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
책속의 귀한 관계 부러워도 하고
부족한 현실의 욕망을 채우기도
독서란 좀더 좋은 상태가 되는 것
마거릿 애트우드 ‘이가 새빨간 지니아가 나오는 꿈’(‘스톤 매트리스’에 수록, 양미래 옮김, 황금가지)
그런데 어느 날 캐리스가 두 친구에게 말했다. 꿈에 지니아가 나타났는데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고. 토니와 로스는 다시 캐리스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 한 달 전에 갑자기 빌리가 나타났기 때문에. 중년기를 거치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된 캐리스가 자신의 하우스에 유지 관리와 보수를 맡길 세입자를 찾는다는 광고를 낸 후였다. 캐리스가 또 빌리에게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서 친구들은 약속을 늘렸다. 일주일에 한 번 같이 뱀파이어 영화를 보고 토요일마다 산책을 하는 것 외에 수요일엔 점심을 먹기로. 자신들처럼 “조금 구식이고 낡았지만 편안한 공간”에서. 그 자리에서 친구들은 알게 되었다. 캐리스가 자신들이 아니라 빌리와 영화를 보고 캐리스의 하우스를 투자 개념으로 숙박 시설로 돌리자는 그의 말에 관심 두고 있다는 걸. 걱정하던 두 친구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위다한테 기도하자고. 위다가 캐리스를 지킬 최후의 방어선이라고.
결국 빌리는 기혼 여자 등쳐 먹기, 다단계 금융 사기, 신원 도용 등 사기꾼으로 밝혀졌고 그를 처음부터 싫어했던 개 위다는 친구들의 바람처럼 제 주인인 캐리스를 위해 빌리에게 어떤 행동을 가한다. 토니와 로즈, 그리고 캐리스는 꿈에 나타난 그들의 말썽 많았던 옛 친구 지니아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니아의 이가 새빨간 이유를 위다와 연관시키면서. 좋은 면을 보자고. 어쩌면 지니아는 캐리스에게 빌리를 조심하라는 신호를 주기 위해서 호의로 꿈에 나타난 것이며, 지니아가 예전에 자기들에게 저지른 일은 인생의 교훈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고.
‘스톤 매트리스’에는 부커상 2회 수상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단편 아홉 편이 실려 있는데 그중에서도 노년 여성의 복수극인 동명의 단편, 그리고 ‘나이 든 세대’를 젊은 시위대가 밀어내버리는 ‘먼지 더미 불태우기’가 문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단편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나는 유머가 있고 유쾌하기까지 한 ‘이가 새빨간 지니아가 나오는 꿈’을 선택했는데, 이 단편이 나이 든 여성들의 우정을 그리고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지금 내가 원하는 것, 나에게 부족한 것을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우정을 나누며 같이 산책하고 점심을 먹고 영화를 볼 수 있는 그런 귀한 관계 말이다. 이렇게 독서란 가끔 자기중심적이며 부족한 욕망을 채우고 싶어 하는 능동적 행위이기도 하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더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그래서 책을 읽고 나면 읽기 전보다는 조금은 나은 상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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