휴진을 하면 진료 거부가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했다.
중소 병·의원들의 ‘파업 대오’ 이탈도 이번 파업을 이끄는 의협에 대한 불신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서울 송파구의 한 개원의는 “의협 집행부는 이번 사태를 풀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무조건 ‘안 된다’고 하거나, 막말을 쏟아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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