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당신의 인도주의는 조종당하고 있다

임인택 기자 2024. 6. 1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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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미국 작가로 에스에프(SF)소설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는 켄 리우(48)는 동아시아 역사를 에스에프나 판타지와 접목하는 데서 특히 두드러진다.

소설은 표면상 소피아의 이성주의와 탕젠원의 감성주의 간 대결로부터 현실주의-이상주의, 미국-중국, 엘리트(중앙)-군중(탈중앙), 토론-행동, 정략 대 정략, 마침내 폭력과 희생에 대한 방임 대 방임까지 그야말로 국제사회의 작동 원리와 폐부를 선명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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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미국 작가 켄 리우(48). ©Li Yibo, 작가 제공

은랑전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l 황금가지 l 1만8000원

중국계 미국 작가로 에스에프(SF)소설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는 켄 리우(48)는 동아시아 역사를 에스에프나 판타지와 접목하는 데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른바 대체역사소설이다. 버금가는 특징이 도래할 현실에 대한 예보적 서사다. 다만 그건 예지력이 아니다. 망연한 조짐에 대한 지적 포착과 탐구의 소산에 가깝다. 그의 낮 직업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팬들에겐 익숙한 사실인바,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래머, 변호사 경력과 함께 현재 기술 전문 법률 컨설턴트로 일하는 중이다.

이번 단편집 ‘은랑전’도 그 특징을 두루 아우르니 골라보는 재미가 있겠다. 첫손으로 ‘비잔티움 엠퍼시움’이 눈에 든다. ‘국경 없는 난민회’의 소액 후원자가 급감한다. 최고관리자 소피아는 대책을 강구한다. 이미 통용 중인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엠퍼시움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잔 것이다. 엠퍼시움은 후원을 필요로 하는 여러 사안을 두고 개인 후원자들이 직접 투표해 후원 대상을 최종 결정하는 플랫폼이다. ‘다수의 지지’에 투표했던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로부터 엠프라는 화폐를 지급받기에 더 주목받고 있다. 중앙집권적 국가나 기관의 논리와 정략이 아니라 개인의 동정심(엠퍼시), 말하자면 즉각적 공감이 주요하게 작동하고, 엠프 보유고가 신뢰의 척도이자 논리가 되는 셈이다. 가령 미국, 중국, 주류 엔지오(NGO)도 저마다의 이해관계로 방관 중인, 미얀마 버마족 군부의 한족계 학살로 인한 난민과 반군 후원이 가능해진다. 이미 영상은 넘치고, 세계 각지의 사태를 안방에서 가상 체험할 수 있는 몰입기술까지 보편화한 상황. ‘감정’은 늘 준비되어 있는 격이다. 국경 없는 난민회는 엠퍼시움을 역이용해 보이지 않은 ‘최종 신탁자’가 되고자 한다.

전략은 성공할까. 소피아의 대학 친구 탕젠원과의 대결에 달렸다. 중국인 유학생이던 탕은 전세계 분쟁에 대한 후원과 추모에 열성이던 학생들이 유독 10만명이 희생당한 쓰촨성 지진 피해만은 외면하던 실태에 충격받았다. 중국 정부 또한 손수 현지를 찾은 탕과 여러 자원봉사자들을 냉대했다. 군인들만 삽 한 자루 없이 맨손으로 잔해를 파헤치고 있었다. 탕이 엠퍼시움 네트워크를 만든 이유다.

소설은 표면상 소피아의 이성주의와 탕젠원의 감성주의 간 대결로부터 현실주의-이상주의, 미국-중국, 엘리트(중앙)-군중(탈중앙), 토론-행동, 정략 대 정략, 마침내 폭력과 희생에 대한 방임 대 방임까지 그야말로 국제사회의 작동 원리와 폐부를 선명히 드러낸다.

미국, 중국, 주류의 엔지오도 반길 이야기는 아니다. 권력은 한쪽의 고통을, 블록체인은 상호 불신을, 유튜버 등은 자극에 취약한 감정을 제물로 저마다 세력화하는 시대다. ‘은랑전’은 ‘종이 동물원’ 이후 켄 리우의 두 번째 공식 출간 단편집이다. 총기 난사 희생자, 그를 추모하는 부모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다룬 ‘추모와 기도’, 당나라 전기소설에서 착안한 표제작 등 13편이 담겼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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