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혁신 없이 순위만 오른 국내 대학, 지표 몇 개로 줄세우기 그만해야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지난 10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김경희(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김별아(소설가), 김재련(법무 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 김태수(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이성주(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과 조형래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약속]
-대통령의 ‘약속’에 대한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尹 “성장의 토대인 R&D, 예타 전면 폐지”>(5월 18일 자 A6면)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온 연구·개발(R&D) 예산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의 전면 폐지 방침으로, 회의에서 나온 대통령 발언을 받아 적은 기사였다. 며칠 뒤 <尹 “반도체는 시간이 보조금”… 산단 조성 기간 절반 단축>(5월 24일 자 A1면)에선 반도체 산단 조성에 26조원 규모의 생태계 지원 프로그램을 신설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대통령의 약속, 특히 예산과 관련된 약속은 시기와 실현 가능성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난 정책 연속성, 예타 면제 부작용 등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없어 매우 아쉽다.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는 중국에서 ‘정상’이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정상회의’가 아니다. 백 보 양보해서 ‘정상회의’라 부른다고 해도 3자가 아니라 ‘2.5자 정상회의’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리창 총리는 중국 집단지도체제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위치가 대등한 인물이 아니다. 리창은 시진핑이 저장성 당서기를 하던 시절 그의 비서장을 지낸 인물이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는 명실상부한 국가 정상으로 볼 수 있다. <[깨알 지식 Q] 한중일 정상회의에 중국은 왜 2인자 총리를 보낼까>(5월 28일 자 A2면)는 이와 관련한 좀 더 진지한 문제의식을 보여주지 못했다.
-<[노석조의 외설] 최소 20명? 駐워싱턴 기재부 공무원 수는 “국정원도 몰라”>(5월 29일 조선닷컴)는 용감한 기사다. 미국 워싱턴DC에 나가 있는 기재부 파견 공무원이 너무 많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기재부가 예산권을 무기로 자기 부처 소속 공무원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기재부가 무서워 쉬쉬하던 사실을 명확하게 지적했다. 미국은 주중 대사관 직원의 80% 가까이가 국무부 직원이다. 반면 우리 외교부는 인사 적체 해소 차원에서 국내 타 부처 소관 부서로 외교부 고위직을 보내고, 반대급부로 해외 공관 자리를 제공한다. 이제라도 철저하게 해외 업무 수요에 따라 직원을 내보내고, 직역을 별도 분야로 해 전문성을 높이는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저출생]
-<”아이 낳으면 더 큰 임대주택으로”… 아이디어 쏟아진 저출생 공모전>(5월 22일 자 A14면)은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공모전 수상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그런데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아이디어인지, 어떻게 정책에 반영할지 등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정책화, 현실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얼마 전 ‘해외 직구(直購) 금지’ 정책처럼 당정 협의 없이 던지듯 내놓는 정부의 행태로 미뤄볼 때 또 무슨 ‘폭탄’이 터질까 두렵다.
-<’지역 소멸 위기’ 제천, 고려인 이주 프로젝트>(6월 8일 자 A10면)는 저출산, 고령화로 지역 일손을 이민에 의존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제천시가 ‘한민족 정체성’이 높은 고려인을 주목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지만 한민족 정체성을 과도하게 강조할 경우 앞으로 다민족, 다인종 사회가 될 한국에서 차별 문제를 부추길 우려도 있다.
-영국의 글로벌 대학 평가 기관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대학평가’ 순위가 올해도 큰 지면을 차지하며 소개됐다. <서울대 10계단 올랐다, 9년 만에 도쿄대 제쳐>(6월 6일 자 A12면)에 따르면 서울대는 작년보다 10계단 오른 세계 31위, 연세대는 20계단 상승해 56위를 차지했다. 어쨌거나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지난해 서울대는 과연 무엇을 바꿨고, 연세대에선 무슨 혁신이 있었나? 대학 평가는 긍정적 역할이 있지만, 그림자도 매우 짙다. 평가 지표 몇 가지를 이용해 대학별로 점수를 매겨 서열을 정하는 것은 합리적인 접근이 전혀 아니다. 특히 우리는 대학이 서열화돼 있고, 젊은 학생들이 여기에 매달리는 상황이다. 대학을 줄 세워서는 안 된다. 학생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미래를 위해 고민하는 교수가 많은 대학이 좋은 대학이다. 조선일보가 이제는 대학 평가에서 손을 뗐으면 좋겠다.
-최근 의료 사태와 관련, 소위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 얘기가 많이 나온다. <서울 의대 교수들 “우리가 만든 의료 체계 정부가 망치고 있어”> <전공의 비율 가장 높은 서울대 병원, 병상 가동률 ‘꼴찌’>(6월 7일 자 A8면) 같은 기사인데, ‘빅5′에 속하지 않은 다른 병원은 굉장히 불편할 것이다. 또 서울대 병원과 의사들이 전국 병원과 의사를 대표하는 것처럼 표현하는데, 이들 못지않은 2차 병원, 전문 병원과 의료진이 많다.
-정부가 <”의대 교수 1000명 증원 8월까지 배정하겠다”>(6월 10일 자 A4면)고 했다. 1000명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올 수 있는 숫자인지 모르겠다. 중증 환자가 매우 많은 2차 병원은 대학에서 의료진에게 교수직을 제안한다고 해도 상당수는 환자를 두고 병원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 어떻게 1000명을 증원하겠다는 것인가.
[다문화]
-<한국 학교서 한국 학생이 소수 됐다> <가정통신문 2개 국어로… 교사들은 러시아어 공부>(5월 29일 자 A1·12면) 기사에서 초등학교 3곳 이름이 구체적으로 나왔다. “ΟΟ초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내국인 부모들 불만이 나오는데, 학교 이름을 굳이 실명으로 써야 했을까. “다문화 학생 입학 희망자가 속출하자 한국어 입학시험을 도입했다. 시험을 통해 다문화 학생 비율을 30%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했는데, 유엔 아동권리협약이나 아동복지법, 다문화가족지원법은 사회적 신분이나 국적 등을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사에서 그런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아 놀랐다.
-<무단 조퇴 막자 “개XX야”… 초3이 교감 뺨 5차례 때려>(6월 5일 조선닷컴)는 전북 전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이 담임교사와 교감을 폭행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가 실린 뒤 <교감 뺨 때린 초3, 1년 동안 강제 전학만 세 번> 등 관련 기사가 조선닷컴에 이어졌다. 소년법 제68조는 보도 금지 규정을 두고, 조사 또는 심리 중에 있는 보호 사건이나 형사 사건에 대해서는 성명·연령·직업·용모 등으로 비춰 볼 때 해당 사건 당사자라고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정도의 사실이나 사진을 신문이나 출판물에 싣거나 방송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아동이 1년에 강제 전학을 3번이나 다녔다는 것은 사적 정보인데, 국민 알 권리를 위해 이를 침해해도 괜찮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 하나를 보듬지 못하는 잔인한 사회가 된 것은 아닌가.
-<무전공 ‘고무줄 선발’… 대학 무계획에 속 타는 고2>(6월 4일 자 A12면) 등 최근 무전공 관련 기사가 많아졌다. ‘대학 가서 전공을 선택할 수 있어 좋겠다’고 할지 모르지만, 무전공 학생들이 갑자기 한 전공에 몰렸을 때 적절한 교육을 할 수 있느냐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교육의 질이라는 관점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을 지적하는 기사가 나오길 바란다.
[송·배전]
-최근 송배전 이슈 관련 기사가 많았다. [송·배전망의 전력난 경고](6월 3~7일) 기획 기사가 나흘 동안 10여 건이나 실렸다. 미래를 가름할 중요한 사회문제이지만, 대다수가 관심 없이 지내는 사안을 발굴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언론의 순기능이다. 전 한전 사장 인터뷰 <”송·배전, 밀양 겪고도 바뀐 것 없어… 송전량 확대도 필요”>와 <[기고] 태백산맥 넘어 수도권으로의 送電… 대안은 있다>(5월 20일 자 A33면)에서 제안한 것처럼 설치 용량의 50% 이하로만 송전하는 현행 시스템 규제를 해소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이 방안을 심도 있게 토론할 수 있는 무대를 조선일보가 마련하면 좋겠다.
-<석유公 광개토팀, 1년간 심해 탐사… 매장량 분석 美 업체 “석유 있다”>(6월 4일 자 A3면) 기사는 영일만 석유·가스 매장에 대해 다루면서 데이터 분석 업체인 액트지오를 세계적 회사로 소개했다. 그런데 액트지오에 대한 일관되지 않은 표현이 혼란을 키운다. ‘심해 기술 평가 전문 기업’ ‘해양 기술 평가 전문 기업’ ‘지질 탐사 전문 컨설팅 기업’ ‘세계적 심해 탐사 기술 평가 기업’ ‘탐사 기술 분석 전문 업체’ 등 제각각이다.
-<산업 현장 떠나는 베테랑 740만명>(5월 8일 자 A1·5면)은 내용이 충실하고 좋았다. 하지만 읽고 나면 근원적 고민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기사는 2차 베이비부머 인력에 관련된 이슈를 다뤘지만, 제조업을 감싸고 있는 문제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워낙 복잡해 하나를 풀려고 하면 다른 게 얽히고,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는 입체적으로 다뤄야 한다. 고령화와 청년들의 일자리 기피, 외국인 노동자 수급과 직무 교육 문제도 함께 봐야 한다. 이민과 비자 문제, 지역 균형 발전 문제도 연관된다. 올해 산업단지 출범 60주년을 맞는다. 조선일보에서 대안을 제시하면 좋겠다.
[해외 입양]
-<[논설실의 뉴스 읽기] 중년이 된 ‘해외 입양인’들이 돌아온다… 그들 두 번 외면하는 한국>(6월 7일 자 A29면) <[광화문·뷰] 입양아는 ‘치부’가 아니라 ‘자산’이다>(6월 8일 자 A27면)를 잘 읽었다. 지금까지는 부모를 찾아 귀국한 입양인의 삶을 주로 다뤘는데, 자발적으로 귀향한 입양인 관점으로 접근해 새로웠다. 탈북민, 고려인 등과 함께 이들을 새로운 이주민으로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함을 일깨웠다. <영웅을 잃었지만 미소를 잃지 않았답니다… 전몰·순직 군경 유가족 위한 가족사진 촬영 프로젝트>(6월 8일 자 A1·25면)에 실린 유가족들의 사진이 밝고 아름다워서 더 슬프고 숙연했다. 백 마디 말보다 사진 한 장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선명한, 좋은 기사였다.
-<17조원 받고 ‘자선사업 홀로서기’ 나선 빌 게이츠 전처(前妻)>(5월 15일 자 A19면) 기사의 제목에서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라는 이름 대신 ‘빌 게이츠 전처’라고 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적극적 사회 활동을 하는 여성을 지워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리=김정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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