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퇴임 후 첫 의회 방문… 공화 “생일 축하” 민주 “범죄자가 현장에”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4. 6. 14.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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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의원들 만나 현안 간담회
11월 대선 앞두고 당내 통합 주력
민주 “1·6 의회 습격 주동자” 비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3일 미국 워싱턴DC의 의사당에서 상원의원들과 만나 대화를 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13일 아침 일찍 미국 워싱턴 DC 의사당 부근의 사교 공간 ‘캐피톨 힐 클럽’에 공화당 연방 하원 의원들이 집결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맞았다. 11월 대선에서 4년 만에 백악관 재입성을 노리는 트럼프가 의회를 찾아 첫 일정으로 공화당 하원 의원들과 조찬 간담회를 가진 것이다. 공화당 의원들이 78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트럼프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고, 전날 의회 야구 경기에서 민주당에 대승을 거둔 로저 윌리엄스 의원이 배트와 야구공을 선물로 건넸다.

트럼프가 의회를 찾은 것은 퇴임 후 처음이다. 의회는 트럼프와 각종 악연으로 얽힌 곳이다. 그는 재임 중 민주당의 주도로 하원에서 두 차례 탄핵 소추됐다. 실제 탄핵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임기 중 두 번이나 탄핵 위기에 몰리는 수모를 겪었다. 퇴임을 2주 앞둔 2021년 1월에는 그의 열성 지지자들이 대선 결과 인증을 막기 위해 난입하는 폭동을 일으켰고, 그는 이 사태를 배후에서 부추긴 혐의로 특검에 기소된 피고인 신분이다.

그런 그가 의회를 찾은 것은 성추문 입막음 사건의 유죄 평결에도 불구하고 대세론에는 끄떡이 없다는 것을 과시하고 당내 반(反)트럼프 여론에 힘을 빼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날 잇따라 의회 인사들과 회동한 트럼프는 기존의 선동가 대신 화합하고 포용하는 모습과 미래 권력자로 국정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주력했다.

트럼프는 하원 의원 조찬회에서는 최근 선거 캠페인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세금·이민·낙태 문제 같은 주요 대선 이슈를 거론했다.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연방 관세 인상, 소득세 감면 연장 같은 아이디어를 집중 제기했고 낙태 문제에 대한 신중한 대응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트럼프가 1·6 의회 점거 폭동 당시 자신에 대한 탄핵 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들을 언급하며 “지나간 일은 다 잊어버리기로 했다”고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또 열성적인 트럼프 지지자로 당내에서 각종 분란을 일으켜온 마저리 테일러 그린 의원을 향해서는 부드럽게 훈계하듯이 “(마이크) 존슨 (하원) 의장에게 잘 행동하고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맷 게이츠 의원은 “단합대회 같은 성격의 회동이었다”고 했다.

평소에는 보기 어렵던 트럼프의 부드러운 모습은 이날 오후 상원 의원들과의 회동에서도 이어졌다. 상원 의원들이 준비한 트럼프의 생일 케이크에 꽂힌 숫자초는 그의 나이(78)가 아닌 ‘45′와 ‘47′이었다. 45대 대통령을 지낸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해 47대 대통령이 되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이 자리에는 7선 의원이자 17년째 상원 원내대표로 있는 미치 매코널 의원도 참석했다. 매코널은 공화당 주류를 상징하는 인물로 지난 대선 때 트럼프의 ‘부정선거’ 주장에 쓴소리를 했고, 이후 4년 가까이 한마디도 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소원해졌다. 하지만 이날은 두 사람이 ‘주먹 인사’를 하고 여러 차례 악수를 하는 등 “분위기가 따뜻하고 화기애애했다”고 현장에 있던 존 버라소 의원이 언론에 전했다. 트럼프는 폭스뉴스 기자와 만나서는 한국계 여성을 배우자로 맞아 ‘한국 사위’로 잘 알려진 래리 호건 전 메릴랜드 주지사에 대해 “그가 11월 상원 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우리가 다수당 지위를 차지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를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강경 반트럼프 인사로 분류돼온 호건에게 덕담을 건넨 것이다.

그래픽=송윤혜

이런 트럼프의 행보에는 유죄 평결 이후에도 요동치지 않는 지지율에 대한 자신감과, 중도 보수층의 표심을 얻을 수 있는 이미지 구축이 시급하다는 판단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13일 공개된 로이터·입소스 조사에서 지지율 41%를 기록해 39%에 그친 조 바이든 대통령을 2%포인트 차로 앞섰다. 응답자의 61%가 트럼프의 유죄 평결이 “지지 후보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미국 현대사에 상처를 남긴 현장에서 마치 개선장군 같은 환대를 받은 점이 반트럼프 여론을 부추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전 하원 의장은 “내란 사태의 선동자가 범죄 현장에 돌아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다수 언론들의 시각도 비판적이었다. 뉴욕타임스는 “공화당의 따뜻한 포옹 속에서 트럼프는 이번 방문에서 영웅이자 피해자로 재조명됐다”며 “의사당 난입 사태 후 트럼프를 물러나게 하겠다는 공화당 인사들의 다짐은 진작에 사라졌다”고 했다. 폴리티코는 “난입 사태의 후폭풍으로 공화당이 휘청일 때 트럼프의 퇴장을 반겼던 인사들이 이번에는 갖은 아첨으로 그를 맞이했다”고 꼬집었다. 트럼프가 의회를 다녀간 뒤 바이든 캠프는 의회 난입 사태 장면과 트럼프 연설 장면을 연속해서 보여준 뒤 ‘트럼프는 모든 걸 불태울 준비가 돼있다’는 자막으로 끝나는 30초짜리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1·6 의사당 난입사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취임을 2주 앞둔 2021년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회의 대선 결과 인증 절차가 진행되던 의사당에 난입한 사건이다. 공권력이 투입돼 진압·체포하는 과정에서 5명이 사망했다. 연방 의회가 자국민에 의해 물리적 피해를 입은 첫 사례였다. 검찰은 대선 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부정선거라고 주장해온 트럼프가 폭동을 부추겼다고 보고 기소했다. 이날 인증 절차를 주재한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은 트럼프와 앙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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