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강간 유죄, 강간 무죄" 민간인 성폭행 美장병 엇갈린 판결… 왜?
재판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선고
강간 무죄 "폭행X, 신체접촉 거부 안해"
전북 군산시 옥서면 미 공군 제8전투비행단에서 민간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미군 장병에게 일부 유죄가 내려졌다.
전주지법 제12형사부(부장 김도형)는 13일 준강간 및 강간 혐의로 기소된 미군 장병 A(30)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22년 7월 24일 오전 9시쯤 우리나라 국적 B(20대)씨를 숙박업소와 부대 내 숙소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B씨는 부대 정문을 뛰쳐나오며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 살려 달라”고 외치며 도움을 요청했고, 한 군무원이 이를 발견해 미군 헌병대에 인계했다. B씨는 전날 밤 부대로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A씨는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취지로 범행을 부인했다. 수사를 맡은 검찰은 숙박업소에서 이뤄진 성폭행은 B씨가 과음으로 항거불능 상태였던 점을 고려해 준강간을, 이후 부대 숙소에서 벌어진 성폭행에 대해서는 강간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준강간죄는 음주·수면 등으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추행할 때 성립된다. 강간죄와 형량은 같지만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재판부는 준강간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했다. △피해자가 음주·수면 상태로 의사 형성 능력이 미약한 점 △피해자가 입맞춤은 동의했지만 이를 넘어서 성관계를 용인한 사정은 찾아볼 수 없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김 부장판사는 “피해자는 당시 주량을 넘어서는 술을 마시고 호텔에서 술김에 잠에 취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사건에 대한 진술이 일관된 데다 자신의 불리한 점도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대법원 판례상 성폭력 피해자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어서 마땅한 사정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진술을 가볍게 배척할 수 없다”며 “피해자가 피고인을 무고할 만한 이유도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부대 내에서 이뤄진 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가 이미 준강간 피해를 당했는데도 이후 피고인과 부대 내 숙소에서 함께 잠을 자려고 했다는 이유에서다. 김 부장판사는 “피해자가 강간 피해를 묘사한 부분도 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은 데다 피해자가 피고인의 신체 접촉을 거부했다는 사정을 찾아볼 수 없다”며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봤을 때 당사자 의사에 반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양형에 대해선 “피고인은 항거불능 상태인 이성을 간음해 죄질이 나쁘고, 피해자가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다만 대한민국에서 처벌을 받은 적이 없는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앞서 B씨는 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관으로부터 부적절한 발언을 들었다는 이유로 해당 경찰관에 대한 수사 감찰 및 심의 진정서를 전북경찰청에 접수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성폭행 범죄 조사 과정에서 처음 만났으며, 지난해 5월 군산 인근 음식점에서 사적으로 만나 저녁을 먹었다.
진정서에 따르면 이 경찰관은 “남자는 70%가 외도를 꿈꾸고, 30%는 바람을 피운다” “젊은 사람을 만났을 때면 저 여자와 데이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등의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경찰관은 “피해자가 먼저 저녁을 사달라고 했다”며 “딸 뻘이라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로 조언해 준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경찰청 공무원 행동강령에 따르면 수사 중인 사건의 관계자와 부적절한 사적 접촉을 해선 안 되며, 소속 경찰관서 내에서만 접촉해야 한다. 현장 조사 등 공무상 필요한 경우 외부에서 접촉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수사서류 등 공문서에 기록해야 한다.
피해자 고소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이 경찰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언론에 나오자 수사를 통해 취득한 B씨의 정보를 댓글로 게시하며 반박한 혐의다. 해당 경찰관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은 오는 21일이다.
전주= 김혜지 기자 fo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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