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숫자 경쟁’은 안 한다”... 삼성의 AI시대 ‘파운드리’ 전략은 속도전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 공정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메모리, 첨단 패키징(조립)을 ‘원스톱’으로 제공할 수 있는 회사입니다. AI 시대에 최적화된 회사가 되겠습니다.”
12일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삼성전자 DS(반도체 사업부) 미주 총괄 사옥에서 열린 ‘파운드리 포럼 2024′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사장은 “종합 반도체 회사로서 장점을 최대한 살리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파운드리 포럼’은 매년 삼성전자가 자신의 반도체 파운드리 관련 전략을 발표하는 자리다. 세계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가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수주를 앞세워 치고 나가면서, 파운드리 2위인 삼성전자의 전략에 관심이 쏠렸다.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다루는 ‘종합반도체 기업(IDM)’이라는 특성은 지금까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최대 약점으로 꼽혀왔다. 기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에 애플·미디어텍 등 경쟁사 제품 수주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AI 반도체가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원스톱 서비스로 제조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강점이 되고 있다. 송태중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상무는 이날 사전 설명회에서 “원스톱 AI 설루션으로 고객들이 파운드리·메모리·패키지 업체를 각각 찾아 생산할 때보다 생산 기간을 20% 이상 단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글로벌 반도체 설계 업체 ARM의 르네 하스 최고경영자(CEO) 역시 “설계자산(IP) 제공부터 실제 생산까지 반도체 제조에 2년 이상 걸리는 문제를 삼성전자가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효율 높인 신공정 도입
삼성전자는 이날 흔히 ‘나노(10억분의 1) 전쟁’이라 불리는 초미세 공정보다 전력 소비를 줄이고 성능을 개선한 신기술을 생산 공정에 적용하는 방법에 집중했다. AI 반도체 성장의 최대 걸림돌로 지목받는 방대한 전력 소비 등의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해 파운드리 고객을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2027년까지 ‘후면 전력 공급(BSPDN)’ 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2나노 공정 ‘SF2Z’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의 뒷면에 전류 배선층을 배치해 전력 소비를 줄이고 데이터 신호를 더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또 2027년부터 반도체의 전력 소모를 낮추는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반도체는 실리콘 내부 미세 회로에 전자가 이동하며 작동하는데, 포토닉스 기술은 광자(photon)가 신호를 전달한다. 연산 속도를 올리는 동시에 전력 소모·발열 문제를 잡을 수 있어 AI 반도체 개발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최 사장은 “AI 시대 반도체 제조의 핵심은 성능은 올리고, 전력 소비는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초미세 숫자 경쟁’ 대신 실제 공정 개선에 집중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2028년까지 AI 매출 9.1배 성장’
삼성전자는 이날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고객사에 맞춰 설계하는 ‘커스텀(맞춤형) HBM’을 차세대 제품인 HBM4부터 도입하겠다고도 밝혔다. 엔비디아·AMD·구글 등 각사의 AI 반도체 설계가 다른 만큼, 각각의 경우에 맞춰 가장 효율적인 HBM을 설계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SK하이닉스도 TSMC와 손잡고 맞춤형 HBM 제조에 나서겠다 했다. 앞으로 이 시장을 두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날 발표한 파운드리 전략이 최근 주춤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 반격의 계기를 마련해 줄지 주목된다. 12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11%로, 1위 TSMC(61.7%)와는 50.7%포인트 격차가 난다. 전분기 49.9%포인트보다 조금 더 벌어졌다. 삼성전자는 제품 생산 속도와 저전력·고효율 기술을 내세워 2028년까지 지난해 대비 AI 반도체 관련 고객사를 4배로, 매출을 9.1배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최근 국내외 AI 반도체 기업들의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신경망처리장치(NPU) 등 AI 제품 수주도 조금씩 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향후 한국과 미 텍사스 테일러 공장을 확장하면서 늘어나는 수요를 맞춰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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