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회색에서 보랏빛으로

이수영 2024. 6. 1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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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 삼화동의 1970년대는 풍요로움 그 자체였다.

한 집 걸러 한 집이 석회석 채광회사인 쌍용양회 직원이라 할 정도로 취업률이 높았다.

광산 주변이 어두운 회색에서 화려한 보랏빛으로 변해갔다.

지난 40년 동안의 채광 작업을 마치고 다양한 체험시설과 2개의 에메랄드빛 호수를 품은 이색적인 관광명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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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 삼화동의 1970년대는 풍요로움 그 자체였다. 한 집 걸러 한 집이 석회석 채광회사인 쌍용양회 직원이라 할 정도로 취업률이 높았다. 번듯한 가구와 새 가전제품이 집안을 장식했고, 먹을거리도 넉넉했다. 회사 측의 복지 혜택도 상당했다. 매달 지급되는 월급에, 식자재와 생필품도 지원됐다. 삼화 국민학교 운동회가 열릴 때면 회사의 도움으로 마을 잔치가 열렸다. 일자리는 매년 늘어났고, 주민들의 씀씀이도 커졌다. 점포마다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인근 지역의 부러움을 샀다. 번화가인 묵호와 삼척과도 한참 떨어진 외진 곳이었지만, 석회 광산은 마을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큰 회사 하나가 지역 발전을 견인하는, 전에 없던 경험을 했다.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석회 가루가 쌓여 지붕도 학교 마당도 온통 회색빛이었다. 당시엔 크게 문제 삼지 않았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인정하기 어려운 환경오염이었다. 작업 중 사고도 적지 않았다. 국가 산업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삼화동 석회 광산과 마을은,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채광이 종료된 탄광은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마을엔 다시 한번 반전이 일어났다. 광산 주변이 어두운 회색에서 화려한 보랏빛으로 변해갔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무릉별유천지는 1968년 동해시에 문을 연 쌍용C&E가 석회석을 캐던 무릉3지구다. 지난 40년 동안의 채광 작업을 마치고 다양한 체험시설과 2개의 에메랄드빛 호수를 품은 이색적인 관광명소가 됐다. 요즘은 보라색 라벤더로 물결을 이루고 있다. 약 6000평 규모로 조성된 야외 정원에 1만3000포기의 꽃이 장관을 연출한다. 동해시는 6월 8~23일 무릉별유천지 일원에서 라벤더 축제를 열고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온실에서 즐길 수 있는 100평 규모의 라벤더 팜에서는 2200포기의 라벤더가 관람객을 반기고, 공중에서 자라는 박쥐난 등도 축제에 맞춰 추억과 감동을 선사한다. 역할을 잃은 폐광시설이 다시 생기를 되찾는 모습이다. 무릉별유천지 보랏빛 세상에 뛰어들어, 내가 꽃이 되고 꽃이 내가 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이수영 논설위원

#보랏빛 #명경대 #동해시 #석회석 #쌍용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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