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99] ‘바람 풍’이 두려운 사람들
무협 소설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단어 강호(江湖)의 풀이는 여럿이다. 본래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그저 권력이 모여든 조정(朝廷)과는 정반대의 민간 영역이라는 해설 등이 따른다.
‘강호’는 글자 그대로 강과 호수의 지칭이다. 물결이 넘실거리거나 도도한 물 흐름이 만들어져 늘 흔들리는 곳이다. 따라서 이를 ‘불안정’에 견줄 수도 있다. 그에 비해 제도와 문물이 엄격하게 자리 잡은 조정은 ‘안정’의 대명사다.
강호는 활력이 넘치지만 이런 불안정성 때문에 ‘약육강식(弱肉强食)’의 험악한 장소라는 의미도 얻는다. 중국의 언어 습속에는 이런 불안정성을 예감해 보려는 심리가 자주 엿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람 풍(風)’이다.
중국인에게 있어 이 바람은 곧 닥칠 위기(危機)로 비칠 때가 많다. 그런 중국인의 심사를 잘 대변하는 단어가 ‘풍험(風險)’이다. 영어 ‘risk’ ‘hazard’ 등의 역어(譯語)로 중국인에게 매우 친숙하다. 그러나 본뜻은 ‘바람[風]에 실려 오는 위험[險]’이다.
앞서 소개했듯 ‘바람 풍’의 조어 행렬은 대개 불안정성을 암시한다. 풍운(風雲)이 우선 그렇고, 풍우(風雨)·풍파(風波)·풍랑(風浪) 등이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바람’에 관한 한 중국인의 시선은 곧 초조감, 불안, 조바심으로 이어진다.
요즘 중국의 사정이 예전 같지 않다. 국제적인 고립이 깊어지고, 경기는 줄곧 하강한다. 외부 요인도 있지만, 본래 바람과 비를 즐겨 불러댔던 호풍환우(呼風喚雨)의 소설 주인공 후예답게 그를 자초(自招)한 부분도 크다.
그러나 바람조차 위기의 전조로 읽는 전통의 저력으로 중국은 더 악화할지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노력이 한창이다. 우리는 어떨까. 강파른 대립과 반목으로 우리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정치권발(發) 바람은 그저 바람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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