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기자의 ‘1인분’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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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밤, 야근을 마치고 그날 아침 신문을 무심한 듯 슬쩍 집어 들었다.
1면 하단 '식품 사막' 기획 기사, 그 밑 이름 석 자로 가는 눈길을 애써 감추며 집까지 신문을 '고이 모셨다'.
1면에 내 이름이 달린 기사를 싣던 날, 수습 딱지를 뗀 지 넉달 만에 그 '1인분'을 얼추 해낸 것 같아 내심 뿌듯했다.
어머니의 고충, 국장과 후배의 경험담, 이동형 장터 운영자들이 전해준 생생한 현장, 그렇게 서툴게 그러모은 기사는 선배들의 손을 거쳐 다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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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운 | 이슈팀 기자
지난주 금요일 밤, 야근을 마치고 그날 아침 신문을 무심한 듯 슬쩍 집어 들었다. 1면 하단 ‘식품 사막’ 기획 기사, 그 밑 이름 석 자로 가는 눈길을 애써 감추며 집까지 신문을 ‘고이 모셨다’. 한겨레 식구가 된 지 여덟달 만에 처음으로 1면에 기사를 실은 날이었다.
“1인분을 하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수습기자 시절, 수습이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뭔지 묻는 선배 질문에 나도 모르게 ‘1인분’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1인분이란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수없이 쏟아지는 각종 이슈와 현장을 따라가면서도, 그 안에서 나만의 취재 아이템을 발굴해내야 했다. 발제 뒤에는 촘촘한 취재, 취재 뒤에는 유려한 기사를 써내야 비로소 ‘1인분’이 완성된다. 선배들은 뚝딱 해내는 그 일에 나는 도무지 가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1면에 내 이름이 달린 기사를 싣던 날, 수습 딱지를 뗀 지 넉달 만에 그 ‘1인분’을 얼추 해낸 것 같아 내심 뿌듯했다.
식품 사막 기획은 평생 수도권에 살다 올해 충청도로 귀촌한 어머니의 한마디로 시작됐다. “장 보러 갈 수가 없다. 주말에 오는 네 아빠 차를 기다려야 해.” 마침 일본의 65살 이상 고령자 중 ‘장보기 난민(쇼핑 난민)’이 25%를 넘는다는 기사가 실렸을 때였다. 장보기 난민은 집에서 식료품점까지의 거리가 500m 이상이고 자동차 이용이 어려운 65살 이상 인구를, 식품 사막은 이처럼 식료품 구매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을 가리킨다. ‘지역 소멸’이 심각한 우리 역시 상황이 일본만큼이나, 어쩌면 더 심할 것이 분명했다.
‘국내 장보기 난민 실태를 다뤄보고 싶다’는 발제에 뉴스룸국장이 연락을 해왔다. 마침 전남 영암군에 다녀왔는데, 농촌 마을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식료품을 파는 ‘이동형 장터’를 봤다고 했다. 곧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우리 읍 마을 중에 점방(구멍가게)조차 없는 곳들이 많습니다. 마을서 버스 타고 읍내까지 나가야 마트가 있는데, 아이스크림은 사 갖고 오다 보면 다 녹잖아요. 어르신들이 ‘자네 없으면 아이스크림을 어떻게 먹어보겠는가’ 하면서 엄청 좋아하십니다.” 농협 조합장의 말에 ‘이거다’ 싶었다.
단순히 이동형 장터 사례만으로는 기사를 차별화하기 어려웠다. 전국 각지의 이동형 장터를 소개한 보도는 이미 여럿이었다. 식품 사막, 쇼핑 난민 개념을 소개하는 기사도 많았다. 대학 후배에게 이런 고민을 토로하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회복지사가 운영하는 이동형 장터가 있대.” 단순히 먹거리 판매를 넘어 마을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부를 챙기는 ‘이동형 사회복지사’, 전남 영광군 묘량면 ‘이동점빵’ 이야기였다. 식품 사막 기획은 그렇게 탄생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기획은 ‘1인분’을 하려면 ‘여러 사람’이 필요함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고충, 국장과 후배의 경험담, 이동형 장터 운영자들이 전해준 생생한 현장, 그렇게 서툴게 그러모은 기사는 선배들의 손을 거쳐 다듬어졌다. 나 혼자 ‘열심히, 잘’ 하면 제 몫을 하리라 여겼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다. 다시 누군가에게 같은 질문을 받으면 여전히 “1인분을 하고 싶다”고 답할 것 같다. 다만 혼자 모든 것을 해내겠다기보다는, 하나의 기사를 완성시켜줄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넓고 깊게 만들겠다는 의미다.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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