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두 사람의 사법 리스크
李 대표는 재판 방어
두 사람 사법 리스크에
국회선 비정상 속출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의 피고인 이화영씨에 대한 1심 판결이 작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원래부터 검찰은 이 사건 몸통을 이재명 민주당 대표로 봤지만, 이화영씨가 먼저 기소돼 재판받고 있었다. 법원은 이씨에게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하면서 ‘2019년 이재명 경기지사가 쌍방울의 방북비 대납을 알았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놨다.
다음 절차는 이재명 대표 기소. 검찰은 이 대표에게 ‘800만달러, 제3자 뇌물’ 혐의 등을 적용했다. ‘이화영 판결’은 검찰이 제1 야당 대표를 기소하면서 지게 될 부담을 덜어줬다. 이 대표 측은 이화영씨 일부 유죄는 예측했지만 이 대표와 대북 송금의 관련성이 판결에 담길 줄은 상상하지 못한 것 같다. ‘이화영 판결’은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다시 수면으로 끌어올렸다.
그동안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해 왔다. ‘해병대원 사망 사건’ 특검이 바로 그 경우다.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국정조사도 추진하고 있다. 야권의 강경파가 주기적으로 ‘탄핵’ 운운하는 것도 이 사건을 염두에 둔 것이다. ‘대통령 격노설’을 활용해 대통령이 군(軍) 책임자 수사를 방해했고 형사책임이 있다는 식의 구도다.
윤석열 정부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던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출국 금지를 해제하고 안보실 관계자의 국회 답변 중 일부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난 점 등은 그 속사정이 무엇이든 공격받기 좋았다. 거기다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慘敗)해 ‘대통령 사법 리스크’는 정치적 실체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두 사람의 사법 리스크는 현실 정치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두 사람이 사법 리스크를 의식한 선택을 하고 각 당이 휩쓸려 가는 게 비정상이라고 보는 의원이 꽤 있다.
국민의힘은 21대 국회 막바지에 ‘민주당이 해병대원 특검법을 일방 추진한다’는 이유로 상임위를 보이콧했다. 그 바람에 저출생 대책 법안, 방폐장법, 연금 개혁 같은 민생 현안이 사장(死藏)됐다. 이 대표가 대북 송금으로 기소되면서 민주당은 더 거칠어졌다. 이재명 대표가 직접 여당을 몰아붙이라고 독려했다. 검사와 판사를 겨냥해 누가 봐도 ‘이재명 방탄용’인 법안도 쏟아내고 있다.
‘이화영 판결’이 나온 이후 이재명 대표 주변에서 “사생결단밖에 없다”는 말이 들렸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여유가 있었다. 대장동, 선거법 위반, 위증 교사 등 이 대표가 재판받는 사건을 놓고 “설령 유죄라 하더라도 대선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형량은 선고 못 할 것”이란 확신 같은 게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총선을 거치면서 유권자의 판단을 받았다고 봤다.
이제 민주당에서 그런 여유는 잘 안 보인다. ‘대북 송금’은 상대가 북한 조선노동당이고 액수도 크다. 훨씬 예민하고 무거운 사안이다. ‘이화영 1심’을 담당했던 재판부에 배당됐다고 하니 이 대표가 원치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재명 방탄’이란 사적 목적을 위해 입법권을 총동원할 태세다.
용산 대통령실의 관심은 ‘해병대원 특검’ 같은 이슈를 받아들여 해소하기보다는 여전히 방어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22대 국회는 시작부터 파행이다. 야당은 상임위를 돌리고 여당은 이를 보이콧하는 처음 보는 비정상이 일주일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요즘 자리마다 이 코미디가 화제라고 한다. 더 막 가는 쪽이 심판받을 텐데 당분간 큰 선거가 없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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