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가 때릴수록 中은 강해졌다... 첨단 반도체 제재의 역설

장형태 기자 2024. 6. 14.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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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제재에도 성장하는 中 반도체
미국의 첨단 반도체 제재를 받고 있는 중국이 구형 반도체 생산에 집중해 세계 시장 점유율을 30%까지 끌어올렸다. 사진은 지난 4월 중국 산둥성의 한 반도체 공장에서 방진복을 입은 근로자가 검수하는 장면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오픈AI의 소라는 잊어라.”(미 IT 전문지 톰스가이드)

지난 6일 중국 동영상 플랫폼 업체 콰이쇼우가 내놓은 동영상 생성 인공지능(AI) ‘클링’에 글로벌 테크 업계가 크게 술렁였다. 동영상 생성 AI는 ‘동물들이 악기를 연주한다’ ‘남성이 식탁에 앉아 젓가락으로 국수를 먹는다’ 같은 문장 한 줄만 넣으면, 고화질 영상을 뚝딱 만들어 낸다. 지난 2월 오픈AI가 야심 차게 동영상 생성 AI ‘소라’를 내놨을 때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넉 달 후 중국의 콰이쇼우가 선보인 ‘클링’은 ‘소라’를 능가한다. 화질은 소라와 같은 수준인데, 최대 생성할 수 영상 길이는 클링(2분)이 소라(1분)를 앞선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동영상 AI는 텍스트 기반 AI와 비교해 기술적으로 더 어렵고 투입해야 하는 반도체 양도 많다”며 “클링은 중국의 ‘AI 자립’이 지금까지 성공적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미국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제재가 약 2년 동안 이어지고 있지만, 중국은 미국 보란 듯이 AI 기술과 첨단 반도체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 중국은 AI 학습에 필수적인 AI 가속기(AI 반도체의 일종)를 직접 설계하고, 양산에 돌입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동차·전자제품 등에 쓰이는 레거시(구형) 반도체 생산량을 점점 늘리며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 해관(세관)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중국 반도체 수출액은 626억1300만달러(약 86조31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1.2% 증가했다.

그래픽=백형선

◇중국의 AI·반도체 진격

최근 중국 화웨이는 자체 설계한 중국산 AI 가속기 ‘어센드 910B’의 구체적인 성능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연산 속도는 320테라플롭스(1플롭스는 1초에 1조번 연산).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어센드의 성능은 엔비디아의 구형 가속기 A100보다 20% 성능이 뛰어나다”고 했다. AI 가속기는 AI 학습 및 추론에 필수적인 반도체다. A100은 엔비디아가 3년 전 출시한 구형 모델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AI 데이터센터에 가장 많이 쓰이는 제품 중 하나다. 미국 제재 여파로 엔비디아의 주력 제품인 ‘H100′을 수입할 수 없지만, AI 모델 개발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술은 자체적으로 확보한 것이다.

‘어센드 910B’는 화웨이가 설계하고, 중국 대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기업 SMIC가 7나노(10억분의 1) 미터 공정을 적용해 생산했다. 현재 중국은 7나노 공정을 돌릴 수 있는 장비를 수입할 수 없다. 하지만 SMIC는 구형 장비를 활용해 여러 번 레이저를 쪼이는 방법으로 7나노 공정을 실현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 전략인 것이다. 이렇게 양산된 AI 가속기는 텐센트·바이두 등 중국 빅테크사가 싹쓸이 중이다.

중국은 한국이 장악하고 있는 AI 핵심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까지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미 IT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화웨이가 주도하는 반도체 컨소시엄이 중국 정부 자금 지원을 받아 2년 내 HBM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에 돌입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수준의 HBM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AI 반도체 자립에 필요한 물량은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 역대 최대 65조 보조금

중국은 첨단 AI 반도체에선 추격자 입장이지만, 레거시 반도체에선 입지를 더 공고히 하고 있다. 레거시 반도체는 보통 28나노 이하 공정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말한다. 현재 중국의 세계 구형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30% 정도인데, 이 추세라면 2027년까지 39%를 차지할 전망이다.

2014년 첫 반도체 펀드인 ‘빅펀드’를 조성하며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은 역대 최대 규모의 빅펀드 3기를 조성하며 반도체 자립에 더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펀드 규모는 64조5900억원으로, 지난 1기 펀드(26조400억원)와 2기 펀드(38조3200억원)를 더한 것보다 규모가 더 커졌다. 이는 미국이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지원하는 반도체 보조금(약 53조원)보다 많다. 중국 내부에서는 현재 벌어진 AI 기술 격차를 2년 안에 잡을 수 있다는 낙관론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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