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피해자, 경매서 낙찰 받았는데…"또 대출 받으라고?"

이효정 2024. 6. 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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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보증보험 "경매로 낙찰받은 피해자에 예외없이 배당 요구하라" 공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도 "상계 안 돼"…주택금융공사는 "상계 가능"
여야 모두 전세 피해 지원 목소리 높이지만…"정작 필요한 제도개선 빠져"

[아이뉴스24 이효정 기자] #경기도 부천에 거주하는 A씨(34)는 한 차례 유찰 끝에 지난 2월 경매에 넘어간 오피스텔을 2억4000여만원에 낙찰 받았다. 자신이 전세 사기를 당한 오피스텔이었다.

이사를 가볼까 궁리를 하던 A씨가 경매에 참여해 낙찰받은 이유는 하나은행에서 받은 전세대출 2억원 때문이었다. 선순위 임차인인 그가 낙찰을 받으면 낙찰대금 2억4000여만원을 내지 않도록 상계 처리가 되고, 전세대출금은 20년간 무이자로 나눠 내는 채무조정 혜택을 받을 심산이었다.

그러던 A씨는 곧바로 난관에 봉착했다. 전세대출을 받은 하나은행에서 대출금을 당장 돌려받기 위해 배당을 요구할 수 있다고 연락이 왔던 것이다.

은행이 배당 요구를 하면 A씨의 낙찰대금은 상계 처리가 되지 않고 별도로 낙찰대금 2억4000여만원을 마련해 법원에 지불해야 한다. 보증금은 보증금대로 물려있는 상황에서 별도로 경락대금을 또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A씨의 사례처럼 보증금을 떼인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피해 주택을 경매로 낙찰 받고도 은행들의 배당 요구로 낙찰대금을 따로 마련해야 하는 곤란한 처지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보통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받을 때 은행은 한국주택금융공사(HF),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서울보증보험(SGI)과 같은 보증기관의 보증서를 통한 보증부대출을 해준다. 은행이 전세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보증기관이 대위변제해주는 일종의 보험으로, 대부분의 은행 전세대출이 보증부대출 형태를 띤다.

그런데 SGI는 일반 경매 절차와 동일하게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게도 예외없이 은행이 적극적으로 배당 요구를 하지 않으면, 보증기관이 향후 대위변제를 해줄 때 절차대로 했는지를 따져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돕겠다며 정부·여당은 물론 야당까지 나서 특별법 개정에 적극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들이 힘겹게 경매를 통해 주거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보증기관들의 요구로 인해 더 곤경에 빠지고 있는 셈이다.

전세사기 시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보증보험 공문 내용

◇서울보증보험(SGI), 은행에 공문…"전세 사기 피해 주택 배당 요구하라" 으름장

관련 업계와 세입자 등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SGI는 지난해 12월 은행들에게 "임차인 또는 권리보험사를 통해 임차주택의 경공매 개시 사실을 인지하면 반드시 배당기일까지 배당 요구를 해야 한다"며 "전세 사기 피해 주택도 예외없이 요구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SGI는 "보증금 중 질권(채권) 금액은 은행에 반환돼야 하며 임차인은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만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며 "금융기관이 배당 요구를 하지 않아 임차인이 전액 배당(매각 대금과 상계하는 경우 포함)을 받으면, 금융 기관의 업무 과실로 발생한 손해이니 보상이 불가하다"고 명시했다.

질권 설정을 해놨다면 등기부등본상 나타나지 않다가 배당기일까지 배당 요구를 하면 되기 때문에 임차인으로선 예상치 못한 배당 요구일 수 있다. 민법 329조와 345조에 따르면 질권은 재산권을 목적으로 설정할 수 있으며 다른 채권자보다 자기 채권의 우선변제를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립되는 지점이 전세 사기 특별법에 따라 세입자가 피해 주택에 대한 우선 매수권, 즉 다른 채권자들보다 먼저 낙찰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정경국 대한법무사협회 전문위원은 "전세 사기 특별법 상으로 임차인들은 우선 매수권이 있고 상계 신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면서도 "질권이 설정돼 있는 경우 금융회사와 같은 질권자들이 우선권을 행사해 배당을 요구하면 법원에서는 법리에 따라 상계 신청을 받아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가 우선 매수권을 활용해 낙찰 받았다 해도, 은행이 질권을 행사해 배당을 요구하는건 당연한 권리여서 피해자로선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 전문위원은 "임차인이 경매로 낙찰을 받았는데 금융기관 등이 질권을 행사하면 매각 대금을 따로 융통을 해야 한다"며 "법의 테두리 내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피해자는 매각 대금을 융통해 납부하면 향후 배당 절차를 거쳐 소유권 이전을 받게 된다. 반대로 낙찰 자금을 대지 못하면 매각 허가가 취소되고 경매를 위해 보증금으로 내걸었던 매각가격의 10%도 잃게 된다.

서울보증보험 공문 내용

◇다른 보증기관은?…HUG와 HF 달라 임차인 혼란

SGI는 보증기관 중 유일하게 전세대출의 보증서를 발급할 때 질권 설정이 필수다. SGI 관계자는 "은행에서 보험금을 청구할 때 질권 행사를 누락하는 사례가 일부 발생해 현장에서 혼란이 있었다"며 "보증 상품의 구조 자체가 질권 행사를 전제로 설계돼 이는 필요한 절차"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서울보증보험 외에 다른 보증 기관의 상황은 어떨까.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주택금융공사(HF)는 상품 구조상 질권 설정이 필요없다.

다만 전세 사기 피해자가 피해 주택을 낙찰받았다고 해도 '상계 처리'는 기관마다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HUG 관계자는 "전세대출은 목적과 기간이 정해져 있는 상품"이라며 "이런 상품이란 점을 고려하면 전세 사기 피해자가 낙찰을 받았다고 해도 상계 처리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HF는 똑같이 질권 설정 조건이 없지만 상계 처리는 가능하다. HF 관계자는 "회사의 전세 보증 상품에는 구조적으로 질권 설정권이 거의 없고 상품상 있다고 해도 상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증 기관별로 차이를 보이면서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어떤 보증 기관의 상품을 이용한 전세대출이냐에 따라 살던 집을 경매로 낙찰 받을 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A씨는 "경공매를 완료해야 20년 특례 채무조정이 가능하다고 해서 낙찰을 받은 것인데 배당 요구를 해올지 몰라 은행과 협의해야 했다"고 전했다.

/이효정 기자(hyoj@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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