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의 꿈, 위험을 감수하는 자는 누구인가 [조선칼럼 장대익]
자기 돈 들여 시작하게 하는 것
그래야 철저히 검증하기 때문
위험 감수했던 우드사이드는
50% 지분도 반납 후 철수했는데
국민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액트지오, ‘리스크’ 없이 무혈입성
이번 일 위험 부담은 누가 지는가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 개발에 관한 국민들의 기대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국민이 높다는 쪽의 두 배 이상이다. 대구·경북 지역 국민은 광주·전라에 비해 대략 여섯 배나 긍정적이다. 민주당 지지층은 거의 기대하고 있지 않은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은 대략 70%가 희망적이다. 물론 포항 앞바다 어딘가에 묻혀있을지도 모를 석유는 이런 여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의견 말고 데이터를 모을 것!” 이 권고는 스타트업 창업이나 기업의 신사업 론칭을 준비하는 모든 이가 귀에 피가 나도록 듣는 잔소리다. 사업 아이디어 검증 전략의 바이블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신사업의 90%는 실패한다. 성공하려면 큰 자원을 투여하기 전에 ‘될 놈’인지를 빠르고 저렴하게 자신만의 데이터로 검증해야 한다.” 이 권고는 모든 유형의 비즈니스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리다.
실패 시 막대한 비용을 날릴 수 있는 국가의 신사업 론칭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이 높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브리핑에서, 우리가 귀를 쫑긋하고 들어야 할 단어는 바로 “검증”이었다. 대통령은 “유수 연구 기관과 전문가들의 검증도 거쳤”으며, “이제 실제 석유·가스가 존재하는지, 실제 매장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하는 탐사 시추 단계로 넘어갈 차례”라고 명확히 언급했다.
과학은 먼저 가설을 세운다. 그다음에 그 가설이 맞는지 틀리는지, 참일 개연성이 얼마나 높은지를 데이터로 검증한다. 물론 이 데이터에는 편향이 없을수록 좋다. 편향을 줄이는 첫걸음은 검증을 조금 더 객관화하는 작업이다. 상식선에서도 직간접적으로 확인해 볼 사항은 많다. 가령, 액트지오사의 아브레우 고문이 해당 분야의 권위자인지, “20%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근거를 다른 전문가들도 대략적으로 수용하는지, 액트지오사가 이런 판단을 할 만큼의 실력, 실적, 규모를 가진 전문가 집단인지 등. 국내 언론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검증을 위한 데이터들은 무게가 저마다 다르다. 즉, 어떤 데이터는 결정적이다. 그리고 이 결정적 검증 데이터는 대개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쪽에서 온다. 어떻게 결정되든 자신에게는 아무런 손해가 오지 않는 이들에게 철저한 검증을 기대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아브레우 고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매장 가능성에 대한 그의 긍정적 해석은 그에게 어떤 위험도 주지 않는다. 그는 석유공사가 제시한 지난 15년간의 자료를 심층 분석하기도 전에 동해 심해가 석유를 품을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는 것을 “첫눈에 알아봤다”고 말했다. “축하할 일이지 왜 논란거리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런 발언을 했다고 그가 져야 할 리스크가 있겠는가?
문제는 우리 정부다. 우리는 액트지오사의 긍정적 해석을 합리적으로 의심해 봐야 했다. 왜냐하면 석유공사와 함께 영일만 일대를 지난 15년 동안 공동 탐사한 호주의 에너지 기업 우드사이드사가 2022년에 “가망 없음”으로 결론짓고 조광권의 50% 지분마저 반납하고 철수했기 때문이다. 정작 위험을 감수한 우드사이드사는 철수했고, 국민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해주고 있는 액트지오사는 무혈입성했다. 솔직히,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자들의 의사 결정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컨설팅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리스크가 전혀 없는 컨설턴트의 의견을 적당한 선에서 참고하라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작금의 이 논란에서 리스크를 지는 당사자가 국민 밖에는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혹시나 국민에게 산유국의 희망을 준 정부라며 내심 뿌듯해들 할지도 모른다. 결국 느슨한 검증으로 인한 모든 위험 부담은 결국 국민이 진다. 그러고 보니 지난 정부들의 국가 주도 신사업들(4대강 사업, 원전 폐지 정책 등)의 진행도 마찬가지였다.
지지부진한 예비 창업가를 진짜 창업가로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는 자기 돈을 들여 시작해 보게 하는 것이다. 그제야 철저히 검증하고 성공을 위해 멋진 모험을 감행한다. 국가 경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무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채 ‘되면 좋지만 안 돼도 그만’인 신사업은 국민에게 꿈을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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