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의 신간] 세상 모든 식구에게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
모진 가난 버텨낸 모녀가
독자에게 건네는 위로와 희망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 '가족'. 가족은 선택하는 것도 선택되는 것도 아닌, 태어나는 순간 이미 맺어진 인연이다. 많은 이들이 가족을 운명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마땅히 여기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게 연결된 인생이 모두 '행복'에 귀결되진 않는단 거다. 누군가에게 가족은 삶의 동기이자 사랑과 기쁨의 집합체이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힘겹게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굴레' 같은 존재이기도 해서다.
이순하 작가의 데뷔작 「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는 피로 맺어져 식구食口가 된 사람들, 혈연은 아니지만 한 밥상에서 어떻게든 함께 끼니를 해결해야 했던 식구들의 이야기다. 오랜 세월 먹고사느라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함께 곡절을 이겨낸 식구들과 그들을 먹여 살린 엄마의 일대기를 그려낸다.
60대 신예 작가인 저자는 자신의 기막힌 가족사와 피붙이보다 더 정성스레 서로를 돌봐준 이웃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숱한 첩을 거느린 남편에게 상처받던 저자의 어머니는 일찍 남편을 떠나보내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어머니와 자식들은 모진 세상살이에 상처받지만, 이 가족 곁에는 수호천사 같은 귀인들이 있어 함께 살아내고야 만다.
1부에서는 가난하고 남루했지만,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았던 시절을 이야기한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자신을 숱하게 도와줬던 친구 영미가 훗날 어른이 돼 만났을 때 '엄마의 입원비가 없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저자는 다시 만난 이 인연의 애틋함과 여전히 떨쳐내지 못한 자신의 가난 사이에서 고뇌한다. 동네에서 '반편이'로 불리던 귀주 이모의 기적 같은 사랑 이야기도 들려준다.
2부에서는 남편의 첩들에게 문안 인사를 받으며 살았지만, 평생 한 남자의 여자로서는 존중받지 못했던 어머니의 결혼생활과 저자 자신의 결혼생활이 중첩돼 흘러간다. 저자는 그토록 가난에 시달렸음에도 가난한 남편을 선택한다.
어머니와 저자는 어느 순간 복받치는 슬픔이 터져버리는데, 그때 이들은 가자미식해, 닭 숯불고기 같은 음식으로 마음을 달랜다. 이 책에는 가난한 살림과 답답한 사연 속 식구들이 푸근하게 차려진 밥상들에 위로받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3부는 외할머니와 어머니, 작가 자신에게로 이어 내려온 엄마들의 역사를 그린다. 저자의 어머니는 훗날 딸을 돌보러 페루에 갔다가 교민사회의 대모가 된다. 그곳에서 페루의 빈민들을 돕고 피붙이 없는 한인들에게 대신 밥을 해주며, 비용 마련을 위해 국화빵을 팔아 '대박'이 난다.
이 책은 먹고사느라 힘겹던 시절 한 밥상머리에서 숟가락을 들고 기대어 살던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이자, 모진 가난에도 끝내 버틴 한 모녀의 감동 일대기다. 저자는 자신의 지난날을 소환해 세상 모든 부모와 자식에게 "살아내느라 수고가 많다"고 위로한다. 가난과 슬픔이 생을 붙잡아도 서로의 힘으로 끝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전한다.
이 책은 지난한 과거를 겪어본 어른 세대는 물론, 불투명한 미래로 힘들어하는 젊은 세대에게 사람의 다정과 진심이 얼마나 큰 힘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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