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그래도 본분 지키는 의사들이 주는 위안

조선일보 2024. 6. 1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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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노동조합 게시판에 '히포크라테스의 통곡'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오는 17일 예정된 서울대병원 교수들의 전체 휴진 방침에 따라 분당서울대병원 또한 일부 진료과가 휴진할 것으로 알려지자, 이 병원 직원 등으로 이뤄진 노조가 결정을 규탄하고 나선 것이다. /연합뉴스

의사협회가 오는 18일 전면 휴진하고 총궐기대회를 한다고 했다. 의협은 정부에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 비대위는 17일부터, 연세대 의대 교수들은 27일부터 무기한 집단 휴진을 결의하는 등 의대 교수들의 파업도 확산하고 있다. 이 같은 의사들의 파업에 환자 단체들은 “의사들은 우리 생명을 담보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느냐. 대체 무엇이 생명을 뛰어넘는 것인가”라고 했다.

의협은 내년 의대 증원 절차를 중단하라고 요구하지만 이미 대학별 정원을 확정해 입시 요강까지 발표했다.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면 대책이 없다. 정부가 불공정 논란을 감수하면서도 복귀하는 전공의에겐 어떤 불이익도 없을 것이라고 거듭 약속했는데도 이미 이뤄진 행정 처분 자체를 취소하라고 한다. 이 경우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의사들의 모습은 환자는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 집단 이익을 위해 못 할 일이 없다는 식으로 비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태어나는 아기를 받고 임산부를 진료하는 전국 분만 병·의원 140여 곳은 의협 전면 휴진 날에도 정상 진료할 것이라고 했다. 전국 130여 개 아동병원도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는 다른 어떤 진료 과목보다도 정부의 낮은 수가 정책 등에 불만이 컸던 진료과다. 그럼에도 환자를 외면하지 못하는 이런 의사들의 헌신을 보며 그래도 위안을 얻는다.

의사는 자동차나 배를 만들고 화물을 나르는 근로자가 아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다. 다른 근로자들처럼 ‘무엇을 해 달라’고 파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의대 증원이 얼마나 큰 문제라고 아픈 사람들을 투쟁 도구로 이용하나. 이것은 인간으로서 기본 윤리에 관한 문제다. 국민이 분노하고 혀를 찰 수밖에 없다. 한국 의료계는 오랜 기간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쌓아왔다. 어떤 직업보다 명예도 얻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자산들을 스스로 날리려 하고 있다. 의대 증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큰 것을 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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