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휴진하는 이유"…서울대 의대교수들, 입장 발표
"교수들 지쳐 하나 둘 순직 대신 사직 선택 중"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오는 17일부터 응급실·중환자실 등 필수 부서를 제외한 모든 진료과 휴진을 예고한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들이 14일 환자단체 등의 진료 차질 우려, 휴진 이후 진료 운영 등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다.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 융합관 양윤선홀에서 휴진 관련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환자단체와 서울대병원 노조에서 발표한 성명서에 대한 입장과 휴진 이후 상황 등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강희경 서울대 의대교수 비대위원장은 지난 12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최근 입장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연합회는 지난 10일 입장문을 내고 "서울대병원 비대위와 대한의사협회가 휴진 결정을 당장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넉 달간의 의료 공백 기간 불안과 피해를 겪으면서 어떻게든 버티며 적응해왔던 환자들에게 집단 휴진·무기한 휴진 결의는 절망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강 비대위원장은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할 뿐 입원실과 중환자실, 응급실, 치료를 미룰 수 없는 진료 등 필수 기능에 인력을 보충해 투입할 터이니 환자분들께 피해가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저희가 생각하는 휴진이 어떤 것인지 먼저 상세히 알려드리고 전체 휴진을 선언했다면 안심하고 이해해주실 수도 있으셨을 텐데 서툴고 성급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린다"면서 "다른 병의원에서 진료하셔도 무방하신 경증 환자들은 휴진 기간 서울대병원 진료가 불가능하겠지만, 서울대병원 진료가 당장 반드시 필요한 중증·희귀질환 환자들께서는 더 한산해진 병원에서 대기 시간 없이, 다음 환자 때문에 쫓기지 않고 진료 받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의대 교수들의 휴진 결정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대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넉 달 가까이 메워왔지만 물리적·체력적 한계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이다.
강 비대위원장은 "(휴진을 결정한 것은) 올바른 의료를 세우기 위해 서로 존중하며 근거에 기반해 협의와 합의를 통해 의료정책을 수립하고 수행할 것을 (정부에)보장해 달라는 것"이라면서 "지금하고 있는 진료를 꾸역꾸역 계속한다 하더라도, 안타깝게도 지금보다 더 나은 치료의 기회를 드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실제 의료 현장의 교수들은 전공의들을 대신해 환자를 진료·관리하면서 육체적 한계는 물론 심적 부담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빅5' 병원의 한 교수는 "의학과 의술의 급속한 발전과 국민의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 요구에 따라 전문의의 진료 분야가 20년 넘게 세분화, 전문화된 상태"라면서 "전문 분야에 대해서는 간호사에게 처방을 내리는 등 의료 행위를 지시할 수 있지만 다른 파트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정 분야 진료만 장기간 해온 전문의와 다양한 환자들을 두루 보는 레지던트 2~4년차는 다르다"고 했다.
가령 신경외과만 하더라도 질환의 종류나 치료법에 따라 뇌종양, 뇌혈관, 척추, 외상 등의 분과로 세분화 돼 있어 뇌종양 환자만 장기간 담당해온 교수(전문의)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은 있지만 뇌혈관질환 환자를 진료하긴 어렵다. 반면 레지던트는 전문의는 아니지만, 의료 현장에서 다양한 환자 사례를 경험할 수 있다. 주로 입원환자 관리, 차트 작성, 수술 보조를 한다. 연차가 쌓이면 외래진료는 물론 작은 수술은 직접 집도하기도 한다.
서울의 또 다른 대학병원 교수는 "특히 이번 사태로 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같은 필수의료 전공의들이 병원을 많이 떠나서 교수들이 당직을 서는 것이 더욱 어렵다"면서 "알려지진 않았지만 당직 후 빈맥(심장박동이 갑자기 빨라지는 부정맥 증상) 등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간 교수들도 꽤 된다"고 말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휴진을 막으려면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증원 등 의료개혁 과정에서 의료계의 의견에 충분히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강 비대위원장은 "진료실과 수술장을 지키던 교수들마저 지쳐 하나 둘 눈물을 머금고 순직 대신 사직을 선택하고 있다"면서 "의료가 삐걱거린 지난 몇 달 동안 진단이 늦어지고 치료가 늦어져 문제가 생기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는 것이 정책결정권자들일까, 아니면 더 이상 갈아 넣을 수 있는 체력이 남아있지 않은 교수들일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휴진이라는 극단적 선택지 외에 남아있는 방법이 없었음을 부디 헤아려 주시기 부탁 드린다"면서 "정책결정권자들이 이제라도 사태 해결의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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