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원천을 찾아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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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티아 센(91)은 경제학이 효용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유와 '좋은 삶'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가치들을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통해 빈곤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제시한 독보적인 경제학자·철학자다.
2021년 출간된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학자로서 자신의 길을 본격적으로 개척한 시기까지 30여년 인생을 되돌아본 회고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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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l 생각의힘 l 3만3000원
아마르티아 센(91)은 경제학이 효용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유와 ‘좋은 삶’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가치들을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통해 빈곤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제시한 독보적인 경제학자·철학자다. 2021년 출간된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학자로서 자신의 길을 본격적으로 개척한 시기까지 30여년 인생을 되돌아본 회고록이다. 1933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벵골 지역에서 태어나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공부의 길로 접어들어 인도·영국·미국 등을 오가며 어떤 영향들 속에서 자신의 학문 세계를 닦아갔는지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의 저서 ‘가정과 세계’에서 따온 제목에서부터 센이 타고르로부터 받은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 학자·철학자인 센의 외할아버지 크시티 모한 센은 타고르의 협력자였으며, 센은 어린 시절 타고르가 세운 산티니케탄 학교를 다녔다. ‘신비주의’라라는 서구 지식인들의 오해와 달리 타고르는 이성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센은 인도의 지적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다양성에 기초한 진보를 추구하는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벵골 대기근(1942~1943), 힌두-무슬림 사이의 종교 분쟁, 인도의 독립 등은 센의 어린 시절을 강타한 주요 사건들이었다. 공급 가능한 식량이 있었어도 실제론 이를 구매할 역량이 없어 죽어갈 수밖에 없던 사람들의 비극, 인간을 이루는 다양한 정체성 가운데에서도 오직 종교적 정체성 하나에만 집착해 끝없이 커져가는 폭력, 본국과 달리 식민지에서는 사람들의 협력이 아닌 착취와 분열만을 유도하는 제국주의 등은 이후 센이 천착하는 학문적 주제들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센은 캘커타대학 프레지던시 칼리지에서 경제학·수학을 공부하며 케네스 애로의 ‘사회선택’ 이론을 만났고, 이는 이후 다양한 이해관계를 만족시키며 사회 전체의 행복을 높이는 길을 찾기 위한 고민(후생경제학)으로 계속 이어졌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 유학 시절엔 모리스 돕, 피에로 스라파, 데니스 로버트슨 등과 스승·동료로 만났는데, 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센의 학문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돕은 가격 이론으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인간 사회의 가치들이 존중받아야 함을, 안토니오 그람시·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등에도 영향을 미쳤던 스라파는 자칫 평등주의에 짓눌리기 쉬운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사회적 선호를 논의할 때 토론·논쟁이 얼마나 큰 구실을 하는지 등을 새기게 했다. 여러 학자의 서로 다른 입장들, 거대한 이론 논쟁에 치우쳐 “불평등, 빈곤, 착취 등 굉장히 중요한 다른 이슈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었던 모습 등 당시 케임브리지 경제학과의 풍경을 전해주는 대목도 흥미롭다.
센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강조하는 것은 “우리 각자가 가진 다양한 정체성을 인정”하는 일의 중요성이다. 한 사람이 복수의 ‘집’(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사회적 선택은 불가능하다’는 이론적 한계를 깨고 우리가 토론과 설득을 통해 협력을 이뤄내는 실천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존중과 이해”가 “이 세상에 대해 희망을 갖게 하는 강력한 원천”이라는 대가의 굳건한 믿음이 독자의 머리와 마음을 따뜻하게 덥힌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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