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소멸 위기지역 투자에 국민 노후자금 끌어다 쓴다

지영의 2024. 6. 13. 20: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수 부족에 지역 개발 예산도 ‘텅텅’
최소 1조~3조 규모 지역개발펀드 조성나선 정부
국민연금 등 국민 노후자금 운용 기관에도 투자요구
인구 감소·경제활력 저하 지역 사업 대상
예비타당성 조사도 생략
업계선 “돈 낼 때까지 계속 끌려갈 판”

[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정부가 시중은행과 국내 대형 투자기관들을 비공개로 소집해 정부주도 지역활성화 투자펀드 출자를 요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방인구 감소와 지역경제 활력 저하로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 개발사업에 쓸 자금 마련을 위해서다.

투자업계에서는 사업성이 불확실한 정부 주도 개발사업에 자금을 대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세수부족에 지역 개발에 투입할 예산이 부족해지자 기관 자금을 동원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투자자 들어와”…지역활성화펀드 부진 우려에 국민연금 등 기관 소집

13일 투자은행(IB) 업계 및 금융당국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말 국내 대형 기관을 소집해 대외 비공개로 지역개발펀드 회의를 개최했다. 이틀간 진행된 회의에 소집된 기관은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법정공제회, 시중은행 중에서도 국민은행과 농협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IBK기업은행 등이다.

회의 소집의 요지는 지역활성화투자펀드에 대한 금융권 및 투자업계 대상 출자 권유다. 지역활성화투자펀드는 정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새로운 지역투자 방식이다. 인구가 줄어들어 경제 활력이 떨어진 지방소멸 위기 지역에 정부 재정 지출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 자금을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에서 출발했다. 잠정적인 투자처는 폐철도부지 재개발, 지역청년센터 등이다.

정부재정과 지방소멸대응기금, 산업은행에서 각각 1000억원씩 출자해 3000억원 규모 모펀드를 조성하고, 지자체·민간이 함께 자펀드를 결성하도록 해 최대 3조원 규모의 투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연초부터 지역활성화투자펀드에 자금을 댈 기관 확보를 위한 정부 차원의 물밑 권유가 있어왔지만 시장 반응이 부진하자 참여 독려를 목적으로 기관을 소집한 것으로 보인다.

지방 소별 위기 지역에 타당성 조사도 없이 투자...자금회수 의구심↑

금융권 및 투자업계에서는 우려와 회의가 교차하는 모양새다. 정부 권유 수위가 높아져 출자 부담감이 적지 않지만 투입 자금에 대한 회수가 불투명해서다. 그동안 정부 주도로 추진해온 지역개발사업에 참여했다 손실을 본 기관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신용보증기금과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보증을 서지만, 선순위 대출의 극히 일부만이 대상이다. 중순위로 들어간 대다수의 자금은 원금도 못 건지거나 손해보기 뻔한 구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조성될 펀드 자금이 지방소멸 우려 지역에 주로 투자될 예정임에도 제대로 된 사업 적정성 심의도 거치지 않는다는 점이 우려를 키우고 있다. 정부는 광역지자체가 선정한 사업들 중에서 예비타당성조사를 생략하고 추진이 가능하도록 방침을 잡았다. 사업성 및 자금회수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지는 배경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돈이 되는 사업이면 애초에 정부가 나서서 펀드를 만들고 시장 참여를 유도할 이유가 없다”며 “세금이 덜 걷혀서 예산이 부족하니 근래들어 유사한 목적으로 소집하는 회의가 부쩍 많아져서 금융권에서도 매우 난처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사업 선정 기준도 모호하고, 정부 주도 사업이라 지자체들이 사업성 없는 사업안을 밀어붙이는 모럴해저드도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특히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 공제회 등이 대거 소집됐다는 점에서도 비판이 적지 않다. 정부 지출을 줄이기 위해 시장성이 낮은 사업에 국민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기관 자금을 동원하려는 방향이 부적절하다는 평가다.

한 기관투자자 관계자는 “시장이 어려울 때마다 채권 매입 지시를 하는 등 자금 투입 권유가 있어왔지만 이번 지역 사업은 과해보인다”며 “불려 간 기관들은 다 가입자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곳이다. 민간이든 공적 기금이든 다 그 목적이 있는 법인데 정부 지출을 대체하는 데에 쓰려는 발상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투자금을 모으기 위한 금융권 및 기관 소집은 계속될 전망이다. 주로 고위 책임자급 및 실무팀 책임자를 소집한 지난달 말 회의에 이어 추가 소집이 예정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 기획재정부 측은 “자금 회수 가능성 확보를 위한 체계가 미비하다는 것은 오해다. 절차가 오래 걸리는 예비타당성 조사 대신에 민간에서 전문성 있게 다층적으로 수익성을 검증하도록 설계했다”며 “지자체가 검증한 이후에 투자자와 시행사, 자펀드·모펀드 운용사 및 대주단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재차 심의를 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관 소집에 대해서도 “참여 독려를 위해 제도 도입 취지와 내용, 참여 인센티브 등을 자세히 설명해 기관의 이해를 높이는 목적이었다”며 “투자에 실제 참여할 금융계와 산업계 등에서도 요구가 있어서 진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영의 (yu02@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