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닌 위인 많아…애 없다고 죄책감 주는 납작한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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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이고! 쪼이고!" 지난달 말 서울 덕수궁 돌담길 앞에서 열린 '서울시 시민건강 출생 장려 국민댄조(댄스+체조) 한마당'에서 김용호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케겔운동'(항문 조이는 운동)을 이용해 저출생을 극복하자"고 말해 많은 여성의 공분을 샀다.
이런 대책과 이런 말들을 부끄러움 없이 공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심리 밑바닥엔 여성을 '아이 낳는 존재' '아이를 낳는 재생산의 도구'로만 보는 관점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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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 기술 개발 전에도 늘 존재한 자녀 없는 삶
양육 관계망 사라지고 무자녀 가족 비율 높아져
엄마 아닌 여자들
역사에 늘 존재했던 자녀 없는 삶
페기 오도널 헤핑턴 지음, 이나경 옮김 l 북다 l 1만8800원
“쪼이고! 쪼이고!” 지난달 말 서울 덕수궁 돌담길 앞에서 열린 ‘서울시 시민건강 출생 장려 국민댄조(댄스+체조) 한마당'에서 김용호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케겔운동’(항문 조이는 운동)을 이용해 저출생을 극복하자”고 말해 많은 여성의 공분을 샀다. 그것만이 아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이 최근 한 보고서에 “여성의 1년 조기입학이 향후 적령기 남녀가 느끼는 서로의 매력도를 높여 궁극적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고 쓴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성들은 또다시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과연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지만, 엄연히 우리 앞에 존재하는 현실이다. 이런 대책과 이런 말들을 부끄러움 없이 공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심리 밑바닥엔 여성을 ‘아이 낳는 존재’ ‘아이를 낳는 재생산의 도구’로만 보는 관점이 도사리고 있다.
시카고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인 페기 오도널 헤핑턴이 쓴 ‘엄마 아닌 여자들’은 이렇게 여성이란 존재를 자녀 유무를 기준으로 ‘자녀 있는 여성’과 ‘자녀 없는 여성’으로 나누고 아이를 낳는 도구로 간주하는 ‘납작한’ 생각을 깨뜨려보려는 책이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기나긴 역사 속에서 여성이 자녀를 가진 세월만큼이나 오랜 세월 많은 여성이 자녀를 갖지 않았음에 주목한다. 많은 여성은 피임 기술 등이 개발되기 이전부터 아이를 가질지 말지 선택해왔고, 자녀를 갖기 않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했다. 가령 기원전 1900년 이집트에서 만든 파피루스에는 정자 죽이는 살정제 제조법이 적혀 있었고, 미국 애팔래치아산맥 지역에서는 야생당근이 피임약으로 사용됐다. 북유럽에서 근대 초기 기혼 여성의 첫 출산 평균 연령이 무려 27살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역사적 인물 가운데 자녀 없는 여성들도 많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자녀 없이 50년 동안 통치를 했고, 19~20세기 영문학 고전을 쓴 작가인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브론테 세 자매, 에밀리 디킨슨, 버지니아 울프 등도 자녀가 없는 여성들이었다. 자녀 없는 삶이 현대에 들어 나타난 이례적인 현상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자녀 유무가 여성의 정체성을 주요하게 규정하게 됐을까. 저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양육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둘러본다. 17~18세기 아메리카 정착민들은 가족을 공동체의 맥락 속에서 파악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가정으로 옮겨 다니며 자랐고, 자녀가 없는 친척에게 맡겨지는 등 부모에게만 양육을 책임지우지 않았다. 여성은 다른 사람과의 긴밀한 관계망 속에서 자녀를 양육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미국의 가족은 핵가족화되고 공동체는 사라졌다. 이후 양육의 어려움 속에서, 노동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난임 때문에, 기후위기 등 절망적인 세상에 절망을 더 보태지 않기 위해 등등 다양한 이유로 여성들은 자녀 없는 삶을 선택하거나 포기하거나 그런 상태로 내몰려졌다.
자녀를 갖지 않는 삶을 마치 여성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처럼 보고 그런 선택을 한 여성에게 죄책감을 씌우는 사회가 문제적이라고 저자는 짚는다. 이 책은 자녀 없는 여성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도록 안내한다. 저자의 말처럼 “여성은 왜 자녀를 갖지 않는가?”라는 질문보다 “왜 자녀를 가져야 하는가?”라고 묻고, 사회가 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때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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