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노포 속으로 들어온 키오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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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서울 외곽의 고즈넉한 노포(老鋪) 식당을 오랜만에 다녀왔다.
얼마 후면 '100년 식당' 반열에 들어갈, 50년이 훌쩍 넘은 유명 식당인데 지난 세월의 흔적은 모두 지워버리고 유행에 맞게 바꿔버렸다.
우리 가족은 식당에 올 때면 카트로 싣고 오는 상차림을 보며 그제야 침묵을 깨고 깔깔대며 대화의 물꼬를 트기도 했었다.
식당에 대한 마음의 거리가 넓어진 테이블 간격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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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서울 외곽의 고즈넉한 노포(老鋪) 식당을 오랜만에 다녀왔다. 작년 이맘때 갔다 왔으니 거의 1년 만이었다.
'식당 구조가 바뀐 걸 보니 돈 많이 벌어서 그새 리모델링을 했구나.'
얼마 후면 '100년 식당' 반열에 들어갈, 50년이 훌쩍 넘은 유명 식당인데 지난 세월의 흔적은 모두 지워버리고 유행에 맞게 바꿔버렸다. 내 가게는 아니지만 많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키오스크로 좌석을 배정받고 널찍해진 테이블 사이를 지나 번호표대로 찾아간 식탁엔 미리 밑반찬들이 준비돼 있었다. 지난해까지 이 식당은 주문을 하면 푸짐한 한상차림을 통째로 카트에 싣고 와 테이블 위에 그대로 얹어주는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는데 그 재미있는 장면을 못 보게 되다니 살짝 실망감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식당에 올 때면 카트로 싣고 오는 상차림을 보며 그제야 침묵을 깨고 깔깔대며 대화의 물꼬를 트기도 했었다.
경치 좋은 강변 뷰 자리에서 '과묵해진 가족'은 한참 동안 서로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다 결국 죄 없는 밑반찬만 젓가락으로 들쑤셨다. "사람이 많아서 주문을 늦게 받나." 침묵 속에 주문받는 직원을 기다리는 시간이 한세월로 느껴졌다. 틀린 그림찾기를 하듯 테이블 이곳저곳에 시선을 옮겨가며 이전과 달라진 점을 찾아보던 중 식탁 한쪽에 놓인 태블릿pc를 발견했다. "아, 이곳도 드디어 태블릿 오더를 시작했구나." 하지만 절대 당황하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며 점심식사 때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해 능숙하게 주문을 넣었다.
주문을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최첨단 로봇이 어울리지 않는 촌스러운 16화음 벨소리를 울리며 주문한 음식을 쟁반에 담아 등장했다. 그제야 식당 리모델링의 이유가 로봇이 다닐 통로 확보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고 로봇이 먼저였다.
고물가로 재료비와 인건비가 오르면서 카페나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선 비용 절감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무인 단말기인 키오스크 주문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음식 서빙을 하는 '로봇 이모·삼촌들'도 더 이상 신기한 풍경이 아니다.
"영수증 드려요?" "아니요."
시대에 발맞춘 단골 식당의 변신으로 이젠 식당 주인과 계산할 때 고작 한 번 대면하며 잠깐 말을 섞는 사이가 되었다. 식당에 대한 마음의 거리가 넓어진 테이블 간격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가게를 의미하는 노포는 단순한 점포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노포를 지탱하는 근본은 변함없는 손맛과 더불어 유구한 세월 속에 켜켜이 쌓인 단골들의 크고 작은 추억도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
생활 속에서 급속히 버려지거나 변하는 것은 대부분 시대의 요구에 걸맞지 않은 가치를 지니거나 유행에 뒤떨어진 것들이 대부분인데 갑작스러운 노포의 변절은 나의 추억들을 가치 없음으로 평가하는 듯했다.
클릭 몇 번으로 결제까지 완료되는 키오스크 대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모'를 외쳐 주문하고,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이나 술을 직접 챙겨 오거나 옆 테이블 수저통을 열어 자연스럽게 수저를 꺼내는 아날로그 감성이 벌써부터 그립다. 머지않아 욕쟁이 할머니 식당에 할머니 대신 욕쟁이 로봇이 들어설지도 모를 일이다.
류효진 멀티미디어부장 jskn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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