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내부 오리엔탈리즘

윤솔 2024. 6. 13. 23:1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제주시에는 39층짜리 고층 빌딩이 있다.

시가지로 들어서면 아파트 단지 옆에 프랜차이즈 대형마트가 있는, 서울에서 흔히 볼 법한 풍경이 펼쳐진다.

여기엔 전통적인 서울-지역의 판도가 뒤집히는 데서 오는 통쾌함과 해학이 있었다.

서울중심주의에 기반해 지역을 타자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제국주의 시대 서양인이 동양인을 바라보는 관점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주시에는 39층짜리 고층 빌딩이 있다. 시가지로 들어서면 아파트 단지 옆에 프랜차이즈 대형마트가 있는, 서울에서 흔히 볼 법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쉽지만 요즘 돌담도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으면 ‘육지 사람’ 열에 여덟은 깜짝 놀란다. 이들이 생각하는 제주는 ‘우리들의 블루스’와 유튜브 브이로그 속 감성 카페이기 때문이다.

최근 지역 비하 논란이 일었던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영양군 여행 영상은 이런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영상 속에서 영양군의 다양한 속성은 ‘낙후함’으로 납작하게 일반화됐다. 메뉴가 적다거나, 음식의 간이 다른 것은 모두 이곳의 ‘시골다움’ 때문으로 치부됐다. 백반집 주인, 지나가는 공무원 등을 배경 취급하는 태도에선 출연진과 이 지역의 심리적인 거리가 여실히 드러난다. “음식이 맛없다”, “할머니 살을 뜯는 것 같다”는 말은 애정 어린 농담보단 철저하게 타자화된 상대를 향한 폭언으로 느껴진다.
윤솔 사회부 기자
이는 평소 ‘경상도 호소인’ 시리즈가 가졌던 이점을 내다버린 구성이었다. ‘덥다’의 부산 사투리가 ‘덥깔끼네’라는 황당한 주장이 웃겼던 이유는 출연진과 관객이 이것이 엉터리라는 점을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디어 속 전통적인 상경민의 모습은 표준어를 구사하려 애쓰는 서툰 사람으로 표현돼 왔다. 하지만 피식대학의 영상 속 우스꽝스러운 사람은 과장된 사투리를 하는 이용주씨고, 그를 참아주는 것은 네이티브인 김민수씨다. 여기엔 전통적인 서울-지역의 판도가 뒤집히는 데서 오는 통쾌함과 해학이 있었다.

하지만 논란이 된 영양편에서 피식대학은 지역을 대하는 전통적인 도식으로 회귀했다. 출연진은 철저한 도시 사람의 역할로 평화롭고 자연친화적인 시골을 헐뜯었다. 여행에 동행한 영양 출신 출연자도 없었기 때문에 관객의 편에 서서 출연자들의 몰이해를 꼬집을, 기존 김씨 역할을 할 인물도 제시되지 못했다.

지역을 대하는 이런 태도를 두고 미디어학자들은 ‘내부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다.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에서 동양은 자연 그대로 보존된 신비로운 땅이자 비이성, 비합리를 상징하는 지역으로 여겨졌다. 반면 서양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문명으로 동양보다 뛰어난 존재로 인식된다. 서울중심주의에 기반해 지역을 타자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제국주의 시대 서양인이 동양인을 바라보는 관점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댓글에 이런 말이 있었다. “영양에도 사람이 살아요.” 지역을 세트장 보듯 바라보는 서울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이들은 투명인간이 됐다.

모두가 서울로 향하는 요즘, 미디어는 아이러니하게도 지역 콘텐츠로 넘쳐나고 있다. 에스파의 윈터씨가 완벽한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영상은 조회수 1400만회를 넘겼고, 오오티비 같은 굵직한 스튜디오에선 지역별 명물을 비교하는 ‘대표자’ 시리즈를 내놨다. 콘텐츠는 분명 늘었는데, 그 안에서 나타난 지역은 여전히 사투리와 먹거리로 대표되는 천편일률적인 모습이다. 서울 시민이 바라보는 지역의 모습은 이제 식상하다. 투명인간에게도 마이크를 쥐여줘야 할 때다.

윤솔 사회부 기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