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물고기 세계의 정의

최원형 기자 2024. 6. 1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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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철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회고록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에서 자신이 고대 인도의 문학과 사상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돌이켜 봅니다.

이 가운데 센 자신이 '정의의 아이디어'(2009) 첫머리에서 제시하기도 했던, 정의(justice)에 관한 두 가지 서로 다른 개념에 대한 이야기가 사뭇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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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거리
게티이미지뱅크

경제학자·철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회고록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에서 자신이 고대 인도의 문학과 사상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돌이켜 봅니다. 이 가운데 센 자신이 ‘정의의 아이디어’(2009) 첫머리에서 제시하기도 했던, 정의(justice)에 관한 두 가지 서로 다른 개념에 대한 이야기가 사뭇 흥미롭습니다.

산스크리트어에는 ‘정의’를 뜻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단어가 있는데, ‘니티’(niti)와 ‘니야야’(nyaya)라 합니다. 니티는 “잘 규정된 규칙과 체계적인 재산권을 따르는 것”으로, 이는 우리가 법질서적 측면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잘못 했으면 처벌 받는’ 식의 정의의 뜻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와 달리 니야야는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될 실제 결과들을 포괄적으로 고려”하는, 곧 ‘실현된 정의’의 종합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말해 니티가 사람들이 제도와 규칙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을 추구하는 정의라면, 니야야는 그것을 넘어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세상 자체를 결과적으로 더 낫게 만드는 것을 추구하는 정의입니다.

고대 인도의 법률가들은 ‘맛시야니야야’(matsya nyaya), 곧 ‘물고기 세계의 정의’를 경멸하고 이것이 인간 세계에 침입하는 것을 막는 것을 정의의 본질로 추구했다 합니다.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마음대로 잡아먹는 것이 물고기 세계의 정의입니다. 센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적합한 조직이 구성되어 있어도, 또 아무리 적합한 규칙이 마련되어 있어도, 큰 물고기가 여전히 작은 물고기를 임의로 잡아먹을 수 있다면 니야야의 개념상으로는 명백히 정의를 위반한 것”이라고요.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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