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은 분배의 왜곡 탓” 벵골 대기근 목격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회고록[책과 삶]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아마르티아 센 지음 |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 648쪽 | 3만3000원
인도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아시아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센의 활동 영역은 방대하지만 특히 경제학적 관심은 빈곤과 불평등이었다. 센은 빈곤의 원인이 공급의 부족이 아니라 분배의 왜곡 때문이라고 봤다. 자유주의·사회주의 경제학 양측을 모두 비판하며 빈곤 문제의 해결을 모색했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은 센의 사상을 형성한 사건들과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담은 회고록이다. 센은 1933년 영국령 인도 제국 산티니케탄(현재 방글라데시 마니쿠간지)의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1년부터 10년간 타고르가 설립한 진보적 남녀공학인 산티니케탄 학교에서 공부했다. 이곳에서 자유와 다양성의 소중함, 젠더 감수성을 배웠다. 센은 “그들(친구들)의 따뜻함과 창조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꽤 다른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센은 열 살 때이던 1943년 200만~300만명이 사망한 벵골 대기근을 목격했다. 센이 빈곤에 대한 관심을 형성한 사건이었다. “악몽 같은 벵골 대기근을 보면서 나는 이러한 기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만들 방법을 찾겠다고 결심했다.” 영국 통치에 대한 인도의 독립 운동, 인도 제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할되는 과정도 경험했다. “다당제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언론의 기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중략) 영국이 떠나고 나서야 인도에서 실현될 수 있었다.”
인도 캘커타 대학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선 수많은 지식인과 교류하며 센의 사상이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미국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는 ‘불가능성 정리’를 통해 온전히 합리적이면서 민주적인 사회적 의사결정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센은 애로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사회선택 이론을 발전시켰다. 센은 단순한 경제학자를 넘어선 사상가로서 젠더, 종교, 지역 등 다양한 정체성이 존중받는 다원적 사회를 그렸다. “수많은 정체성은 우리 안에서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고 그 정체성들 모두가 우리 각자를 자기 자신이 되게 해준다.” 타인의 배고픔을 해결하려 평생을 몰두한 지식인의 담담한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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