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지원금, ‘자영업 생태계 활성화’ 마중물 되길 [윤석헌 칼럼]
윤석헌 | 전 금융감독원장
제22대 국회가 출범한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은 민생회복지원금을 지역사랑상품권 형태로 지급하되 국가 및 지방단체가 행정·재정적 지원을 한다는 내용의 ‘민생위기극복 특별조치법’을 당론 1호 민생법안으로 발의했다. 애초 전 국민 대상 25만원 일률 지급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지급 대상에 따라 25만~35만원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으로 금액을 정하도록 했다.
처분적 법률이라는 국민의힘 주장에 대해 민주당은 ‘행정부에 재량권을 부여했기에 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지 않으며, 개인이나 사건에 대한 법이 아니므로 처분적 법률이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코로나19 이후 경기침체로 고통받아온 국민과 자영업자 형편을 고려할 때 민주당이 긴급조치 일환으로 입법을 추진하고 여당과 정부가 동의하면 처분적 법률을 둘러싼 위헌 소지를 피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통계청의 ‘고용동향’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국내 자영업자는 557만명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감소세가 진정되는 모습이다. 다만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줄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늘어, 경기침체 속에 임금·고금리가 부담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3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은 19.6%로, 주요 7개국(G7) 평균의 2배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상위권이다. 특히 생계형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데, 직장을 조기 퇴직한 중장년 가장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치킨집 등 창업에 나선 때문이다.
한편 자영업자 생존율이 3년 기준 40%, 5년 기준 30% 수준으로 낮아지는 데서 드러나듯 자영업 시장의 어려움은 매우 크다. 이런 열악한 환경 외에도 자영업 생태계 지원이 필요한 이유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첫째, 자영업은 국가경제의 총체적 위험관리에서 버팀목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대외적 위험 노출을 흡수할 내수시장이 필요하다. 관련해서 금융권의 역할이 있지만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기대가 낮아졌고 오히려 자영업 생태계의 내재적 역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생계형 자영업은 수출입 부문과의 상관성이 낮아 생태계가 활성화되고 업력이 강화되면 국가경제의 총체적 위험관리에 효과적인 기여가 가능할 것이다.
둘째, 자영업 생태계의 활성화는 고용시장의 탄력성을 키운다. 앞에서 국내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이유의 하나로 직장을 조기 퇴직한 중장년 가장을 꼽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영업 생태계 활성화는 정년에 앞서 고용시장에서 퇴출된 이들의 연착륙에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최근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잔액은 453.1조원으로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말 338.5조원 대비 33.6%가 늘어났다. 특히 올해 들어 개인사업자 연체금액이 빠르게 증가해 4월 말 기준 전년 동기 대비 56% 늘어난 2.8조원(연체율 0.62%)을 기록했다. 자영업자 연체율의 빠른 상승이 전체 가계부채 부실로 전염되지 않도록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사랑상품권은 자영업자 매출 확대의 효과적 수단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지역 주민의 소득 및 소비 지원으로 자영업 매출 확대를 이루는 양수겸장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제기되는 다양한 비판을 살펴본다.
첫째, 가장 흔한 비판은 재원 조달만을 무작정 나무라는 것인데, 잘못된 방식이다. 문제의 핵심은 조달 자체가 아니라 편익이 비용을 초과하는가 여부다. 이런 비판은 통상 정책 추진에 따른 정부의 재정적자 내지 미래세대의 상환 부담 증가를 강조하지만, 편익 대부분을 미래세대가 향유한다는 사실에는 침묵한다. 따라서 정당한 비판이 성립하려면 앞서 언급한 자영업 활성화가 가져올 한국 경제 위험관리체제 강화 내지 노동시장 유연화 등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여기서 대부분 선진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한국보다 높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도 높은 정부부채 비율이 부담스러웠겠으나, 정책의 편익이 비용을 초과했기에 이를 추진했을 것이고 결국 선진국으로 성장하지 않았는가.
둘째, 자영업자의 부채원금 탕감이나 영업손실 보전 등 직접적 지원이 아닌 지역 주민들에게 상품권을 지급하여 자영업자 매출 확대를 구현하는 간접적 지원 방식을 택한 부분도 논란거리다. 그런데 전자가 과거 부실 메우기에 주력한 과거지향적 처방이라면, 후자는 미래 자영업 활성화를 추구하는 미래지향적 방식이다. 특히 전자는 과거 실패를 사후 용인하는 의미가 있어 도덕적 해이가 우려되지만, 후자는 기존 부실은 자영업자 자신에게 맡기고 자영업 활성화 노력을 유인하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자영업자 각자가 지역사랑상품권 지급을 매출 확대의 기회로 활용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경쟁력 강화, 경영기법 생성 등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가능성도 있다.
셋째, 지원금에 대한 사후 환원 요구가 없어 퍼주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것이나, 자영업자들의 절박한 사정에 비추어 크게 공감하긴 어렵다. 오히려 사후 환원을 요구하게 되면, 자영업자들이 이에 매달려 생태계 활성화라는 목적 달성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환 부담을 가볍게 보는 것은 비판받을 지점이나, 정책 목적이 자영업자 개개인의 구제보다 자영업 생태계 활성화에 있다면 지원금 상환보다 생태계 활성화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넷째,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큰 편이다. 그런데 요즘 문제 되는 인플레는 비용상승(cost push)형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이 붕괴되어 농산물과 에너지 가격이 상승했고, 강달러가 환율 상승을 부추겨 수입물가 상승이 초래됐으며, 국내에서도 농산물 관련 공급망 비효율 문제가 악화되면서 발생했다. 특히 국내 경기 침체 속에 본원통화가 아닌 지역사랑상품권 지급이 신용창출 효과를 키워 수요견인(demand pull)형 인플레를 유발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시장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등록된 점포에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소진하려면 지역 내 생산자나 근로자로부터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해야 하는데, 이는 상품권 지급이 자영업 매출로 이어짐을 의미한다. 관련 법이 조속히 통과되어 자영업 생태계를 살리고 내수 회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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